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현보다 김기덕을 잡아야 됩니다”라는 영화 관계자의 얘기에 한없이 씁쓸했다. 며칠 전 방영된 <PD수첩> 1145회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초반부에 인용됐던 얘기다. 그 관계자는 <씨네21>이 최초 보도했던 조근현 감독 사건과 비교하며 더 ‘악질’을 폭로해야 한다는 요지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최근 접하고 있는 수많은 가해자들 중 가해자A와 가해자B 사이에서 ‘A가 더 나쁜 새끼네!’라며, 그들 사이에서 엄연한 ‘죄질’의 레벨 차이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죄질의 경중을 따지는 발상이야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발생’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사후 ‘처벌’로 눈 돌리게 만들어, 결국 피해자를 가해자의 들러리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제대로 반항하지 않았나’라고 따져 묻는 것과 별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성추행의 가장 중요한 성립 근거가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인 것처럼, 죄질 또한 그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누구보다 세게 당했다, 누구보다 약하게 당했다, 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조근현이 김기덕보다 약하면 조근현은 막을 수 있는 사람이고, 김기덕은 막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게다가 ‘유명인을 폭로하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PD수첩>의 밀착 취재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절대 아니며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맨 앞에 언급한 발언의 경우 최근 미투운동을 다루는 언론 보도의 선정성에 대해 진지하게 점검해볼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실제로 현재 수많은 매체들이 SNS에서 소리 없는 초성 전쟁을 벌이고 있다. ㅇㅇㅌ, ㅈㅁㄱ, 같은 방식으로 뭔가 알 만한 누군가의 초성이 뜨기만을 기다려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유명 배우 OOO 성폭력 의혹에 휩싸여’라고 바로 기사화해버린다. 그렇게 되면 무고로까지 이어져 오히려 피해자를 더 힘들게 만든다. 가해 사실에 대한 선정적인 묘사 또한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지금의 미투 보도는 누가 더 엽기적인가, 누가 더 거물을 폭로하느냐, 하는 경쟁 구도로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미투 특집호로 준비한 이번 1146호에서, 임수연 기자가 취재를 다녀온 ‘이윤택 성폭력 사건 변호인단 기자회견’ 당시 피해자들이 눈물만 보이려고 하면 취재진의 플래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그래서 역시 이번호에서 이화정 기자가 진행한 김홍미리, 이산, 정슬아, 최기자 씨의 미투 대담에서 이산 활동가의 얘기에 따르면, 기자회견 당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취재진에 ‘씩씩한 표정으로 내보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이른바 ‘피해자상’을 언론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아무튼 곱씹어볼 만한 내용들이 많은 대담이다. 꼼꼼히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최근 미투 제보를 이어가면서 꽤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metoo@cine21.com) 일정과 인력의 한계에도 꾸준히 제보자의 상황을 배려해 직접 만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 사례들을 분석해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씨네21>에만 제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이번호에서 김성훈 기자가 다룬 것처럼 영화제, 혹은 독립영화 현장과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성폭력을 성추문으로 다루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피해사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심지어 미안해하기까지 하는 제보자들을 볼 때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튼 그들에게 계속 응답해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