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이 기획한 <챔피언>(2018)은 마동석의 팔씨름 사랑으로 탄생한 영화다. 그런 만큼 영화에는 팔씨름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와 재미가 들어 있다. 마동석 배우와 김용완 감독은 대한팔씨름연맹 소속 선수들을 통해 팔씨름 자문과 팔씨름 지도를 받았다. 이들은 영화에 스치듯 잠깐잠깐 등장하기도 한다. 배승민 대한팔씨름연맹 대표, 국내 통합랭킹 1위 백성열 선수, 국내 무제한급 1위 남우택 선수, 국내 -80kg급 1위 홍지승 선수 역시 기꺼이 <챔피언>에 참여했다. <챔피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을 만났다. 마동석 배우에 대한 깊은 신뢰, <챔피언>을 향한 애정, 팔씨름 선수로 살아가는 것의 즐거움과 힘겨움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챔피언>을 본 소감은.
=배승민_ 지금까지 개봉한 그 어떤 영화보다 몰입해서 봤고, 그 어떤 영화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냥 우리 얘기를 보는 것 같았다.
=백성열_ 평소에 늘 듣던 얘기를 영화를 통해 들으니 새롭더라. “팔씨름 선수도 있어?”, “국가대표가 있어?” 같은 말들. 팔씨름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각별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가족과 함께 보면 좋을 감동적인 영화였고.
=홍지승_ 영화가 재미없으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데 <챔피언>은 끝까지 다 봤다. 팔씨름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꿈만 같은 일일 거다.
=남우택_ 이제는 배승민 대표나 백성열 선수처럼 팔씨름에 올인한 사람들이 이 영화로 조금이나마 빛을 볼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기뻤다. 그런 의미에서 (마)동석이 형한테 정말 고맙다. 마동석 형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백승민_대한팔씨름연맹 대표. 한때 선수로 활동했고, 1만8천명의 동호인이 가입한 팔씨름 및 그립스포츠 커뮤니티 그립보드를 2010년에 만들었다. 대한팔씨름연맹의 모태가 그립보드다. 남우택 선수는 그를 두고 “팔씨름에 올인한 사람”이라 했고 “사욕을 부리지 않는 완벽주의자”라 평했다. <챔피언>의 마크(마동석)의 한국 이름이 백승민인데 이는 김용완 감독이 배승민 대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좋아하는 스포츠영화는 <록키>(1976). “초등학생 때 TV에서 <록키4>(1985)를 보고 강인한 몸과 남성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장 비디오가게로 달려가서 <록키> 1, 2, 3편을 빌려봤다. 그 이후로 <록키>는 내게 최고의 스포츠영화가 됐다.”
-올해 1월 마동석 배우가 대한팔씨름연맹 이사로 임명됐다.
배승민_ 명예직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예전부터 팔씨름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고, 영화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교류를 했다. <챔피언>에 참여해 촬영 지원이나 경기 지도를 할 때도 우리가 좋아하는 아는 형의 일이라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런 상황에서 동석이 형이 ‘너희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 팔씨름이 엄연한 스포츠라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고 그렇다면 ‘홍보이사 같은 거 말고 제대로 함께 일하시죠’ 하면서 이사 자리를 제안했다. 사실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동석이 형 입장에선 우리와 더이상 교류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팔씨름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크냐면, ‘매년 8월 8일을 팔씨름의 날로 정하자’ (웃음) 같은 이벤트 제안도 먼저 해주었다. 그래서 201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다같이 모여 행사를 열기로 했다.
백성열_ 첫 만남도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연예인이고, 내가 먼저 나서서 반가운 척하면 부담스러울까봐 담담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는데, 특유의 귀여운 표정과 포즈로 ‘와~ 백성열 선수다!’하면서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와주더라. 그러면서 남우택 선수는 어딨고, 홍지승 선수는 어딨냐며 빨리 부르라 하고. 대한팔씨름연맹 소속 선수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굳이 몰라도 될 사람들 이름까지 다 꿰고 있었다. (웃음)
배승민_ ‘승민아, 형은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우리 빨리 친해져야 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녹지 않을 수 있겠나. <챔피언> 고사장에선 그런 얘기도 했다. 평소에 관심 있게 지켜보던 선수들이 대한팔씨름연맹을 만들어 단체를 꾸려나가는 걸 보곤 이제 팔씨름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홍지승_ 전화번호도 동석이 형이 먼저 물어봤다. ‘빨리 번호 찍어, 연락해’ 이러는데 감동이었다. 이분은 우리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걸 느꼈다. 방송을 몇번 하면서(시사·교양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만 4번 출연했다) 연예인들을 종종 본 적 있는데, 동석이 형은 정말 달랐다.
