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3일, 내가 페미니스트이며 여성 혐오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기 때문에 ‘믿고 걸러도 되는 영화평론가’라는 요지의 게시물이 모 축구 게임 커뮤니티, 모 야구 커뮤니티, 모 격투기 커뮤니티, 모 축구 커뮤니티 등에 일제히 올라왔다(<씨네21> 1122호 ‘[페미니즘①] 영화 제작부터 비평까지,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가’ 참고). 몇 시간 만에 많은 커뮤니티에 글이 확산된 만큼 댓글도 많이 달렸다. 이런 게시글에 모욕감을 느껴 9월 18일 서울강서경찰서에 몇건의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중 “메갈, 워마드 간부님”이라는 F모 커뮤니티의 댓글은 실제 벌금형 처분으로까지 이어진 사례 중 하나가 됐다. 피의자가 출석 요구에 응하기까지 두달 정도가 걸렸고, 고소로부터 석달이 지난 후 압수수색검증영장 집행 등 피의자 탐문 수사가 진행됐다. 검사는 벌금형 30만원을 피의자에게 구형했고, 지난 1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박진숙 판사가 같은 처분을 피의자에게 내렸다. 피고인이 약식명령결정문을 송달받은 후(피의자의 부재로 공시송달로 이루어졌다) 1주일 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3월 21일 형이 최종 확정됐다. 피고인이 벌금 30만원을 납입하지 않으면 피고인은 10만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유치된다.
“메갈, 워마드 간부님”이라는 댓글은 진보 성향을 갖고 있는 이를 ‘빨갱이’라 낙인찍던 과거의 풍경을 어렵지 않게 연상시켰다. 내가 댓글을 발견한 F모 커뮤니티에서 메갈, 워마드는 ‘일간베스트’와 맞먹는 반사회적 문제 집단으로, “미친 정신병자”로 통하고 있다. 내가 단지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이들 커뮤니티에서 “미친 정신병자”가 됐다는 데 모욕감을 느꼈다. 나를 비롯한 영화기자들이 아예 페미니즘 비평을 하지 못하도록 눈치보게 만들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한편 지난해 7월 어느 웹툰 작가를 ‘한남충’이라고 지칭한 대학원생이 모욕죄로 3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는 기사도 떠올랐다. 당시 일부 매체는 메갈, 된장녀, 꼴페미 같은 표현이 공공연하게 쓰이는 세태를 꼬집었다. ‘한남충’은 모욕죄가 성립되는데, 정말 ‘메갈’은 성립되지 않는 것일까. ‘메갈’이라는 공격을 받고 느낀 모욕감이 ‘한남충’의 그것보다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메갈, 워마드 낙인은 여성에게만 벌어진다. 한국의 남자 연예인이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면 찬사를 받지만 여자 아이돌들은 ‘Girls can do anything’ 문구가 박힌 폰케이스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2017년 연간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른 <82년생 김지영>(참고로 문재인 대통령도 읽은 책이다)을 읽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이런 온도차는 댓글을 단 사람을 고소하기로 직접 결심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됐다.
“여성이 자신의 발언을 검열하게 하는 혐오 표현이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인정받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신아 활동가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이렇게 바라보았다. 메갈이나 워마드는 여성 전체에 대한 비하가 아닌, 페미니스트로서의 여성을 검열하게 하는 혐오 표현이었다. ‘여성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도 범죄 행위가 된다.
페미니스트를 낙인찍기 위한 다른 표현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트페미’도 새로운 낙인으로 쓰인다. ‘트페미’는 ‘트위터 페미니스트’의 준말로, 말만 할 뿐 진짜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는 경멸 섞인 표현이다. 트페미를 판단하는 기준은 없다. 페미니즘 관련 트윗을 여러 번 리트윗한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트페미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자신의 트위터에 <82년생 김지영>과 관련된 글을 리트윗 했다는 이유로 유저들의 항의를 받고, 그의 작업물이 쓰인 캐릭터의 업데이트가 중지되는 사건이 있었다.
‘메갈’과 ‘워마드’는 여성이 자신의 발언을 검열하게 만들기 위한 혐오 표현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모욕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언어의 사용에 있어 상황과 맥락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같은 단어도 경멸적인 의도로 쓰지 않는 공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황과 발언의 목적에 따라 벌금액도 달라진다. 한편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벌레 같아요. 혼자 살지 못하고 잘 사는 존재에 기생해서 살아야 하는 기생충. 여생충이라고 부르고 싶네요”라는 댓글을 단 어느 네티즌 역시 나로부터 모욕죄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우선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에게 30만원 벌금형을 처분받았고, 판사의 약식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고소, 어렵지 않아요
사실 기사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모욕적인 말을 들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4년 8월 래퍼 블랙넛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을 썼을 때 나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다짜고짜 “씨XX창X” 같은 욕을 하던 네티즌이 있었다. 사이버상 모욕죄로 그를 고소하기 위해 무작정 인근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이런 애들 잡아보면 대부분 고등학생이다. 어린 애 앞날 막고 싶으냐”는 경찰관의 회유로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주변 법조인들에게 의견을 먼저 구했다. “절대 빈손으로 가지 말고 제대로 된 고소장을 써서 가져가야 한다”는 게 조언의 공통된 내용이었다. 고소장을 쓰는 법만 익힌다면 변호사 선임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인터넷에서 ‘고소장 양식’을 검색해 다운로드하거나, 이를 참고한 후 직접 양식을 제작해 내용을 채워넣으면 된다. 사이버상 명예훼손죄 혹은 모욕죄에 해당하는 고소장을 선별해 교본으로 삼고, 직접 고소장을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인적사항, 고소요지, 고소사실, 고소이유 등을 A4 3장 정도의 분량으로 작성하고, PDF 파일로 저장했던 증거자료를 따로 첨부하기만 하면 된다. 고소사실에는 당사자와의 관계, 어떤 법에 근거해 고소를 하는지 명시한다. 고소이유에는 고소자의 이력 및 사건 경위, 피해 사실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나의 경우 고소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겨주어 안정된 기자 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있었고, 명성과 신용이 중요한 직업군에 있는 고소인을 모욕함으로써 명성, 신용하락 등 2차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과연 피고소인이 남성이었어도 그와 같은 댓글을 게시했을지 의문이며, 피고소인의 행위는 여성 기자를 타깃으로 한 매우 악질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이라고 할 것”이라는 내용도 말미에 덧붙였다. 그외 법률 자문이 필요할 경우 한국성폭력상담소(02-338-5801)나 한국여성의전화(02-2263-6464~5)로 문의하면 된다.
명예훼손죄 VS 모욕죄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률)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사실 또는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해당하며, 모욕죄(형법)는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미친놈”은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닌 그저 경멸적인 표현이기에 모욕죄에 해당한다. 그동안 빨갱이, 듣보잡, 함량미달, 개새끼 등의 표현이 모욕죄로 처벌받은 적이 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미니홈피에 여러 번 게재하거나 연예인의 루머를 배포하는 행위는 명예훼손죄로 간주됐다. 두 죄 모두 공연성과 특정성을 충족해야 한다.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특정성은 모욕을 당한 대상자를 불특정 다수가 알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한다. 때문에 직장 동료의 험담을 직장 동료를 모르는 사람들만이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 쓴다면 공연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상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욕은 특정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참고로 친고죄에 해당하는 모욕죄는 피의자의 가해사실을 인지한 지 6개월이 지난 이후에는 고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