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한 신동의 후일담은 구슬픈 감이 있다. 하지만 <오목소녀>는 낙관과 능청으로 낙오된 신동들의 청춘을 보듬는 영화다. 이바둑(박세완)은 천재 바둑소녀였지만 승부가 두려워 바둑판을 떠났다. 20대가 되어 기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뚜렷한 인생의 목표는 없다. 사고뭉치 룸메이트와 함께 날려먹은 월세 보증금을 갚기 위해 바둑은 오직 상금만을 노리고 오목대회에 참가하기로 한다. 만만하게 참가한 첫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맛본 바둑은 특급 수련으로 오목 비책을 익혀간다. 이윽고 전국 오목대회에 출전한 바둑은 어눌하지만 어딘가 음흉한 오목 천재 김안경(안우연)과 결전을 치르게 된다.
<오목소녀>는 좌절, 수련, 승자 진출로 이어지는 스포츠영화의 외견을 빌려왔지만 정작 승부엔 관심이 없다. 인디밴드 다큐 <반드시 크게 들을 것1, 2>, 슬로 라이프 예찬영화 <걷기왕>(2016)을 만들어온 백승화 감독답게 <오목소녀> 역시 마이너한 청춘들의 작지만 사소한 행복에 응원을 보낸다. 극장에서 보는 가벼운 웹드라마 같은 인상도 준다. 이바둑, 김안경 등 명랑 만화적 캐릭터를 통해 펼쳐내는 스토리 전개에서조차 감독은 사심 없이 천연스럽다. 단순하고 정직한 룰의 오목을 두며 의외의 수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오목소녀>는 온 근육의 긴장을 푼 채 피로한 마음을 눅일 수 있는 영화다. 전작과 차별화되지 않는 세계관과 감성은 미덕인 한편 앞으로 감독이 넘어서야 할 한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