[기획리포트]
이현주 감독 준유사강간 사건의 전모와 피해자 인터뷰, 그리고 이현주 감독의 두번째 입장
2018-02-08
글 : 김성훈
영화계 #ME TOO 운동, 침묵을 강요하지 말라

한 검사의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울림을 주었다.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는 “검사장급 전직 고위 간부에게 강제 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e-pros)에 올려 자신의 피해 사례를 알렸다. 법조계에서 시작된 #미투 물결은 영화계까지 이어졌다. 한 여성감독 A씨 또한 자신의 페이스북에 “얼마 전 한샘 성폭력 사건을 다룬 프로그램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폭로’라는 말을 접했을 때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도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라며 “이내 나는 폭로 이후에 일어날 파장이 내 삶을 그날 이후로 또 한번 변화시킬까 두려웠다. 그러나 어제 또 한번 나는 한 여성(서지현 검사)의 용기를 접했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그의 말은 나의 가슴을 다시 한번 두들겼다”고 자신이 겪은 미투를 털어놓았다.

그는 재판을 2년 넘게 겪었고, 재판은 최근에서야 판결이 났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 1월 10일 준유사강간 혐의로 기소된 한 영화감독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이 영화감독은 알려진 대로 <연애담>(2016)을 연출한 이현주 감독이다. 이현주 감독은 술에 만취하여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동성의 지인 A씨를 유사강간했다.

피고인 이현주 감독과 피해자 A씨는 2013년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영화아카데미)에 함께 입학한 동기다. 평소 연애문제, 성문제, 성적 정체성 등 내밀한 부분까지 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관계였다. 2015년 4월 8일 밤 11시경 수업이 끝난 뒤 아카데미 동기들과 술을 마셨고, 술자리가 파할 무렵인 오전 6시40분경 A씨가 술에 많이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 감독을 포함한 일행은 A씨를 인근 모텔에 데려가 재우기로 하였고, 동기 중 한명이 A씨를 업고 가 침대에 눕혔다. 나머지 일행은 귀가하고 이 감독과 A씨는 오전 7시20분경 모텔 방에 투숙했다. 이후 이 감독이 만취해 잠든 A씨의 특정 신체부위를 이용해 유사성행위를 했다.

