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서울에서 열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대국민 사과와 혁신 다짐 기자회견’에서 오석근 영진위 위원장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 지난 1월 8일 취임한 뒤 3개월 만에 이루어진 첫 공식 대외 행보에서 영진위가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기관임을 인정하고 국민과 영화인들에게 공식 사과한 것이다.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영진위의 존재 가치와 영화계의 신뢰를 원상 복구시킬 수 있는 소방수로서 오석근이라는 이름이 처음 거론됐을 때, 영화계가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은 것은 영화 현장(영화감독)과 행정 경험(부산영상위원장)을 두루 경험한 그의 이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리라. 충무로가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포함한 굵직굵직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 오석근 위원장 체제의 영진위에 걱정이나 불안감보다 기대를 보내는 것도 그래서다. 3년이라는 임기로 구원 등판한 ‘소방수’ 오석근 위원장은 불을 깔끔하게 끄고 마운드를 내려갈 수 있을까.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4월 10일, 새로 출발한 영진위의 비전에 대해 들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업무 파악은 다 끝났나.
=완전히 파악했다고 할 수도 없고, 안 됐다고 할 수도 없고. (웃음) 조종국 사무국장과 함께 쉬는 일정 없이 영진위 안팎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밖에서 영화계 각 단체들을 만나고 있고, 조사무국장은 안에서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산적한 과제가 많아 업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또 그렇지도 않다. 여기 오자마자 직원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위원장과 사무국장이 공석이었을 때 영진위의 위상이나 직원들의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으니 회복할 계기가 필요했을 거다. 직원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있고, 지난 정권에서 문제가 된 직원들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으며, 본부장들은 자발적으로 사의서를 내게 제출했다. 모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해 내린 행동이었다. 나나 조 사무국장이나 영진위 업무가 아주 낯설진 않다. 조 사무국장은 그간 영진위 밖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영진위를 지켜봐온 사람이고, 나도 영진위가 영화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기관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난 4월 4일 영진위는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것에 대해 국민과 영화인들에게 사과했다. 위원장의 첫 대외 공식 행보로 사과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블랙리스트 사건은 오랜 기간 영화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라 할 만큼 모두가 체감해온 문제고 이와 관련한 피로도 역시 상당히 누적된 상태다. 그래서 사과가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과거를 정리하지 않으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
-밝혀진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만 56건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땠나.
=블랙리스트 사건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텐데 오랫동안 지켜봐온 까닭에 어떤 점에서 ‘이것밖에 안 됐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더 많이 드러날 것 같고. 이번 사과 기자회견을 두고 어떤 시각에선 위원장이 당시 사건 책임자도 아닌데 영진위에 합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사과하는 건 쇼라고 문제제기할 수 있어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로서는 변해야 되잖나. 영진위 변화의 패러다임은 ‘앞으로 영진위가 어떤 정책과 사업을 할 것인가’에서 ‘영화계에서 필요한 사업을 영진위가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직원들에게도 그걸 주문했다. 그러려면 영화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영진위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자회견 전,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영화인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피해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어떤 분들은 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과한다는 건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건 오석근 개인이 아닌 영진위가 하는 거다. 누군가가 조직을 대표해 사과해야 하니 위원장을 맡고 있는 내가 한 거다. 이런 입장을 가지고 전화를 드렸더니 피해자의 80%는 다 웃었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시절이 왔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머지 20%는 아직 안 풀렸다. 블랙리스트 때문에 삶이 피폐해졌고 지원금을 받지 못해 극장이 파산했는데 이제 와서 사과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냐며 전화를 받기 싫어하는 분들도 계셨다. 통화 연결이 안 된 분들께는 사과 문자를 따로 드렸다. 그들과 함께 블랙리스트 피해 후속 프로그램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보려고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댄 뒤 후속 프로그램을 짜서 내년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5월 초부터 준비할 계획이다.
-영진위의 사과와 반성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지금부터 활동이 시작될 내부 ‘영화진흥위원회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과거사 특위)의 조사 활동에 달려 있을 것 같다. 위원장으로서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와 검찰, 특검 조사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조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 있다면 관련 절차를 밟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후속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사 특위를 통해 영진위 자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철저히 밝히고, 이것을 백서에 담아낼 것이다.
-사무국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조직 개편을 준비할 때 어떤 고민을 했나.
=가장 큰 고민은 우리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 밑바탕에는 ‘우리(영진위 직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다고 본다. 우리는 공무원일까, 아니면 영화인일까. 직원 모두와 일일이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직원들은 영화가 좋아서 영진위에 들어왔고, 영화 일을 하는 데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자존감이 지난 9년 동안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무너진 자존감을 세우지 못하면 한국 영화인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영진위로서 업무를 전혀 할 수 없으니 그것부터 세우는 것이 위원장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번 인사 결과에 대해 서운해하는 분도 있겠으나 이 흐름을 대놓고 거부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명분 또한 없었던 것 같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미래설계TF 운영 결과도 발표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영진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는데 이중에서도 지난 9년간 자취를 감추었던 정책 연구를 부활시킨 게 눈에 띈다.
