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나를 기억해> 이유영 - 결말의 반전이 나를 사로잡았다
2018-04-17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나를 기억해>에서 이유영이 연기한 서린은 과거를 지운 채 사는 여자다. 어린 시절 겪은 성범죄 사건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 탓이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뒤 약혼자와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마스터’라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온 문자 한통은 그녀의 새로운 인생에 균열을 일으킨다. 흥미로운 건 서린이 환기된 과거에 숨기보다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맞서 싸우려 한다는 점이다. 데뷔작 <봄>부터 이번 영화까지 매 작품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이유영은 서린에게 장르영화 속 인물에게서 볼 법한 계산된 연기보다 따스한 체온을 불어넣었다. 현재 MBC 단막극 <미치겠다, 너 땜에!> 촬영으로 한창 바쁜 이유영을 만나 나약함에서 강인함으로 자연스럽게 변모하는 서린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단막극 제목이 <미치겠다, 너 땜에!>던데. 누구 때문에 미치는 건가. (웃음)

=남자친구(김선호) 때문에. (웃음) 8년 된 친구와 하룻밤을 보낸 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춘 이야기다. 보통 드라마와 단막극은 사전 제작하는 방식이고, 촬영기간이 짧은 까닭에 감독님,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나름 편하다.

-영화 <나를 기억해>는 언제 찍었나.

=지지난해 겨울이니까 개봉까지 1년 넘게 걸린 셈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감독 홍상수)을 그해 여름에 찍고, 가을부터 <나를 기억해>를 촬영했다.

-홍상수 감독 영화를 찍고 난 뒤 장르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보다.

=특별한 장르를 따지지 않는 편이다. 뭔가 하고 싶다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에서 ‘잘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선택한다.

-<나를 기억해>는 시나리오의 어떤 면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가.

=결말이 충격적이었고, 그 결말 때문에 시나리오가 매력적이었다. 원래 서린의 고등학교 시절과 성인 시절 모두 연기하는 설정이어서 배우로서 욕심도 났다. 여러 이유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을 연기할 배우가 따로 캐스팅됐지만 말이다. 마침 (김)희원 선배님으로부터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와서 출연을 결정했다.

-결말이라면 마스터의 정체 말인가. 마스터가 누구기에? (웃음)

=마스터의 정체를 알았을 때 범죄자보다 피해자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청소년 성범죄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 만큼 마스터의 정체가 관객에게도 충격적으로 다가갈 것 같다.

-촬영 당일 대본이 나오는 까닭에 배우가 사전에 따로 준비하지 않는 홍상수 감독의 작업이 <나를 기억해>를 준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

=홍 감독님 영화 이후에 찍은 작업들은 완벽하게 준비를 해가기보다는 현장에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다. 상대배우에 따라 연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준비를 아예 안하고 현장에 가면 못하겠더라. (웃음)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서린은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서린은 어렸을 때 겪은 ‘몰래카메라’ 사건의 피해자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숨어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과거 일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반 학생이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는 걸 보고 ‘몰래카메라’와 맞서 싸우기로 한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여자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어 도전해보고 싶었다.

-겉으로 드러난 설정보다 과거 사건이 인물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감독님께서 서린이 겪은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보내줘 읽기 전까지 ‘빨간마후라 사건’(1997년 남자 고등학생 4명이 여자 중학생을 성폭행하고, 집단 성행위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고 이 동영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와 파일이 온·오프라인으로 유통된 사건.-편집자)을 전혀 몰랐다. 요즘도 많은 여성들이 성범죄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부터 파악했다. 서린이 당한 일을 겪어본 적 없기 때문에 그녀의 상처를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감정이나 일들을 떠올리면서 캐릭터를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매 장면이 감정 신이라 현장에서 감정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가편집을 보니 내 연기가 너무 아쉬웠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서린의 감정이 이럴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작업했는데 막상 연기를 해보니 잘 모르겠더라. 서린이 오랜 시간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온 캐릭터다보니 세월의 흔적을 깊이 있게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스릴러 장르의 특성상 감정을 계산적으로 쌓아가는 작업이기도 했을 것 같다. 그 점에서 스릴러영화 <그놈이다>(감독 윤준형)를 찍은 경험이 도움이 되던가.

=<그놈이다>에서 연기한 시은에 비해 서린은 좀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장르적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감독님은 서린을 장르영화 속 인물로 생각하신 것 같아 현장에서 부딪힐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결했나

=어떤 장면은 감독님과 내 의견을 반영해 모두 찍기도 했다. 나중에 영화를 보니 감독님이 서사에 긴장감을 좀더 구축하기 위해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됐다. 덕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 매끄럽게 연결되더라.

-극중 서린이 세정(오하늬)과 상담하다가 세정으로부터 “선생님 같으면(몰래카메라 피해를 당하면) 어떻게 하실 거냐”라는 질문을 받고 “숨어 살 것 같다”고 대답하지 않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나.

=나라도 서린과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질문도 하고 싶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했는데, 축하한다.

=졸업하기까지 무려 7년 걸렸다. (웃음) 22살에 입학해 데뷔작 <봄>을 3학년 때 찍었으니까. 이후 영화를 찍느라 졸업이 늦어졌다.

-매 작품 맡는 인물이 달라 인상적이다.

=필모그래피가 어떤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원래 성격이 항상 발전해야 하고, 열정적이어야 하며, 가만히 있으면 편하지가 않다. 뭐라도 해야 한다. 매번 ‘이유영’ 같은 연기만 하면 재미없잖나. 그래서 막 한다. (웃음) 그렇다고 아무거나 하는 배우는 아니다.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야 선택하는 거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연기한 소민정

매 작품 장르도, 인물도 다른 까닭에 이유영이 맡은 캐릭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중에서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그녀가 맡은 소민정(왼쪽)은 때로는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 같기도 해 어떤 인물인지 감을 잡기가 더더욱 어렵다. 이유영에게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은 “평소 알지 못했던 내가 가진 면모나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는 현장”이다. “날씨를 포함한 현장의 모든 상황이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는 작업이니까. 살아 있는 연기가 가능한 것도 그래서”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영화 2016 <나를 기억해> 201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2015 <미스터 쿠퍼> 2015 <그놈이다> 2014 <간신> 2014 <봄> TV 2018 <미치겠다, 너 땜에!> 2017 <터널>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