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스튜디오의 19번째 작품이자 10주년의 대단원을 장식할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가 공개됐다. 21세기 영화시장의 지형을 바꾼 최대의 프랜차이즈 프로젝트인 만큼 개봉 첫날 97만6천여명을 동원,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으로 극장가를 점령 중이다.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조시 브롤린)와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중심으로 23명의 히어로를 엮어 하나의 우주 안에 펼쳐낸다. 이 영화가 잘 만든 블록버스터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한 액션뿐 아니라 방대한 숫자의 캐릭터 매력도 하나하나 제대로 살렸다. 마블 특유의 유머 감각이 여전한 가운데 어둡고 파격적인 결말은 흥미를 더한다. 화제의 중심에 선 만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쉽게 이해할 만한 숱한 정보가 쏟아져나오고 있으니 그에 대한 설명을 새삼 보태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타노스가 그토록 모으고자 애쓰는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은 빅뱅과 함께 만들어졌으며 우주의 본질을 담고 있는 물질로 설정되어 있다. 인피니티 스톤의 힘을 빌려 MCU라는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힘을 담고 있는지 그 비밀에 대해 살펴봤다. 당신이 체험해왔고 계속 체험할 수밖에 없는 마블. 그 인식의 지평을 넓힐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파워 스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힘 혹은 족쇄
아는 만큼 보인다. 당신의 우주도 그렇다.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 우주의 크기를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우선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이 알아가는 속도보다 빠를지도 모른다. 사실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한데 우주가 얼마나 크고 방대한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각자가 아는 만큼만 우주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아이언맨>의 등장 이후 스크린에는 MCU라는 우주가 창조됐다. 스스로 슈퍼히어로임을 밝히는 토니 스타크의 선언을 기점으로 마블의 우주는 종횡으로 연결되며 확장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MCU의 19번째 영화이자 대단원의 서막 <인피니티 워>가 베일을 벗었다.
이제껏 선보인 모든 영웅이 한편의 영화에 등장해 궁극의 빌런 타노스와 대결을 벌이는 순간은 분명 마블이 목표했던 결승골이다. 마블 영화는 이제껏 이 결정적 순간을 위해 숱한 설정을 깔고, 영웅을 키우고, 세계를 확장시켜왔다. 동시에 그렇기에 이 순간은 도달하고 싶지 않은 지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선 영화들이 거대한 예고편 같다는 핀잔을 받을 때도 언젠가 이 프로젝트가 완성될 때를 기대하라며 그 책임을 일정 부분 <인피니티 워>에 미뤄둘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커질수록 정작 끝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한 다음 찾아올 공허가 두렵다. 확장을 멈추고 마침표를 찍은 세계는 죽음과도 같기 때문이다. 잘 만든 이야기, 완결된 영화는 좋은 엔딩이 필수지만 프랜차이즈는 다르다. 모든 프랜차이즈는 마침표를 찍기 두려워한다. (관객이 등을 돌리지 않는 한) 다음으로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 그게 시네마틱 유니버스다.
2 마인드 스톤
관객의 마음을 홀리는 법
마블은 이번에도 이 후폭풍을 비켜나갈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하나는 <인피니티 워>가 한 시즌의 마감일 뿐 끝은 아니라는 우회로. 잘 키워놓은 프랜차이즈를 포기하기 어려울 테니 당연한 선택이다. 때문에 <인피니티 워>는 기본적으로 어벤져스 1기의 마감을 표방하고 있고 무수한 떡밥을 흘리는 중이다. 어떤 히어로가 퇴장을 하고 어떤 히어로가 2세대로 그 자리를 메울 것인지는 <인피니티 워> 개봉 이후부터 화제였다. 다른 하나는 ‘어벤져스’ 페이즈3에 해당하는 타노스와의 대결을 2편으로 나눠 개봉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다면 굳이 한편에 우겨넣을 것 없이 잘라내면 된다. 단순한 논리지만 MCU이기에 가능한 접근이다. 거기에 <인피니티 워>와 2019년 개봉예정인 <어벤져스4>(가제) 사이엔 <앤트맨>(2015) 속편인 <앤트맨과 와스프>, 마블 최초의 여성 히어로 <캡틴 마블>이 기다리고 있다. 행간과 설정을 추가로 설명할 여유도 있으니 한층 자유롭다.
