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용 감독을 만난 게 2015년 가을이니, 만 3년 만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말미에 후반작업 중이라며 꺼내놓은 영화가 바로 <바람의 색>이었다. 아야세 하루카가 주연한 <싸이보그 그녀>(2008) 이후 두번째 한·일 합작영화. 이번엔 일본 시장을 고려해 원작을 먼저 개발시킨 점 등 준비도 철저히 했다. <바람의 색>은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하는 천재마술사 류(후루카와 유우키)와 아야(후지이 다케미)의 사랑 그리고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료와 유리 사이의 얽히고설킨 감정의 타래를 좇아간다. 도플갱어와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는 인물들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픔과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멜로영화의 클래식한 본질이다. 멜로영화의 장인 곽재용 감독이 그간 영화에서 전달하려는 본질은 그대로이지만 이번에는 재료가 많고 한층 복잡해졌다. 멜로 장르가 부진한 가운데 곽재용 감독이 쉬지 않고 또 한번의 도전장을 관객을 향해 던졌다.
-<시간이탈자>(2015) 이후 오랜만의 신작 소식이다. 한국, 중국, 일본을 종횡무진 오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일단 지금의 거처가 어딘지 궁금하다. (웃음)
=지금은 한국이다. (웃음) 마침 얼마 전 중국에 다녀왔다. 준비하던 <양귀비>가 불발된 이후 또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 <영하 37도>라는 작품으로 사이보그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그린 SF 멜로드라마다. 중국 시나리오인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문제로 작업이 일시정지된 상태였다가 이번에 다시 본격적으로 각색을 했다. 이제 중국 작가가 합류해 중국어로 번역하는 중이다.
-지난 인터뷰 때 <바람의 색> 후반작업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게 2015년이었으니, 개봉이 꽤 늦었다.
=시나리오를 쓴 게 2010년이고, 촬영이 2015년이니 꽤 오래 작업했다. 일본이 워낙 제작 기간이 긴 편이고, 중국의 사드 문제도 영향을 줬다. 일본에서 <싸이보그 그녀>를 개봉한 후 중국, 대만까지 순식간에 불법파일이 유통되는 걸 보면서, 사드 문제가 해결되고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수 있을 때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앞서 지난 1월에 개봉했다. 원작을 먼저 만들고 영화화하는 전략으로 접근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제 일본영화계는 원작이 있고 그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순서다. 일종의 편법을 쓴 건데, 일본 출판사 소학관에서 내가 쓴 원안으로 만화를 만들어 먼저 연재를 하고, 이후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를 했다. 아쉬운 게, 만화가 좀더 잘 됐으면 투자와 배급에 힘을 더 받았을 텐데 그 효과를 얻지 못했다. 또 일본은 배급을 하려면 P&A비용이 영화 제작비에 상응하는 정도가 되더라. 그런 점들도 영화를 확대 개봉하지 못한 요인이 됐다.
-<싸이보그 그녀>의 SF적인 설정, <시간이탈자>의 타임슬립과 스릴러 장르의 차용 등으로 볼 때 이번에도 도플갱어, 마술 등으로 판타지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멜로의 다변화라는 고민을 반영한 선택처럼 보인다.
=<싸이보그 그녀>는 솔직히 멜로 장르에 대한 위기의식이 전혀 없을 때 시나리오를 쓴 것이었다. 당시 내가 가진 SF 장르물에 대한 순수한 관심에서 시작했다. <시간이탈자>는 오히려 멜로를 앞세우고 만든 게 아니었는데, 쭉 멜로영화를 만들어와서인지 멜로를 바탕으로 다른 장르를 접목했다고 보는 데서 오는 온도 차가 있긴 했다. 어쨌든 지금은 멜로드라마가 장르 중에서 가장 하위이자 새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걸 극복하자면 뭔가 미스터리하거나 다른 장르의 재미를 접목시킨 작품이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요즘 극장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리메이크되고 호응이 좋은 걸로 하는데 역시 판타지와 미스터리적 측면이 재미를 준다고 본다.
-<바람의 색>은 그런 점에서 볼 때 곽재용 감독이라서 시도했지 싶은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끈다. 도플갱어인 남자와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는 여자가 도쿄와 홋카이도를 오가며 겪는 감정의 혼란을 그리고 있다. 꽤나 복잡하고 독특한 설정인데, 컨셉의 시작점은 어디서 왔나.
