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를 연출했던 추창민 감독의 <7년의 밤>이 지난 28일 개봉했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 <7년의 밤>은 영화화 소식이 들려올 무렵부터 화제가 됐다. 소설은 출간 이후 누적 판매 부수 50만 부를 넘어서며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많은 독자 팬들을 거느린 인기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할수록, 명성과 관심은 얻기 쉽지만 그만큼 기대도 커진다. 이미 다수의 인정을 받은 작품이기에 더 예리해진 잣대를 피하기 어렵다. 이런 부담을 안고도 소설 원작의 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2018년 개봉을 목표로 하는 국내 소설 원작의 영화화 소식을 전한다.
1. 정유정 <종의 기원>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은 2016년 출간하자마자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은행나무 출판사와 부천만화홀딩스가 영화 판권 계약을 이미 체결한 상태. 매번 다른 악인을 형상화하며 '악'에 대한 시선을 집요하게 유지해온 정유정은 <종의 기원>에서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가 되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가 아닌 '나'로부터 출발한 1인칭 시점의 소설로, 내 안의 악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를 쓰고 싶었다는 정유정 작가.
이민기, 여진구 주연의 <내 심장을 쏴라>와 현재 개봉해 순항 중인 <7년의 밤>에 이어 그의 소설이 영화화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의 다른 소설 <28> 역시 판권 계약을 마쳤다고 하니, 많은 감독들이 탐내는 최다 '스크린셀러' 보유 작가라 할만하다. 정유정 작가는 영화화 과정을 영화감독의 몫으로 존중하고 있지만 '제목을 바꾸지 말 것'과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지 말 것'만 당부한다고.
2. 장현도 <돈> 장현도 작가의 금융 스릴러, <돈>이 영화로 제작된다. 금융가에 대한 신랄한 묘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돈>은 평생을 을(乙)로 살고 싶지 않았던 한 사회 초년생의 위험한 머니 게임을 담은 이야기다. 실제 법인 브로커로 금융가에 몸담았던 작가는 "오로지 극상위의 1%가 나머지 99% 위에서 군림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발버둥 치는 우리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부당거래>, <베를린>의 조감독이었던 박누리 감독의 입봉작으로, 윤종빈 감독이 제작한다.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 세 배우가 주연을 맡아 지난해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돈>은 부자의 꿈을 갖고 여의도에 입성한 주식 브로커가 여의도 최고의 작전 설계자를 만나 돈의 유혹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
3.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약 70만부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서점가를 달구고 있다.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엄마, 남편의 첫사랑 등으로 빙의된 증상을 보이는 평범한 30대 여성 김지영의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 특히 여성들의 공감을 샀다.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이슈의 한가운데 있었던 작품이며, 아직도 '김지영 열풍', '김지영 현상'은 식지 않고 있다.
제작은 박지영씨, 곽희진씨가 꾸린 신생 영화사 '봄바람'에서 맡는다.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세대를 살아온 두 사람은 우연히 접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홀리듯 이끌려 회사의 창립작으로 낙점했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이상 증세를 보이던) 김지영씨가 어떻게 됐는지 소설에선 드러나지 않았다"며, "김지영씨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며 이 아이템을 택한 만큼 결말에 대한 고민을 더 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4. 장강명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해 2016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장강명 작가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김씨 일가의 세습 통치 체제가 붕괴된 미래의 북한. 자본주의가 도입돼 마약 카르텔 조직이 창궐하는 등 북한의 어두운 미래상을 담은 사흘간의 이야기다.
출간 4개월 만에 영화화가 결정된 스토리가 독특하다. <국가대표>, <신과 함께-죄와 벌>의 감독 김용화가 대표로 있는 VFX전문업체 덱스터스튜디오에서 영화화를 적극 제안했고,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합세했다. 위즈덤하우스는 이례적으로 영화 판권 판매대금 전액을 영화제작에 투자하며 "이를 계기로 출판 바탕의 콘텐츠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5.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제31회 신동엽문학상, 제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조해진 작가. 그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가 <로기완>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벨기에로 밀입국한 스무 살 탈북인 '로기완'과 그를 추적하는 방송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이국에서 느껴야 했던 고독과 생경한 감각들의 묘사로 삶의 근원적인 슬픔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로기완>은 '용필름'에서 제작을 맡아 <은교>, <침묵>의 정지우 감독과 오래전부터 개발 중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가진 묵직함을 풀어내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판단에 보류됐다가,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김희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재각색 단계에 있다. 조국과 언어를 상실한 탈북자 '로기완'역으로 배우 송중기가 낙점됐다는 소식이 지난해 7월 한 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나, 송중기 측은 "제안받았지만 확정하지 않았다"며 용필름 관계자도 "아직 시나리오 작업 단계이지 캐스팅을 논할 시기는 아니"라고 일축했다.
이미 소설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원작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사례가 즐비하다. 소설과 영화는 애초에 다른 영역이라는 점을 알지만, 영화가 완성되기 전부터 인지도와 관심을 보너스로 안고 가는 만큼 대중들은 더욱 신중한 태도를 원할 것이다. 언어로 구현된 완성도를 그대로 똑같이 답습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서로가 다른 예술이라는 각각의 역할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려주길 바랄 뿐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