-<챔피언> 이전에도 팔씨름 영화를 만든다고 찾아온 영화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배승민_ 세번 정도 있었는데 영화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챔피언>의 김용완 감독과 한동환 PD는 이전에 우리를 찾아온 분들과는 달랐다. 두분은 이미 팔씨름에 대해 충분히 공부를 한 상태로, 대한팔씨름연맹에서 주최하는 대회도 여러 번 관람한 상태에서 우릴 찾아왔다. 그러니 설명하기가 쉬웠고 대화도 잘 통했다. 그건 동석이 형도 마찬가지였는데, 팔씨름에 관한 이론은 프로만큼 잘 알고 있어서 팔씨름을 가르치는 게 수월했다. 그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번 영화는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김용완 감독님한테 문자가 왔기에 ‘전 이 영화의 감독이 형이라서 기뻤고, 형이라서 같은 배를 탔다’고 답장을 보냈다. 김용완 감독님이 감성꾼이다. 올해 1월엔 ‘오늘이 우리가 만난 지 1년째’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웃음) 이렇게 섬세한 분이다. 마초적인 성향의 감독이 아니라 김용완 감독님처럼 섬세한 사람이 팔씨름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고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팔씨름 영화가 <오버 더 톱>(1987)처럼 나오지 않길 바랐다. 물론 <오버 더 톱>도 좋은 영화지만, 팔씨름 장면은 억지스러운 데가 많다. 근육에 기름칠해서 부각시키고. 반면 <챔피언>의 팔씨름은 우리가 지금까지 구축한 팔씨름의 품격을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
홍지승_ <오버 더 톱>엔 내가 좋아하는 레전드 팔씨름 선수 존 블젱크가 잠깐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버 더 톱>은 보면서 졸았다. (웃음)
백성열_국내 통합랭킹 1위의 팔씨름 선수. 국내 최초 세 체급(-90kg, -100kg, +100kg) 우승 기록도 가지고 있다. 아놀드 클래식 팔씨름 대회에서 -90kg급 4위, 일본 간사이 오픈 -85kg급 2위, 중국 아시아국제대회 -90kg급 2위, 통합 2위 등을 했다. 주 체급은 -90kg. 손 크기가 작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과 강한 멘털로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현재 팔씨름 체육관을 운영하며 전업 팔씨름 선수로 뛰고 있다. 좋아하는 스포츠영화는 <독수리 에디>(2016). “주인공 에디가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우직하게 나만의 목표를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챔피언> 속 팔씨름 경기는 얼마나 리얼했나. 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해 얘기해보자.
배승민_ 결승전에서 마크(마동석)의 손등이 바닥에 닿기 일보 직전까지 밀렸다가 역전하는 장면이 있다. 김용완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고 조금 오버스럽지 않겠냐 걱정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시나리오가 나오고 얼마 뒤 백성열 선수와 김도훈 선수의 슈퍼매치 경기에서 영화 속 결승전과 똑같은 역전극이 연출됐다. 또 선수들의 손이 풀리지 않도록 스트랩을 묶고 경기하다가 스트랩이 끊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스트랩이 끊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영화 개봉하기 5개월 전에 열린 대회에서 홍지승 선수가 경기할 때 스트랩이 끊어졌다. 놀랍게도 영화 나오기 전에 그런 일들이 실제로 생겼다. 이처럼 영화에 억지 설정을 끼워넣은 건 하나도 없다.
백성열_ 마크가 가족의 응원을 통해 다시 힘을 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과거 아놀드 클래식 팔씨름 대회에 첫 출전했을 때가 생각났다. 영화 속 마크처럼 팔이 거의 바닥에 닿을 지경이었고, 팔에서 우지직 하는 느낌이 나면서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응원 소리가 들렸고,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구나 싶더라.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더 버티자. 그렇게 이 악물고 버텨서 이겼다. 함부로, 내 맘대로 질 수가 없다.