기본적으로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의 등장과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개별영화로서 <인피니티 워>의 이야기는 한편의 영화 안에 마무리되지만 실상 이 영화의 결론은 다음 영화를 위한 전개 단계에 가깝다. 영화는 타노스가 누구인지,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서 끝이 난다. 웅장한 분량의 설정, 다음 편을 위한 포석이라 해도 좋겠다. MCU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본다면 <인피니티 워> 역시 한 챕터 정도에 가까운 구성인데, 놀라운 건 챕터 자체의 완결성이다. MCU가 21세기 할리우드에 끼친 영향은 단지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거대 프랜차이즈를 구축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장대한 우주의 서사적 특질은 개별영화이되 개별영화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서사에만 국한해서 표현한다면 영화의 드라마화라고 해도 좋겠다. 앞선 내용을 모르면 완벽히 파악하기 힘들고 이번 영화를 보고 나면 다음 영화가 당연히 궁금해지는 연속성. 그러면서도 개별영화로서의 완결성, 독립성도 유지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마블의 진짜 마법은 바로 이 절묘한 밸런스에 있다. 이는 단선적인 전개에 우연을 남발하는 등 분명한 서사적 한계마저 가리는 효과가 있다.
3 타임 스톤
두개의 세계, 네 갈래의 길
결론부터 말하면 이게 되겠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해낸다. 23명의 히어로가 등장하는데도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는 건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비결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페이즈1인 <어벤져스>(2012) 때부터 존재감을 부각시킨 타노스를 중심에 두고 그가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나가는 과정에 따라 흩어진 공간을 통합시킨다. 영화는 아스가르드의 우주선을 덮친 타노스의 우주선을 보여줬던 <토르: 라그나로크>(2017)의 엔딩에서 이어진다. 박살이 난 아스가르드의 우주선에는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와 로키(톰 히들스턴)가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다. 이미 노바 행성에서 파워 스톤을 빼앗아온 타노스는 로키가 가진 스페이스 스톤을 요구한다. 이제부터 우주를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공간을 넘나드는 스페이스 스톤의 존재는 필수다. 타노스는 토르를 제압하고 헐크(마크 러팔로)를 가볍게 때려눕힌 뒤 로키를 협박해 스페이스 스톤을 얻어낸다. 그리고 최정예 수하인 블랙오더 4인에게 지구에 있는 타임 스톤(닥터 스트레인지 소유)과 마인드 스톤(비전 소유)을 찾아오라 명한 후 스스로 리얼리티 스톤(컬렉터 소유)과 소울 스톤(행방불명)을 찾아나선다.
이제 공간은 2개로 갈린다. 하나는 지구, 하나는 우주다. 지구에는 타임 스톤과 마인드 스톤이 있다. 우선 뉴욕에 있는 타임 스톤을 둘러싸고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이 팀을 이룬다. 빌런으로는 블랙오더의 에보니 모와 강력한 파워의 컬 옵시디언이 등장해 대결한다. 한편 비전(폴 베타니)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와 스코틀랜드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비전의 마인드 스톤을 뺏기 위해 블랙오더 콜버스 글레이브와 여성 블랙오더 프록시마 미드나이트가 이들을 습격한다. 그리고 이에 맞서 스칼렛 위치,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와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팔콘(앤서니 마키)이 비전과 합류한다.
우주에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표류하던 토르를 구출한다. 타노스의 양녀인 가모라(조이 살다나)는 단번에 상황의 전말을 알아차린다. 가모라는 타노스가 컬렉터에게 있는 리얼리티 스톤을 가지러 갈 테니 이를 막자고 하는데, 여기서 다시 2개 팀으로 쪼개진다. 토르는 타노스를 물리칠 무기를 만들기 위해 ‘니다벨리르’로 향하고, 여기에 로켓과 베이비 그루트가 동행한다.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가모라, 드랙스는 예정대로 컬렉터가 있는 노웨어로 향한다. 지구의 뉴욕과 스코틀랜드, 우주의 노웨어와 니다벨리르. 네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사건이 차례로 이어지고 네 갈래의 길은 서로 교차한 뒤 합쳐진다. 그게 가능한 건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타노스 덕분이다. 반대로 말하면 히어로는 많은데 메인 빌런은 한명이니 빌런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거기에 더해 타노스는 소울 스톤 파트에서 자신의 사연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공고히 한다.