다음날 A씨는 이현주 감독으로부터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들었고 헤어졌다. 이후 A씨와 그의 남자친구는 이현주 감독에게 따졌고, 이현주 감독은 “A씨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여 달래주던 중, A씨가 먼저 내 가슴을 만지며 만져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무런 감흥 없이 A씨에게 성행위를 해주었다”, “A씨가 자신이 레즈비언인 것 같다고 하면서 먼저 만져달라고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A씨는 그날 자신을 모텔로 바래다준 동기들로부터 사건 당시 자신이 인사불성 상태였다는 말을 들었고, 이현주 감독에게 전화해 이 감독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을 한 뒤 준유사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이현주 감독과 그의 변호사는 피해자인 A씨의 승낙에 따라 유사성행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1·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이 사건 유사성행위 당시 술에 만취하여 의식을 잃거나 정상적으로 성적 자기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고, 피고인도 미필적으로나마 피해자의 위와 같은 상태를 알면서 이를 이용하여 이 사건 유사성행위를 하였다고, 즉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또한 하급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영화아카데미 출신의 학생 두명이 법정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현주 감독으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도교수 K 감독은 A씨를 불러 고소를 취하할 것을 종용했다. K 교수는 “여자들끼리 이런 일이 일어난 게 대수냐”, “가해자를 불러줄 테니 한대 패고 끝내면 안 되겠냐”, “기자들이 알면 큰일이다. 학교에 불명예다”라고 말하며 고소 취하를 요구했다. 급기야 K 교수는 이현주 감독쪽 증인으로 재판에 출석해 평소 A씨의 행동이 발칙하고, A씨가 만든 영화에 성적인 측면이 있다는 요지의 증언을 하며 이현주 감독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어야 할 학교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고,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A씨와 이 사건은 고립되어갈 수밖에 없었고, 사건을 폭로하기까지 많은 고심과 용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가 사건 폭로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씨네21>은 지도교수인 K 감독과 유영식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두 사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와 답변 요청 문자를 넣었지만 역시 답이 없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월 6일 “영화아카데미 건과 관련해 내·외부 인사로 구성된 진상조사팀을 구성하여 사건 경위와 상황을 면밀하게 조사할 예정”이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면 관련자는 규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과 유사 상황을 대비해 대응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라고 대책 마련안을 내놓았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이번 사건을 접하고 이사회를 열어 조합 규약에 따라 이현주 감독 제명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여성영화인모임 또한 2월 2일 제보를 통해 사건을 접한 뒤 이사회를 소집해 지난해 여성영화인상 감독상을 수상한 이현주 감독에 대해 수상 취소를 결정했다.<연애담>을 배급한 인디플러그는 “이 사건을 기사 보도로 확인하였다. 사건의 인지 시점 여부를 떠나서, 해당 감독의 연출작을 배급하는 배급사로서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며 “배급사 역시 진실을 외면하고 방조자의 역할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피해자의 지적에 깊이 공감하며, 이 사실을 뼈저리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외로이 긴 재판을 진행하셨을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또 블루레이 제작업체 플레인 아카이브는 예정된 <연애담> 블루레이 타이틀을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편 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뒤에도 한동안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이현주 감독은 2월 6일 자신의 입장을 담은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는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나게 됐고, A씨와의 유사성행위가 서로 합의한 결과인 까닭에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감당해야 했지만 재판부가 자신의 주장을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너무나도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사건 당시 함께 술을 마신 동기 두명은 이 법정이나 수사기관에서 술자리가 끝날 무렵 A씨가 만취하여 몸도 가누지 못하고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하였고 모텔 방에 눕힐 때 의식이 없는 채로 잠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고 전했다. “피고인 자신도 이 법정이나 수사기관에서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해 다리가 풀려 제대로 걷지 못하고 웅얼거릴 정도의 말을 하였을 뿐이고, 모텔 방에 들어간 직후 술 취한 사람이 잠든 모습이었다고 진술하였다”고도 했다. “또 피해자는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술을 마셨으므로 그 자체로도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다고 보아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의견이다. 이것은 A씨와 합의해 가진 유사성행위라는 이현주 감독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조계에 이어 문화계, 연예계 등 사회 각계에서 일어나는 #미투 운동은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했던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본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도록 가해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인맥, 친분을 이용해 피해자를 입막음하려는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용기 있는 고백을 시작한 서지현, 임은정 검사, 최영미 시인 그리고 이번 사건의 영화감독 같은 분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당당하고 정의가 바로설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씨네21>이 #미투(#Me Too) 운동을 이어갑니다. 영화계 #미투를 metoo@cine21.com로 보내주세요.

■ 피해자 A씨 인터뷰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이현주 감독의 첫번째 입장을 봤나.

=여전히 같은 변명을 일관하는 태도를 보며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침묵하라’였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 당시에는 그 ‘침묵’의 겉모습은 피해자인 나를 위해, 그러니까 이 사건이 드러나면 나도 피해를 본다는 식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강요된 침묵 속에 사건이 은폐됨으로써 피해자인 나와 이 사건이 더 고립되어갔다는 걸 깨닫게 된다.

-피해자의 편에 서야 할 교수와 학교가 가해자의 편에 섰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

=나 또한 왜 그 교수가 가해자 편에 섰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나 역시 제자였는데 말이다. 그런 교수를 보면서 당시 학교를 다니던 나로서는 무척 외롭고 마음이 고되었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백이 이번 사건을 고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서 검사가 TV에 나와 당시의 감정을 억누르며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났다. 가슴이 요동쳤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말에 울컥하기도 했다. 나 역시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에 그 고백이 크게 작용했다.

■ 이현주 감독 입장 전문

이번 사건에 대해 이현주 감독은 2월 8일 오후 <씨네21> 편집부 앞으로 자신의 두 번째 입장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편집 없이 전문 그대로 실었다. _<씨네21> 취재팀

저는 그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재판의 과정 안에서 저 나름의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 상황이 벌어진 다음에도 저는 저의 입장문을 통해 그것에 대해서 다시 이해받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 그리고 이해받기 위해 했던 지금의 행동들은 이미 벌어진 상황들에 대한 어떤 면죄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일로 상처를 받으셨고 그 상처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날의 일에 대해 전하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그날 이후 피해자와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느꼈을 고통에 대해서 간과했습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저의 행동들은 너무도 커다란 상처를 줬음을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그리고 <연애담>을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신 영화인들과 관객분들, 이 영화와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제게 영화는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더이상 영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현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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