남우택_ 비슷한 경험인데, 국내대회 3판2선승 결승에서 첫판을 졌다. 두번째 판에서도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대회장에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이 응원을 왔는데, 그 순간 가족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장모님! 장모님!’ 하면서 버티고 버텨서 두번째 판을 따냈다. 그때 상대가 홍지승 선수였다. (웃음)
배승민_ 예선전에서 마크가 엘보 파울로 두번 경기하는 장면이 있다. 팔꿈치가 패드에서 나간 상태로 상대 팔을 넘기면 무효 처리가 된다. 마크가 상대의 엘보 파울로 첫판을 지고 두 번째 판에서 이기는데, 실제로 대회에서 이런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엘보 파울로 재경기를 하면, 이긴 사람은 파울이 신경 쓰여 힘을 제대로 못 주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영화 속 그 상대 선수가 백성열 선수다. 또 초반의 미국 클럽 신에서 마크가 경기 중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의 방향을 바꾼다. 그건 진짜 프로들이나 쓰는 기술이다. 리얼리티를 뛰어넘어 과연 이 장면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서 소름 돋았다.
남우택_ 동석이 형과 백성열 선수가 엘보 파울로 두번 경기하는 그 장면도, 성열이가 국내 통합랭킹 1위 선수라는 걸 고려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동석이 형이나 김용완 감독님이나 아무리 영화라도 성열이를 한번에 이기는 게 미안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한번은 동석이 형이 지게 하고, 엘보 파울로 재경기해서 이기게 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홍지승_ 그나저나 경기는 무척 표현이 잘된 것 같은데, 초반에 나오는 돌잔치 장면이 생각난다. 모르는 사람 돌잔치에 가서 그렇게 밥을 먹을 수가 있나? (웃음)
-영화 속 마크처럼 팔심이 과해서 생긴 일상의 해프닝이나 건장한 체구로 인해 오해받은 적은 없나.
백성열_ 팔씨름 선수들이 평소엔 팔을 엄청 아낀다. 까딱 잘못하면 문고리 돌리다가, 스킨 바르다가 부상을 입기도 하니까. 버스나 지하철 탔을 때도 무거운 짐 들고 있는 분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들어주지 않는데, 그러면 힘 좋아 보이는 사람이 가만히 있다고 눈치받기도 한다. (웃음) 여성들이 두손으로 팔씨름 겨뤄보자고 할 때도 거절한다. 팔 다칠까봐. 힘을 잘 쓸 것 같은데 평소에 힘을 잘 안 써서 오해를 사는 것 같다.
남우택_ 나 역시 팔 보호에 신경을 많이 쓴다. 마장동 우시장에서 일하다보니 냉장실과 냉동실을 자주 왔다갔다 하는데, 팔을 보호하려고 여름에도 긴팔 옷을 주로 입는다. 30도가 넘어가면 그제야 반팔을 입고.
배승민_ 예전에 백성열 선수랑 경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우리가 운전을 좀 서툴게 했다. 한 운전자가 나를 보고 뭐라뭐라 하더니 옆에 있는 성열이를 보곤 그냥 가더라. 나는 덩치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주변에 큰 사람들과 같이 다니면 괜히 으쓱한 느낌이 든다. 이 사람들이 나를 호위해주고 있구나 싶고. (웃음)
남우택_국내 무제한급 1위, 통합랭킹 2위. 마장동 우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선수로도 뛰고 있다. ‘마장동 임꺽정’으로 불린다. 187cm의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해 톱롤을 주특기로 사용한다. 국내에서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가 제일 긴 선수다. 팔씨름은 손이 클수록, 팔이 길수록 유리한데 그런 점에서 신체적으로 타고난 유리함을 지녔다. 좋아하는 스포츠영화는 톰 크루즈 주연의 <제리 맥과이어>(1996). “인기 스포츠 종목의 경우 큰 돈이 오가는 거대한 시장이 돼버렸는데, 스포츠에서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시장에 대한 허물 없는 이야기, 제리의 이야기가 인간적으로 공감됐다.”
-팔씨름엔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입문부터 지금까지, 각자의 팔씨름 스토리를 듣고 싶다.
