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이어진 영화제 뒤풀이에서 인사불성이 된 감독이 동석자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3월 <씨네21>에 피해 사실을 제보해온 A씨와 <꿈의 제인>(2016)을 연출한 조현훈 감독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A씨는 조 감독의 단편영화 <서울집>(2013)이 상영됐던 2013년 인디포럼 기간에 그를 알게 됐다. 초청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두 사람은 안면을 트게 됐고, 영화제 기간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사건은 폐막식 날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던 뒤풀이 현장에서 벌어졌다. A씨와 자원활동가, 조현훈 감독 등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동석한 자원활동가는 인사불성이 된 감독의 상태를 보고 A씨에게 “저분을 조심하셔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지만, A씨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많고 밝은 식당에서 무슨 짓을 하겠느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2013년 영화제 뒤풀이에서 생긴 일
그런데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조현훈 감독이 갑자기 손을 뻗어 A씨의 가슴을 만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A씨는 순간 몸이 굳어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고, 가방에 들어 있던 포스터를 꺼내 조 감독의 머리를 때렸지만 그에게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조 감독의 행동을 제지하고 나서야 그는 A씨의 가슴에서 손을 뗐다. 이 광경을 목격한 다른 여성감독들이 그를 호되게 질책했지만 조 감독은 여전히 정신을 잃고 몽롱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는 게 A씨의 기억이다.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 “신발을 신고 나오는데도 무서웠다. 불쾌한 일을 당해서 자리를 일찍 뜨는 것일 뿐인데 그 자리에 있던 가해자가 이 모습을 보는 것조차 꺼림칙했다. 아마 많은 피해자들이 폭로나 고발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알리는 것조차 꺼리는 이유가 이것 때문 아닐까 싶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사실을 가해자 또한 알게 되는 것이 자신의 일이나 인간관계 등에 줄 영향, 작게는 여러 가지로 ‘껄끄러워질’상황이 두려웠다.”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이 지난 뒤 A씨는 조현훈 감독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날 술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죄송하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A씨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직접 다시 말하게 한 조 감독의 전화가 “말 그대로,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정확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의 사과를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A씨는 사건 이후에도 직간접적으로 조현훈 감독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한 영화제에서 마주칠 때면 불편한 듯한 눈인사 정도만 나눴고, 지인들에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꿈의 제인>이 상영된다는 소식 등을 들으면서 당시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답답해하기도 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는 이같은 일에 대해 “감독과 자원활동가 혹은 스탭 사이에 권력관계가 있고, 같은 감독의 지위라도 젠더·나이·경력상의 위계가 존재할 수 있다. 이 판에서는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퍼져나갈지 알 수 없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주변에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조현훈 감독은 사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술을 마셔서 만취 상태가 됐던 것 같다. 그날 일이 기억나지 않지만, 동석했던 사람들로부터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A씨에게 전화를 했다.” 다만 조 감독이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A씨에게 물었던 이유는 A씨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자리에 있던 영화인 중 안면이 있던 사람은 A씨뿐이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화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두달 동안 조현훈 감독은 A씨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어 일부러 들꽃영화상을 비롯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고 A씨에게 연락을 몇 차례 취했다고 말했다. A씨는 그와의 통화를 거부했다. 조현훈 감독은 기자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다시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대신 장문의 문자를 남겼다.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다. 개인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변호사를 통해서라도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자숙하고 반성하며 살아가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A씨에게 감독의 의견을 전달하자 A씨는 “사과하고 싶다며 보낸 문자는 이미 봤다. 5년 전과같이 직접 전화를 받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차단한 것이다. 피해자에게 거듭 연락을 반복하는 것이 2차 가해이자 일상을 지속하는 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해 유감이다.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디포럼에 사실 관계 확인으로 연락을 하자, 당시 영화제 관계자는 다른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조현훈 감독이 만취 상태로 술자리에 참석한 한 여성의 팔을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하는 등 술주정을 하자 영화제 일부 관계자가 “저런 행위는 문제가 되니 따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나눈 적이 있는데, 아마 그 일이 아닐까 추측했다는 것이다. 확인해 보니 인디포럼이 설명한 사건 속 여성과 A씨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조현훈 감독은 또 다른 사건의 존재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인디포럼으로부터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다. 그 사람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
영화제 뒤풀이, 음주 문화…
적지 않은 영화제에서는 영화인들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도모하기 위해 술자리를 갖는 문화가 존재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실시하는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남순아 감독은 “늦게까지 술자리를 갖는 것이 영화제의 재미라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소위 예술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술을 먹고 어떤 기행을 저지르든 허용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게 변명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영화제는 감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감독에게 권위를 주는 곳이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더더욱 그렇게 해도 된다고들 생각한다”고 이 문화를 비판했다. 인디포럼2018을 앞두고 있는 박홍준 의장 역시 “뒤풀이는 1차 정도에서 마무리한다든지 일찍 마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개인적인 의견을 밝혔다. 한편 이 사건은 영화제 공식 뒤풀이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주최쪽에도 명백한 책임이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영화제를 매개로 이루어진 사건은 다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제와 분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주최쪽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뒤풀이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매뉴얼이 부재하고, 당시 대처 능력이 상당히 부족했다는 것이다. 인디포럼에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가 있었는지 문의했지만 인디포럼은 당시 현장에서 벌어진 A씨와 관련된 사건은 인지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여러 영화제에서 지지난해부터 불거진 영화계 내 성폭력 이슈와 미투(#MeToo) 운동 이후 나름의 대책을 강구 중이라는 사실이다. 조현훈 감독 사건이 벌어졌던 인디포럼의 경우에도 지난해부터 자원활동가를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내부 상임작가를 대상으로도 교육을 시행했다. 하지만 영화제 뒤풀이의 중심이 되는 초청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예방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진위에서는 성희롱 예방 교육의 강사료를 전액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비용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감독들의 참여도가 관건이다. 박홍준 인디포럼 의장은 “얼마 전 올해 인디포럼에 참여할 자원활동가가 모여 발대식을 할 때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했고, 내부 상임작가를 대상으로도 교육을 시행했다. 초청 감독을 대상으로 한 교육 역시 고민해본 사안이긴 하나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계속 고민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출품 규정에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작품 출품을 철회한다든지 하는 내용을 넣는 방법도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어떤 방식이 됐든 평소 영화인들이 보여주는 영화제 뒤풀이의 높은 참여도를 성희롱 예방 교육에서도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