4 소울 스톤
<인피니티 워>의 심장, 타노스
중반 이후 영화는 다시 우주와 지구 두곳의 공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우주의 주요 무대는 타노스의 행성인 타이탄이다. 여기선 아이언맨과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타노스와 대결을 벌인다. 지구의 주요 무대 와칸다 왕국에선 캡틴 아메리카와 비전, 워머신과 블랙팬서 등이 블랙오더와 침공군에 맞서 대규모 전투를 진행한다. 두 공간은 스펙터클한 전투를 펼치기 위한 성대한 무대다. 이쯤 되면 <인피니티 워>가 대략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감이 올 것이다. 이 영화는 드라마를 개입시킬 틈이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전투의 규모는 웬만한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거대하고 화려하다. 여기서 드라마의 공간을 허락받은 건 오직 타노스뿐이다. 그가 왜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려 하는지, 우주의 절반을 죽음으로 이끌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전투의 사이마다 조금씩 설명된다. 어떤 의미에서 <인피니티 워>의 히어로들은 타노스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으로 존재한다. 타노스의 시점에서 보자면 자잘한 존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 없는 저항을 이어간다. 타노스와 어벤져스가 유일하게 공유하는 영역은 다름 아닌 전투다. 드라마의 뼈대가 타노스를 위해 마련되어 있다면 영화의 핵심은 결국 쉴 새 없이 연쇄되는 전투를 어떻게 지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달렸다.
이런 구성이 가능한 것은 MCU가 23명의 등장 히어로에 대해 그간 충분히 설명을 해놨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렇다는 전제하에 진행된다. 덕분에 히어로들은 짧은 호흡으로도 충분히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자부심의 화신 닥터 스트레인지와 자의식 과잉의 아이언맨이 만나 서로에게 날리는 날선 농담 한마디면 상황을 정리하기 충분하다. 1분이 아까운 상영시간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굳이 쓸데없는 농담을 오래 펼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잉여로움은 온전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호흡과 속도다. “우린 친구를 버리지 않아”라는 대사 한마디에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가 되었다가 “아, 히어로명을 말하는 건가요. 그럼 난 스파이더맨이에요”라고 답하는 피터 파커를 통해 <스파이더맨>이 되기도 한다. 요컨대 <인피니티 워>는 섞이지 않는 장르, 개성, 영화들을 굳이 버무려 하나의 톤으로 정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이름의 구슬들을 타노스라는 실로 꿴 형형색색의 목걸이인 셈이다.
5 스페이스 스톤
분할된 공간을 통합시키는 정리정돈 능력
아는 만큼 보이는 마블의 우주는 거꾸로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보이는 만큼 안다. 아니, 보이는 것이 전부다. 각자 색이 다른 히어로들을 골고루 쓰는 방식은 단순명료 하다. 지구, 우주, 마법 세계 등으로 일부러 무대까지 나눠놨으니 시퀀스마다 해당 히어로의 색에 맞는 액션과 조합을 보여준면 그만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인피니티 워>에서 각 캐릭터의 행동방식, 상호작용, 관계는 모두 액션을 통해 증명된다. 시시껄렁한 농담이 없으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아니고, 동료를 지키는 훈훈한 장면이 없으면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다.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인피니티 워>는 고전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몸으로 말하는 영화다.
뉴욕 시퀀스에서 아이언맨이 보여주는 최첨단의 슈트, 런던 시퀀스에서 빛을 발하는 캡틴과 블랙 위도우의 애크러배틱한 액션, 노웨어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타노스의 인피니티 건틀렛의 위력은 그걸로 온전히 해당 히어로의 본질을 설명한다. 액션이 곧 캐릭터가 되는 구성은 이미 해당 캐릭터에 대한 충분한 전사가 학습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실행 가능한 과감한 접근이다. 사실 액션을 통한 캐릭터성이 의도만큼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해도 별 상관없다. 이건 물량을 과시하는 블록버스터인 동시에 다양한 색깔의 액션을 질리지 않게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일종의 코스요리에 가깝다. 관건은 기승전결이 아닌 하이라이트의 연쇄로 채워진 영화를 지치지 않고 보는 게 가능한가 하는 점이고, <인피니티 워>는 다종다양의 히어로 액션을 활용해 리듬감을 형성해나가는 것으로 이를 해결한다.