백성열_ 배승민 대표가 초대 운영자로 있었던 팔씨름 동호회의 첫 오프라인 모임이 우연히도 내가 운동하던 체육관에서 열렸다. 운동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옆에서 팔씨름을 하고 있더라. 나름 학교에서 팔씨름으로 1등도 해봤던 터라 참여했는데 20명 중 4등을 했다. 그런데 나보다 센 사람들이 덩치 큰 사람들이 아니라 뿔테 안경 쓰고 체크 남방에 면바지 입은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기분이 이상하더라. 아, 팔씨름에 뭔가 있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대체 왜, 대체 왜, 하면서 팔씨름을 파기 시작했다. 아놀드 클래식 팔씨름 대회에서 90kg 4위, 일본 간사이 오픈에서 85kg 2위 등을 했고 국내 통합랭킹 1위다. 지금은 팔씨름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전업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남우택_ 학창 시절부터 팔씨름을 좋아했고 마장동 우시장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400kg짜리 소를 들었다 놨다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힘이 세진 것 같다. 그러다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팔씨름 대회에 나갔다. 신문에 난 팔씨름 대회 공고를 보고 참가했는데, 집에서 대회 나가는 걸 반대해서 밥도 못 먹고 나갔다가 우승해서 김치냉장고를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턴 집에서도 별말이 없더라. 타 협회에서 선수로 활동하다가 배승민 대표와 백성열 선수를 만나서 대한팔씨름연맹 소속 선수로 활동하게 됐고, 연맹의 운영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내 무제한급 1위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 마장동 우시장에 임꺽정처럼 힘세고 팔씨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소개되면서, 마장동 임꺽정으로 불린다.
홍지승_ 고등학생 때부터 팔씨름으로 나름 유명했고, 스무살 때 동호회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팔씨름을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3개월 만에 동호회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자신감이 부쩍 생겼고, 열심히 해서 전국 챔피언까지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생활의 달인>에 팔씨름의 달인으로 4번 출연했다. 1:100, 1:200, 1:500, 1:1000 팔씨름 대결을 했던 게 반응이 좋았다. 대회를 할 때마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게, 천명과 팔씨름할 때도 중간에 괴물 같은 사람이 열명, 스무명 있으면 질 수도 있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배승민_ 참고로 1:1000명 심판을 내가 봤다. 매니저 역할도 하고. 방송 덕에 길거리 다니면 홍지승 선수를 가장 많이 알아봐준다. 홍지승 선수는 초·중·고 남학생들한테 인기가 좋다. 나는 대한팔씨름연맹을 만들기 이전에 2001년 온라인 팔씨름 동호회 초대 운영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순수하게 팔씨름이 좋아서 동호회를 만들었고, 2010년엔 마음 맞는 운영진끼리 제대로 한국의 팔씨름계를 이끌어보자는 마음으로 그립보드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그 커뮤니티가 현재의 대한팔씨름연맹으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20대 중반, 군대 갔다오고 미국에서 유학할 때 제임스 레타리다스라는 미국의 유명한 팔씨름 선수이자 지도자를 따라다니면서 팔씨름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선수들은 물론 선수들의 가족까지 티셔츠를 맞춰 입고 와서 열심히 팔씨름을 즐기더라. 대회가 끝나면 바비큐 파티를 하고. 그런 문화가 부럽더라. 한국에 들어가면 이런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국내 팔씨름 대회도 멋있게 치르고 싶어서 기업 후원을 받아보려고 돌아다닌 적도 있지만 다 거절당했다. 그래서 팔씨름에 특화된 훈련도구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silvis)를 만들었다. 그 수익을 팔씨름 대회 프로모션에 쓰기로 했고, 2014년 실비스 클래식 대회를 열었다. 2014년에 우승 상금 100만원으로 시작했고, 상금 1천만원짜리 대회를 여는 게 나름의 목표였다. 매년 사비로 상금 적금을 들고 있다. (웃음)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회 전날이면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그만둬야겠다.’ 너무 힘들고 지치니까. 그런데 대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서는 ‘다음 대회 땐 이렇게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하니까 그만둘 수가 없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고 드디어 올해 총상금 1천만원 대회를 연다. 가끔은 이 일이 소명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는 진짜 그만해야겠다 싶은 순간에 마동석 형이 나타나고 <챔피언> 촬영이 시작되고. 이제는 그만둔다는 말도 못하게 돼 버렸다. (웃음)
남우택_ 실비스 클래식 대회는 한국에서 가장 큰 팔씨름 대회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알아주는 대회로 성장했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대회의 격을 생각해 해외에서 최고의 심판진도 모셔온다. 그렇게 매년 대회의 퀄리티를 높이다보니 일본이나 러시아 등 해외 선수들도 많이 참가하고 있다. 배승민 대표와 백성열 선수는 그야말로 팔씨름에 올인한 사람들이다.