=미래설계TF 운영 결과는 내가 영진위에 오기 전에 이준동 부위원장과 영진위원들이 준비해 마련한 것으로, 나는 숟가락만 올렸다. 영진위 역할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영화계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고민하고, 개발해 제시하는 거다. 또 하나는 공정한 환경을 조성하는 조정자 역할이다. 이 역할이 영진위의 존재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제대로 작동이 안 되어왔고, 영화계 또한 영진위에 조정자 역할을 항상 요구해왔다. 정책 연구를 어느 정도의 규모로 키울 것인가는 ‘앞으로 우리가 영화계와 얼마나 얘기를 나눌 수 있는가’, ‘얼마만큼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가’와 관련 있다. 영진위원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정책 연구에 힘을 실을 생각이다.
-역점 사업과 관련된 질문도 하겠다. 아시아영화진흥기구(AFPA)를 설립할 계획을 밝혔는데, 어떤 배경에서 구상한 그림인가.
=한국영화는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파이를 더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파이를 키운다는 게 규모의 성장을 의미하는 동시에 미래 투자를 위한 인적 교류 같은 다양한 문화 교류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국제 사업 혹은 해외 시장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우리 내부의 논의와 정리가 필요하다. 가령, 우리에게 프랑스는, 미국은, 남미는, 또 중국은 무엇일까. 영진위가 해외 사업을 하기 위해 각 나라들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접근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아는 한국영화에 우호적이고, 한국영화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열망이 무척 크다. 그래서 한국과 교류하고 싶어 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인적 교류, 공동제작, 영화 교육 등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이번 홍콩필름마트에서 베트남, 싱가포르를 포함한 아시아 11개국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논의를 하기 위한 미팅이었겠다.
=변화한 영진위에 대해 해외 영화계와 해외 정부에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아시아영화진흥기구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그 취지와 목적에 대해 처음으로 소개하는 기회였다. 내가 만난 아시아 각 나라 정부 관계자들은 연대의 필요성, 특히 문화 및 인적 교류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필리핀, 싱가포르 등은 매우 적극적으로 함께할 의사를 내비쳤다.
-굉장히 큰 그림인데 첫 단추를 올해 안에 꿸 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 게 목표다. 다음주에 중국 베이징에 가서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을 만날 계획이다(지난 3월 중국 양회 결과,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을 국가방송총국으로 재편해 국무원 직속기구로 관장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국가가 영화사업을 챙기겠다는 뜻이다.-편집자).
-또 영진위는 영화 프로젝트 파이낸싱 보증을 위한 한국영화 제작보증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영화산업이 대기업과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저예산 영화 제작을 위한 자본 조달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영화 제작보증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영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위한 보증제도 신설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는 메이저 투자·배급사 중심의 산업구조가 형성되면서 중소 제작사가 기획하는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이 어렵고, 제작자가 창작한 지적재산권(IP)이 투자·배급사에 귀속되는 등 영화산업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인 까닭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다른 기관의 콘텐츠(영화 포함) 보증제도가 융자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영화 프로젝트 자금 조달 역할의 한계가 있었던 부분을 고려하여, 영화산업 구조에 맞는 투자방식의 보증제도를 신설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 연구 과제가 완료되고, 보증제도 운영을 위한 적정한 예산 규모가 나오면 그에 적합한 한국영화 제작보증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 보증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현재 대기업과 중소 규모 회사간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도 개선되고, 극장과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한국영화 또한 지금보다 더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뒤늦은 질문이긴 한데 위원장직을 왜 수락했나. 이렇게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웃음)
=솔직히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영진위원장을 꿈꾼 적이 없다. 영진위원장을 수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김)지석(전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이의 죽음이었다. 지석이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지석이가 칸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일은 나를 뒤흔들었다. 모든 걸 새로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화계에서 ‘영진위원장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어떠냐’라는 얘기를 전해들었고, ‘맡겨주시면 하겠다’고 한 거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살면서 ‘내가 영화인인가’라고 자문했을 때 선뜻 ‘그렇다’고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감독도 아니고, 흥행에 성공한 적도 없었으니까. 영진위원장이 되는 건 영화인이 되는 것이고, 영화인으로 받아준다는 뜻이잖나. 그게 영진위원장이라면 받아들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3년 동안 ‘영화계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모든 것을 영화인과 함께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일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