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별명을 ‘심은경과 그의 남자들’이라고 붙이면 어떨까. 최근 몇몇 영화들이 사실상 활약은 남자배우들이 도맡고 주연 여배우 몇명 정도 끼워넣는 식의 구도를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궁합>은 단연코 그것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심은경을 비롯해 이승기, 연우진, 강민혁, 최우식, 조복래 등 젊고 든든한 청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는 조선의 궁궐을 배경으로 부마 책봉을 앞두고 갈등하는 한 옹주의 고민을 담고 있다. 옹주가 직접 나서 부마 후보자들을 검증하고 돌아다닌다는 유쾌한 이야기인 <궁합>으로 연출 데뷔하는 홍창표 감독을 만나 기획부터 개봉까지 꽤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한 과정과 그 이유를 물어봤다.
-<궁합>은 <관상>(2013)에서부터 제작 중인 <명당>으로 이어지는 제작사 주피터필름의 ‘역학’ 3부작 기획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2011년경부터 주피터필름에서 다른 작품을 준비하다가 진행이 잘 안 됐는데 2014년에 이소미 작가가 쓴 <궁합> 트리트먼트를 보고 주피터필름에서 연출을 의뢰했다. <미인도>(2008), <조선미녀삼총사>(2014)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을 하며 사극 현장을 지켜봐온 나의 경험을 제작사도 알고 있었고 <궁합>의 방향과 내가 잘 맞을 것 같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촬영은 주연을 맡은 배우 이승기가 군 입대 전인 2015년에 마쳤는데 개봉은 그의 제대 이후로 미뤄졌다.
=본의 아니게 이승기 배우가 제대하기까지 개봉 시기를 늦춰야 했다. 그동안 후반작업도 꼼꼼하게 했고, 개인적으로는 다음 영화 구상도 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사주팔자를 다루는 영화의 소재에 걸맞도록 크랭크인을 9월9일로 맞추고 9시9분 정각에 첫 사인을 외쳤다고.
=제작사나 내가 사주, 점괘 등을 맹신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웃음) 다만 조언을 구했던 역술가가 의견을 낸 시간이 첫 촬영하기에 전혀 무리 없는 시간이어서 맞추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웃음) 그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촬영 내내 계획된 회차를 넘기지 않았고 크고 작은 사고 하나 없이 잘 끝낼 수 있었다. 여담인데 이소미 작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역술가에게 자문을 구해 캐릭터에 어울리는 가상의 사주까지 전부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각 캐릭터의 대사를 집필해나가기도 했다. (웃음)
-처음 제작사에서 원했던 <궁합>의 방향과 직접 연출을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었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역학 3부작을 기획하면서 <관상>과 <명당>이 정치 소재의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 세편 모두 비슷한 톤 앤드 매너로 만드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궁합>은 로맨스 사극의 색깔을 강조하길 원했던 것이다. 나 역시 <관상>과 색깔이 다른 <궁합>의 방향에 동의해서 연출을 맡겠다고 했다.
-이야기상으로 초고 때와 달라진 점은 없었는지.
=전체 틀은 유지하되 남성 캐릭터의 비중을 조금 더 키우는 변화를 주긴 했다. 장르적으로는 기존의 성공했던 영화와 드라마들이 추구했던 퓨전 사극보다는 멜로의 틀 안에서 정통 사극을 추구하면서 로맨스를 풀어나가는 쪽을 택했다. ‘영조 29년’이라는 정확한 시대배경을 드러내면서 옹주의 부마 간택이라는 가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 점은 당시 그 시대에 실제 극심한 가뭄으로 나라가 고통받았던 현실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프로덕션 디자인 부분에서 비교적 꼼꼼한 고증을 통해 표현하려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여성이 직접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뜬다는 구도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기존의 유사 소재 영화들과 차이를 두기 위해 혹은 참고하기 위해 찾아본 영화가 있었나.
=<궁합>은 사건이 꼬여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스크루볼 코미디다. 구성 면에서는 <로마의 휴일>이나 외모에 대한 고민을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페넬로피>(2006) 같은 영화도 참고했다. 사실 그보다는 가장 영향을 받고 신경 썼던 영화는 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2005)이나 <어톤먼트>(2007)다. 단적으로 송화의 조력자인 도윤과 다아시가 비슷한 맥락의 캐릭터다. 그런데 이 작가도 시나리오를 쓸 때 <오만과 편견>을 생각하기도 했다기에 통하는 바가 있구나 싶었다. 연출적으로는 빛바랜 녹색과 같은 촬영 톤도 영향을 끼쳤다.
-심은경이라는 배우가 지닌 매력을 잘 활용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지닌 재기발랄한 매력은 기존 출연작에서 이미 너무 잘 보여줬다. 그럼에도 아직 여성적인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고 생각했다. 코미디를 내세우지만 결국은 로맨스를 끌고 가는 영화다. 외모를 고민하는 캐릭터라는 설정에 부담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면 못생긴 외모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소문이 만들어낸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이 주된 방향이다. 심은경 배우도 송화의 성장 과정에 많은 부분 공감했다.
-송화가 직접 부마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막으로 구분지어 보여준 이유도 있나.
=송화가 만나게 되는 남자들마다 다른 깨달음을 얻게 해주면서 마치 게임 스테이지가 진행되듯 명확한 구분선을 줄 필요성을 느꼈다. 이소미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데이트 군상 조사를 많이 했는데 유형별로 현대인의 데이트 군상을 넷으로 나눈 셈이다. 나이가 어린 철없는 사람, 외모만 중시하는 사람, 혹은 마마보이나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는 남자친구의 행태 등 유형별로 지금의 고민을 투영해보려고 했다. 사랑을 몰랐던 송화가 그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부마 후보 4명의 캐릭터 구분을 위해 시각적으로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각 캐릭터의 성격을 색상으로도 구분해봤다. 역술가 도윤(이승기)은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벽청색을 부여했다. 또 그의 집은 낮에만 보여준다. 반면에 윤시경(연우진)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인물이기에 영화의 톤 뒤에 숨는 보색의 의미로서 녹색을 입혔다. 강휘(강민혁)는 보라색 의상을 주로 입는데 화려한 유혹의 색으로 설정하는 식으로 구분을 지었다.
-꽤 오랜 기간 연출 데뷔작을 준비했던 터라 이번 현장을 오래 기다려왔을 것 같다.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민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킬러들의 수다>(2001) 메이킹, <울랄라 씨스터즈>(2002) 연출부를 시작으로 영화 현장에 입문했다. <식객>(2007)으로 첫 조감독을 맡았는데 그 이후에 <미인도> <조선미녀삼총사> 등을 거치면서 사극 장르의 맛을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크랭크인 전날에는 떨려서 잠을 못 잤다. 막상 현장에서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많은 스탭들이 집중해서 같이 만들어간다는 행복감이 컸다. 그래서 내 감정이 모든 스탭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시원시원하게 웃고 컷, 오케이 사인도 크고 경쾌하게 외치곤 했다. 그것이 함께 작업한 젊은 배우들에게도 잘 전달됐던 것 같다.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여러 작품을 염두에 두고 고민 중이다. <궁합>의 흥행 결과에 따라 여부가 달라지겠지만. 장르적으로는 정통 멜로영화에 도전해보고 싶다. 이번 영화에서 멜로의 맛보기를 보여줬다면 다음 영화에서는 좀더 진한 감정을 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