홍지승_ 배승민 형이 팔씨름연맹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 찍어도 될 정도다. 너무 짠한 이야기가 많다. 이제 형도 대박날 때가 된 것 같다.
홍지승_국내 -80kg급 1위. 중국 아시아국제대회 -80kg급 1위, 아놀드 클래식 팔씨름 대회 -80kg급 3위 등의 경력을 지녔다. 70kg대 몸으로 헤비급 선수들을 종종 이긴다. SBS <생활의 달인>에 팔씨름 달인으로 4번 출연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팔씨름 스타이기도 하다. 방송에서 혼자서 1천명의 사람들과 팔씨름 대결하는 미션에 성공했다. 좋아하는 스포츠영화(무술영화)로 꼽은 건 이소룡의 <정무문>(1972). “<정무문>을 통해 이소룡을 좋아하게 됐고, 이소룡의 다른 영화도 찾아보게 됐다. 다른 스포츠영화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축구영화는 뭐가 있지? <축구왕 슛돌이>?”
-<챔피언>을 통해 팔씨름을 하나의 스포츠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다들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팔씨름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맘껏 하시라.
홍지승_ 팔씨름에 대한 작은 오해일 수 있는데, 팔씨름을 할 때 몸을 쓰거나 손목을 꺾으면 ‘반칙이다’, ‘몸씨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팔씨름도 스포츠고, 엄연히 기술이 있다. 팔씨름을 팔만으로 한다는 건 잘못된 인식이다. 평평한 책상이 아닌 팔씨름 테이블에서 제대로 기술을 써서 경기를 하면 팔씨름의 무궁무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남우택_ 한국 팔씨름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두 사람이 배승민 대표와 백성열 선수라고 생각한다. <챔피언>을 통해서 이들이 그동안 고생했던 것들을 보답받았으면 좋겠다. 난 그것밖에 없다.
백성열_ 언젠가 아시안게임이든 올림픽이든 팔씨름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 좋겠다. 울어도 좋으니 그런 무대에서 한번 울어봤으면 좋겠다. 50살, 60살 되고 나이가 들어서도 현역이고 싶고 계속 챔피언이고 싶다.
배승민_ 어디 가서 자기소개를 할 때 ‘안녕하세요, 팔씨름 프로모터…’라고 하면 다들 웃음부터 터뜨린다. 팔씨름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그렇다. 그래서 최근엔 가볍게 자기소개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팔씨름에 미친 놈입니다.’ 팔씨름도 스포츠냐, 남자들끼리 자존심 싸움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를 읊어주고 싶다. 피땀 흘려 운동하는 선수들을 보면 팔씨름도 스포츠냐 라는 말은 못한다. <챔피언>을 통해서도 그런 인식이 잘 전달되길 바란다.
남우택_ 요즘 다들 매일 <챔피언> 관객수 확인하느라 바쁘다. 나도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챔피언> 박스오피스 확인하는 거다.
배승민_ 매일 아침 6시에 팔씨름연맹 비서실장인 유청석 선수에게 SNS로 <챔피언> 박스오피스 보고를 받는다. 오늘은 몇관이 늘었고, 누적 관객이 몇명인지. 유튜브에 <챔피언> 관련 자료도 올리고 평소에 안 달던 댓글도 달고.
남우택_ 포털 사이트에 <챔피언>에 대한 안 좋은 댓글이 달리면 ‘싫어요’ 누르고. (웃음)
홍지승_ 포털 사이트 아이디 닉네임도 바꿨다. 원래는 아이디가 좋아하는 팔씨름 선수 이름이었는데 최근에 ‘영화 마니아’로 바꿨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