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자막뿐 아니라 제목도? 여러 이유로 제목이 의역, 오역된 영화들
2018-05-11
글 : 김진우 (뉴미디어팀 기자)
<안녕, 나의 소녀> 대만 포스터.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불러올 대만 소녀가 또다시 찾아온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에 이은 <안녕, 나의 소녀>다. 그런데 왜 대만 멜로영화의 제목에는 꼭 ‘소녀’가 붙을까. 대만에서는 첫사랑 소재의 영화에 소녀를 붙여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실 <안녕, 나의 소녀>의 원제에는 소녀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안녕, 나의 소녀>의 원제는 <Take me to the moon>, ‘달나라로 데려가 줘’다. 굳이 소녀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제목을 바꾼 것은 앞선 두 대만 영화의 흥행에 편승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안녕, 나의 소녀>는 영화의 내용 자체를 무시한 제목은 아니다. 하지만 대만판 포스터에서도 등장한 달을 부각시킨 원제를 살렸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든다. 그렇다면 <안녕, 나의 소녀> 외에 원제와 다르게 국내 개봉한 영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 이유로 제목이 오역, 의역된 영화들을 모아봤다.

<가을의 전설>

원제 : <Legends of the Fall>

<가을의 전설>

브래드 피트와 안소니 홉킨스의 1994년 주연작 <가을의 전설>. 이 영화의 제목은 동음이의어로 인한 대표적인 오역 사례다. 원제의 ‘Fall’이 가을이 아니라 추락 혹은 몰락을 의미한다는 것. 영화는 주인공인 트리스탄(브래드 피트)이 겪는 시련이 주된 내용이다. 명백히 잘못된 번역이다. 중의적인 의미를 포함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원작 소설의 작가 짐 해리슨이 Fall은 추락, 몰락을 의미한다고 표명했다. 오역임에도 불구하고 <가을의 전설>이란 제목은 이미 유명해져 지금까지도 국내에서는 <가을의 전설>로 통용되고 있다.

<사랑과 영혼>

원제 : <Ghost>

<사랑과 영혼>

그 유명한 ‘도자기 신’을 그려내며 멜로 명작으로 손꼽히는 <사랑과 영혼>. 이 영화의 원제는 ‘Ghost’다. 번역하면 귀신, 유령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밋밋한 원제 대신 국내에는 로맨틱한 느낌을 강조한 <사랑과 영혼>으로 개봉했다. 원제에는 없던 ‘사랑’이란 단어가 첨가되고 귀신, 유령에 비해 긍정적인 어감인 ‘영혼’으로 바뀐 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맞는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의 내용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원제보다 작품의 느낌을 더 잘 살린 번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잘 의역된 영화 제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컨택트>

원제 : <Arrival>

(왼쪽부터) 1997년작 <콘택트> 포스터 / 2006년작 <컨택트> 포스터.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는 도착이라는 뜻의 원제 ‘Arrival’에서 제목을 변경해 논란을 겪은 영화다. <컨택트>는 단어의 뜻이나 영화의 내용을 무시하는 번역이 문제는 아니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컨택트’라는 제목이 전혀 맥락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국내와 비슷한 사례로 일본, 포르투칼 등에서도 영화의 내용에 맞게 <메시지>, <첫 만남> 등으로 제목이 변경됐다. 문제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1997년작 <콘택트>와 제목이 너무 유사하다는 점이다. 일부 관객들은 “리메이크 영화인 줄 알았다” “<콘택트>의 원작 소설을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에 대한 모욕”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원제 : <Vicky Cristina Barcelona>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우디 앨런 감독이 연출하고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 스칼렛 요한슨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이 영화는 <콘택트>처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마치 성인영화 같은 제목으로 변경돼 개봉했다. 심지어 15세 관람가인 이 영화는 ‘세 남녀의 로맨스’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홍보를 위한 제목으로 변경됐다. 이에 분노한 관객들은 “낭만적인 제목을 불륜영화 제목으로 만들어 놓았다”등의 평을 남기며 비난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두 시간 내내 낄낄댈 수 있다, 제목만 참아낼 수 있다면”이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와사비: 레옹 파트2>

원제 : <WASABI>

(왼쪽부터) <와사비: 레옹 파트2> 한국, 프랑스, 일본 포스터.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와사비: 레옹 파트2>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작품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반영했다. 이에 반해 <와사비: 레옹2>에서 <레옹>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레옹>의 주연 배우인 장 르노가 출연한다는 것 외에 감독도, 내용도 <레옹>과는 전혀 연결이 안 된다. 일본에서도 <레옹>이 들어가지 않는 원제 그대로 개봉했으나, 국내에서만 <와시비: 레옹 파트2>로 개봉했다. 심지어 포스터에서도 원제인 ‘와사비’는 잘 보이지 않고 ‘레옹’이란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돌아오지 않은 레옹이 다시 돌아왔다 홍보하고 있다. <레옹>의 유명세를 이용하려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며 아직까지도 최악의 제목으로 회자되는 영화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와사비: 레옹 파트2>에 비하면 <안녕, 나의 소녀>는 나름 잘 번역된 제목인 듯하다. 홍보를 목적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해도, 시간을 거슬러 첫사랑을 만난다는 영화의 내용은 잘 반영됐다. 제목 번역에서 홍보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작품을 침해하지 않고 관객을 속이지 않는 선에서 제목 변경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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