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한 후배로부터 태블릿PC를 선물받았다. 준비 중인 영화가 대박나면 무엇이든 쏘겠다는 그의 말에, 즐거운 상상을 펼치며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아무거나 골라 대답한 결과였다. 사실 정말로 갖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이미 데스크톱도 있고 노트북도 늘 갖고 다니는 데다 손만 뻗으면 스마트폰이 상시 대기 중인데 굳이 제4의 컴퓨터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는, 아직도 기계를 매개로 한 경험은 진짜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더는 실제가 아닌 것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 자칫하면 가짜인 것들에 진짜 삶을 잠식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존재했다. 그런데 정말로 대박이 나버린 후배는 갑자기 약속을 지키겠다며 무려 ‘프로’가 붙은 태블릿PC를 덥석 안겨주었다. 당황한 나는 한참을 사양하다 결국 감사히 받아들고 오긴 했지만, 한동안은 이런저런 걱정에 사로잡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물론 잠깐이었다. 어느 날 호기심에 박스를 열고 태블릿을 꺼내 전원을 연결한 나는, 대체 이 긴긴 세월 이토록 훌륭한 문명의 이기 없이 어떻게 살아온 걸까 놀라워하며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종이가 아니면 활자를 읽기 힘들다고 주장해온 내가 이동 중인 지하철에서 손쉽게 전자책을 읽고 시나리오를 수정하는가 하면, 잠자리에선 한동안 손을 놓았던 일기를 다시 쓰고 때때로 그림까지 그렸다. 작은 기계 하나가 가져온 편리함 덕분에 많은 시간과 공력을 절약했고,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여유가 생기면서 인식과 경험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질문은 나 자신이 온전한 주체로 바로 서서 모두와 올바로 상호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조화와 균형의 문제이기도 하니깐.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의 엔딩이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온 까닭도 어쩌면 바로 그런 측면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임스 할리데이는 3가지 관문을 모두 통과하고 우승한 파시발에게 가상현실게임인 ‘오아시스’를 완전히 폭파할 수 있는 빨간 버튼의 위치부터 알려준다. 사실 그쯤 도달하면 오아시스의 딜레마를 타파할 길은 양극단의 한쪽이 아니고선 없어 보인다. 게임이 아무리 암울한 현실 세계의 사람들을 위로할 유일무이한 도구라 해도, 트레일러에 살며 삶을 저당잡히고 누리는 자유와 행복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누구도 모르는 법이니깐. 그런데 파시발은 오아시스를 그대로 유지하지도, 완전히 없애지도 않기로 선택한다. 다만 회사 지분을 친구들과 나누고, 공동 설립자인 오르젠에게 컨설턴트를 맡기는 한편, 화요일과 목요일엔 오아시스를 닫기로 결정할 뿐이다. 특히 이 셧다운 제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진짜 현실은 게임 밖에 있다는 스필버그의 메시지가 꼰대 같다고 비판을 받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마 실제였다면 유저들의 원성에 시달리다 다시 24시간 체제로 돌입하거나 아예 회사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과 시도가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주체는 누구인가. 오아시스 안팎에서 동시에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는 계속 질문하고 고민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