주요 히어로는 각자 시그니처라고 해도 좋을 한수의 액션을 꼭 한번은 보여주는데 사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 아이언맨이 나노 슈트의 현란한 액션을 보일 때,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법으로 수많은 환영 분신을 창조할 때, 토르가 새로운 무기 스톰 브레이커를 휘두르며 군단을 쓸어버릴 때 영화는 이미 그걸로 제 몫을 다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리듬감은 개별 시퀀스의 완성도, 스펙터클, 정밀함이 보장된다는 걸 전제로 시작되는 고민이다. 사실 전자는 물량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액션의 연쇄와 균형 감각에 관한한 감독 루소 형제의 역량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인피니티 워>는 영화 전체를 알렉사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으며 상상한 것을 ‘그린다’는 면에서 최정점에 있는 기술을 선보인다. 여기까진 필요조건. 오늘의 마블이 가능했던 핵심 비결은 서로 다른 개성을 한자리에 모아 정리정돈하는 루소 형제의 조율 능력에 있다.
6 리얼리티 스톤
시작의 끝과 끝의 시작
<인피니티 워>의 결말은 히어로영화의 틀을 완벽히 거스른다.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고 <어벤져스4>에서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니까 가능한 도발이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4>를 한편의 영화로 묶어놓고 생각한다면 이번 영화의 엔딩은 사실상 첫 번째 위기 혹은 전개의 끝자락 정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어찌됐건 단일 영화로서 관람하게 될 관객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마무리다. 결론적으로 이건 빌런인 타노스가 강철 같은 의지와 우주를 위한 나름의 (왜곡된) 대의로 목적을 달성하는 이야기다. 개봉 전부터 어떤 히어로가 죽고 어떤 히어로가 마블 10년의 시즌1에서 퇴장할 것인지를 두고 온갖 추측이 이어졌지만 파격적인 결말로 인해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는지 자체는 사실 큰 의미가 없어졌다. 타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등하고 무작위한 선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태초에 아이언맨이 있었다. 이 모든 사단의 시작은 스스로 히어로임을 밝힌 아이언맨의 고백으로부터 출발했다. “토니 스타크의 존재가 적을 부른다”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속 비전의 대사처럼 아이언맨은 위플래시, 울트론, 제모 남작 등 숱한 적을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 빌런이 있기에 히어로가 태어난 게 아니라 히어로가 있어서 빌런이 발생하는 아이러니. 토니 스타크의 히어로 커밍아웃은 기존 히어로영화의 관습을 뒤집는 파격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인피니티 워>의 엔딩을 장식하는 타노스의 온화한 미소는 10년 전 아이언맨의 참신했던 도발과 묘하게 겹친다. 이 결말 덕분에 영화는 온전히 타노스의 것이 되었고 <인피니티 워>는 히어로영화가 아니라 빌런(혹은 다크 히어로) 영화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이언맨의 선언이 히어로들의 해방과도 같았다면, 타노스의 의미를 읽기 힘든 미소는 적어도 <어벤져스4>가 개봉하기 전까지 팬들로 하여금 무수한 우주, 무수한 시나리오를 상상하게끔 하는 열린 결말에 가깝다.
사실 MCU의 우주는 매우 좁다. 우주를 넘나드는 무대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인물에서 인물로의 이동을 축으로 한다. 빌런의 욕망과 상상력은 지구적인 규모에 국한되어 있고, 해결방식도 한줄에 꿴 듯 심플하다. 우연과 행운이 겹치고 겹쳐 전개되는 이야기는 한편으론 상투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악하고 좁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눈이 즐거운 액션의 전시, 두 번째 예상을 뛰어넘는 엔딩의 임팩트, 마지막으로 끝나지 않는 떡밥의 향연이다. 그 자체로 거대한 떡밥(혹은 예고편)과도 같은 MCU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팬들의 해석과 상상을 빌려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인피니티 워>는 사실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액션과 볼거리로 채우는 대신 디테일한 설명은 넘어가는 영화다. 그럴 경우 대개 조악함으로 마무리되겠지만 이만한 규모의 세계관에서는 그 점이 역설적으로 스크린에 불이 꺼진 뒤 이야기를 지속시킨다. 헐크는 왜 브루스 배너 박사 안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지 않는 걸까. 타노스가 마지막에 안식처처럼 쉬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닥터 스트레인지는 왜 타임 스톤을 넘기면서까지 토니 스타크를 살리려 한 걸까. 닥터 스트레인지가 미리 봤다는 타노스를 이길 단 하나의 미래는 어떤 길일까. 여러 갈래로 상상이 가능한 시작의 끝을 통해 MCU는 이번에도 끝의 시작을 제시한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야말로 MCU 빅뱅의 에너지다. 동시에 끝낼 수 없는 이야기는 잘 팔리는 상품 MCU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