=홋카이도 여행이 먼저였다. 2002년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을 때 그곳 바다를 보는데, 유빙이 떠다니는 바다로 마술사가 들어가는 이미지가 생각났다. 홋카이도를 보면 도쿄와 비슷한 지점이 많다. 도쿄타워와 홋카이도의 TV타워도 똑같이 닮았다. 거기서 연상을 해 도쿄타워에 있는 여자와 TV타워에 있는 여자가 같은 여자라면, 이런 생각들이 덧붙여졌다.
-분열된 자신의 자아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도플갱어가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해석되고, 그래서 주로 스릴러, 공포영화의 재료로 사용되어왔다. 멜로 장르에 이 소재를 활용하자면, 그 공포감을 제거해야 했다.
=도쿄에 있는 여성 유리가 홋카이도에 있는 여성 아야를 자신의 도플갱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보니 다중인격이었다. 최대한 판타지성을 걷어내고 현실적으로 풀어가려고 고민했다. 공포, 스릴러 장르에서 도플갱어를 보면 평범한 한쪽과 달리 다른 한쪽의 존재는 나쁜 짓을 한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당연해 보이는 설정이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결론을 내렸다. 나와 닮은 도플갱어가 어딘가에 있고, 그 도플갱어가 악행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나’의 사랑을 위해 희생을 한다는 시나리오를 썼다. 사실 촬영 직전까지 시나리오에서는 거의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도플갱어로 설정한 남자인 주인공 류와 료가 마술사여서 영화에 크고 작은 마술 기술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마술이 영화에 판타지적인 면모를 더해주었다.
=이 영화에 마술 같은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술을 보면 쌍둥이 이미지를 활용한 것들이 많다. 이쪽에서 사라졌다가 다른 쪽에서 나타나고. 도플갱어를 비주얼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또 하나는, 멜로드라마에서 사랑이라는 결론으로 가기까지의 어려움과도 연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고백하지만 이루어지는 건 어렵다. 소위 둘 사이에 탁, 하고 통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마술도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탁, 하고 통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마술과 사랑에 공통적으로 있다고 봤다. 영화 속 마술 바 같은 공간이 일본에 실제로 많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트릭의 비밀을 궁금해하는 것과 달리 일본인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보고 즐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 행복한 순간을 끌어오려고 했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도 크다. 아야는 연인 류와 한번 그리고 이후 그의 도플갱어인 료와 한번 홋카이도의 유빙선을 타고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경험한다.
=유빙이라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더라. 유빙은 북극에서 빙하가 오호츠크해로 떠내려온 것이고, 말하자면 빙하의 죽음을 뜻한다. 빙하의 제일 마지막 단계의 모습이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라지는 것 같더라. 류가 탈출 마술을 하다가 사라질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라진 것처럼 그런 비주얼적인 연상작용을 가져갔다.
-감정을 따라가는 장면 외에 유독 액션 신이 많았다. 예를 들어 료가 타고 가는 기차와 아야가 타고 가는 자동차가 평행으로 달리는 장면은 설계부터 까다로웠을 것 같은 도전이었다.
=촬영감독이 그러더라. 멜로드라마에서 이렇게 속도감 있는 장면을 찍는 건 처음이라고. 유빙 장면을 비롯해 그 장면을 모두 홋카이도의 아바시리에서 찍었는데, 여행을 하다가 기찻길과 찻길이 같이 가는 풍경을 알게 됐다. 촬영은 총 8일이 걸렸다. 기차가 하루에 네번 오니 그것에 맞춰서 찍고, 기차 내부와 차 내부 장면을 따로 찍고, 또 드론 촬영으로 기차와 자동차가 함께 달리는 장면을 찍었다. 사실 촬영을 20년 이상 하다보니 이런 장면은 머릿속에서 그린 순서만 잘 맞으면 큰 문제가 없다. 특히 요즘은 현장편집이 있어서 더 수월한 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린 건 삿포로에서 아바시리로의 이동 시간이 5시간인 데다가 해가 오후4시면 지는 터라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마찬가지로 류와 료가 바다에 들어가는 마술을 보여주는 장면은 두 연인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몰아넣는 장치였지만, 영화의 스케일을 확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했다.
