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역사 보림극장 건물이 철거되었다”고, 20년 전 부산 보림극장에서 <콘에어>와 <화성침공>을 2본 동시상영으로 함께 봤던 조민준 객원기자가 슬픈 문자를 보내왔다. 문득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이 떠올랐다. 잘나가던 시절 극장 로비에서는 손톱으로 긁어도 버젓이 도금이 떨어지는 가짜 시계를 20만원으로 둔갑시켜 단돈 1만원에 할인 판매한다는 잡상인이 있었고, 극장 안에서는 (무려 영화 상영 중에!) 목에 좌판을 건 판매원이 곳곳을 걸어다니며 간단한 음료와 과자까지 팔았다. 그처럼 잘나가던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에 이르러 2본 동시상영극장으로 탈바꿈했다. 오래전 그날, 교복을 벗고 그렇게 5천원이면 하루 2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웅본색> 1, 2편, <천녀유혼> 1, 2편, <황비홍> 1, 2, 3, 4편을 그렇게 보았으니 홍콩영상자료원도 아연실색할 환상의 프로그래밍이었다. 그런 다음이면, 놀랍게도 이제는 웬즈데이미식회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린 그 옆의 그랜드마더국밥집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어렸을 적 그냥 동네 밥집이었던 곳이 매스컴을 탈 때의 기분이란.
1980∼90년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중 보림극장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 중 교통부가 있던 자리라 하여 ‘교통부’로 불리기도 했던 그 교통부 사거리의 랜드마크였다. 1968년 신축 개관한 이래 곽경택 감독의 <친구>에서 극장 다찌마리 신이 촬영되기도 했던 삼일극장, 삼성극장과 함께 남포동, 서면과 더불어 부산 극장문화를 이끌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한때 조용필, 나훈아 등 가수들의 대형 공연이 열리기도 했으니, ‘시민회관’ 같은 곳이 생기기 전의 부산을 대표하는 복합대형문화공간이었던 셈이다. 당시 부산의 신발산업을 이끌던 ‘타이거’ 공장 노동자들을 비롯해 주변의 젊은 소비자들이 극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공장들이 차례로 문을 닫으며 상권이 죽으면서 어느덧 변두리 동시상영관이 돼버린 것이다. 이후 2006년에는 삼일극장, 2011년에는 삼성극장이 먼저 사라졌었다.
마침 다음주 창간 23주년 기념호 특집을 준비하며, 동료 기자들과 옛날 영화 얘기를 한참 나누던 중 접한 소식에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야기를 꺼냈던 영화 리스트의 상당수가 보림극장에서 본 것들이었다. 아마 <E.T.>도 보기 전에,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극장 관람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림사 영화였을 터다. 웃통을 벗은 소림사 고수들이 행과 열을 맞춰 일제히 규격화된 액션을 펼치던 이미지가 지금도 선명하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그것이 실존 인물 방세옥에 관한 영화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영화’라는 것이 ‘누군가 싸우다 죽는 것’으로 각인됐던 것 같다. 다들 그런 오래전의 ‘원체험’을 극복하며 새로운 영화에 눈뜨게 되는 것일 텐데, 왠지 나는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극장 폐관 소식에, 문득 다른 이들의 원체험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다들 기억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