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엄마의 공책> 오직 가족만을 위한 세월의 비법
2018-03-14
글 : 임수연

치매가 왔다. 다른 것을 몰라도 30년간 반찬가게를 해오며 음식에는 일가견이 있던 애란(이주실)이 갑자기 레시피를 잊어버리고, 아들 규현(이종혁)에게 춘천까지 차로 데려다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고는 정작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자신이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바가지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것도 힘겨울 만큼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런 엄마에게 규현은 살갑지 않다. 교수가 되지 못하고, 교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학교 발전금 5천만원도 없는 가난한 시간강사인 그는 치매가 꽤 진행된 엄마의 집과 반찬가게를 팔면 돈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매정한 생각까지 한다. 하지만 모친의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규현이 춘천에 다시 들르면서 몰랐던 가족사가 드러나고, 엄마가 남긴 레시피 공책은 모자관계를 회복하는 매개체가 된다.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집밥의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이기적이었던 아들이 가족애를 회복해가는 스토리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다. 하지만 엄마의 비밀 레시피를 딸이나 며느리가 아닌 아들이 전수받는다는 설정이 꽤 흥미롭다. 그가 단순히 취미로서의 요리가 아닌 그 이상에 과감히 도전하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 이주실의 노련함이 시나리오 이상의 깊이를 만들어내며, 익숙하다고 여겨졌던 모성애라는 소재를 뭉클하게 구현해낸다. 하지만 갈등의 해소방식이 지나치게 눈에 보이고, 시어머니가 필요할 때만 찾아가고 그녀가 치매에 걸린 후에는 자신의 일만 걱정하는 규현의 아내 수진(김성은) 등 일부 캐릭터의 묘사가 다소 납작하다는 점이 아쉽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성호 감독의 차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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