=이 영화를 하면서 제작비가 큰 작품이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마술 장면을 찍는 데 드는 비용은 정말 만만치 않더라. 그 장면을 홋카이도 북단에서 찍었는데 도쿄에서 웬만한 촬영장비를 모두 옮겨 와서 찍어야 했다. 작은 마을이라 사람들도 없어서 마술쇼 관객으로 등장한 보조출연자들도 모두 도쿄에서 갔다. 그때 현장에 있던 아내와 딸(곽재용 감독의 딸이 직접 영화음악 중 한곡을 작곡하기도 했다.-편집자)까지 모두 보조출연자로 출연했다. (웃음) 무엇보다 콘티 없이 찍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간이탈자>를 찍고 바로 이 촬영이 시작되는 바람에 콘티를 포기했는데, 정말 너무 긴장되더라. <싸이보그 그녀> 때의 미술팀장(마쓰모토 지에)이 이번엔 미술감독으로 참여했고, 마술 세트장도 다 만들었다. 한번 호흡을 맞췄던 사람이라 다행히 소통이 잘됐던 것 같다. 이 장면 찍고 나면 머리가 하얗게 셀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흰머리가 한두개 생겼다. (웃음)
-주연배우를 제외하고 주요 스탭들을 한국 스탭으로 꾸렸다.
=촬영은 <시간이탈자>의 이성제 감독이 했고, 후반작업은 전부 국내 업체에서 진행했다. <시간이탈자>의 스탭들과 거의 함께했다. 한·일 합작영화라 프로듀서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싸이보그 그녀>, <사요나라 이츠카>(2010)로 해외 합작을 해 온 황용순 프로듀서가 조율해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허진호, 박찬욱 감독 등 해외에서 작업한 감독들이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하지만 해외에서 영화를 찍는 일은 상당히 힘들다. 언어와 감정이 통하지 않는 현장이다보니 지금까지 하려던 방식을 고집하면 다 틀어진다. 중국에서 준비하던 <양귀비>의 경우 내 스타일로 하려다 결국 불발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땐 ‘왜 곽재용을 불러다 그쪽 방향으로 하려고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마 해외에서 작업하는 감독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부담일 것이다. 허진호, 박찬욱 감독처럼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웃음) 결국 나는 한번 실패했지만 그 실패를 교훈 삼아 또 이렇게 작업을 하고 있다.
-멜로 장르의 시장성을 확보하려는 고민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 전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 한가운데에서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에서 제작을 하고 아시아 시장을 전체 관객층으로 가져가는 감독이라는 점에서는 독보적인 길을 걸어왔다.
=시장에서 멜로의 위기를 나 역시 체감한다. 멜로장르는 점점 작가의 영화로 치부하지 않는 분위기다. 해외 작업을 모색하는 것이 어쩌면 자구책이기도 하다. 물론 그만큼 내 영화가 다른 나라에서 볼 때 친숙하게 느껴지고 평가된다는 데 대해서는 한편으로 감사하다. 이렇게 해외로 확장해나가는 걸 보고 부러움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래도 ‘멜로의 장인’이라는 수식을 얻었다면 자국에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할 텐데, 이제는 그런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싶다. 나 역시 한국에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1989년 <비 오는 날 수채화>로 데뷔를 했으니 벌써 영화계에서 활동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돌아보면 내 나이에 연출을 하고 있는 감독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더라. 그럼에도 꾸준히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당신의 기존 작품들은 어느덧 한국 대중 상업영화의 모범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클래식>(2002) 재개봉 소식도 들려온다.
=<클래식>은 당시 150만명 관객을 동원해서 비슷한 시기 개봉한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흥행은 밀렸던 작품이다. 로맨틱 코믹물이 잘되던 때라, 정통 멜로인데도 괜히 손예진씨의 춤추는 장면을 내세워 코믹한 부분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하기도 했었다. (웃음) 얼마 전 디지털 4K 작업으로 리마스터링을 끝냈고, 재개봉 계획을 잡고 있다. 작업하고 손예진씨와 다시 영화를 봤는데 정말 말이 안나오게 아름다운 배우더라. 손예진씨가 “내가 봐도 내가 예쁘다”고 할 정도였다. (웃음) 손예진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기하는 배우다. 그가 한 노력에 대해 당연한 평가와 찬사를 받아야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간직한 영화를 앞으로 영원히 남을 자료로, 리마스터링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