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마술사’ 김지운 감독의 신작 <인랑>의 티저 포스터가 공개됐다. 포스터 속 특수방호복, 프로텍트 기어를 입은 강동원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7월 말 개봉이 확정된 <인랑>은 강동원 외에도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쟁쟁한 배우들과 김지운 감독의 조합이 어떤 시너지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인랑>은 김지운 감독의 전작인 <밀정>과 마찬가지로 워너브러더스 코리아가 배급을 맡았다.
<인랑>은 1999년 개봉한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공각기동대>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가 원작, 각본을 맡고 <공각기동대>의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았다. 원작 <인랑>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급진적 경제 성장을 이루지만 범죄와 반정부 투쟁이 만연한 근 미래의 일본이 배경이다. 특수부대 (일명 케르베로스)의 최정예 대원 카즈키를 중심으로 수도경(수도권 경찰 기관), 공안부, 반정부 단체 세 집단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
수도경의 특수부대원 카즈키는 반정부 단체 ‘빨간 두건단’의 테러를 저지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다. 그는 어두운 하수구 속에서 폭탄을 배달 중인 어린 소녀를 마주하게 되고, 그녀를 사살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 사이 소녀는 폭탄을 터트려 자폭한다. 하지만 프로텍트 기어를 입은 카즈키는 약간의 경상만 입고 소녀만 처참히 죽는다. 이 사건 이후 카즈키는 어린 소녀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소녀의 납골당에서 그녀의 언니 케이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수도경의 견제 조직 공안부는 치안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수도경과 특수부대를 없앨 음모를 세운다.
한국에 맞게 변경된 설정
김지운 감독은 ‘세 집단의 암투’라는 설정은 유지하되 국내에 맞게 그 배경을 각색했다. 원작에서는 세 집단의 투쟁이 단순히 권력을 잡기 위한 것 정도로 묘사됐다. 하지만 한국판 <인랑>은 ‘남북은 5년의 준비기간을 거치는 통일을 발표했다’라는 설정이 추가됐다. ‘통일’을 바라보는 세 집단의 다른 시각과 ‘분단’이라는 한국적 요소를 작품에 담았다. 강동원이 원작의 카즈키인 임중경 역을, 한효주가 원작의 케이인 이윤희 역을 맡았다. 그밖에 정우성, 김무열, 한예리, 최민호, 허준호 등의 배우들이 각 집단의 주요 인물들을 연기한다.
김지운 감독이 보여줄 <인랑>의 미술
원작 <인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장소는 하수구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소녀의 자폭도 하수구에서 일어나며 극의 클라이맥스 역시 하수구 속에서 진행된다. 어둡고 축축한 하수구가 작품의 암울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또한 원작은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회색빛 도시를 잘 그려내기도 했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의 영화에서 다양한 공간, 시대를 완성도 높게 창조했던 김지운 감독. 그가 이번 작품에서 원작의 배경을 어떻게 표현했을지도 <인랑>의 관전 포인트다. 또한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미술 감독으로 참여했던 조화성 미술 감독도 <인랑>에 참여했다.
원작의 특색을 따라갈 것인가
제목 ‘인랑’을 풀이하면 사람 인(人), 이리 랑(狼), 즉 ‘인간늑대’다. 이 인간늑대는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원작 <인랑>은 ‘늑대’라는 소재를 매우 독특하게 표현했다. 작품 사이사이 유명 동화 <빨간 모자>의 내용이 나지막한 나레이션으로 깔린다. 빨간 모자 소녀와 할머니로 위장한 늑대의 대화가 틈틈이 등장한다. 또한 주인공 카즈키가 겪는 심리적 압박, 트라우마 등을 늑대를 통해 표현한다. 이런 동화의 차용, 독특한 내면 묘사는 다른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인랑>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사화되는 <인랑>이 원작의 이런 독특한 연출법을 차용할 것인지,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늑대’를 표현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원작 애니메이션 <인랑> 제작진의 전작 <공각기동대>가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됐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인 메이저(원작 애니메이션의 쿠사나기 소령)를 맡았으며 약 1억 1100만 달러(약 12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하지만 ‘화이트 워싱’ 논란과 “원작의 깊이를 담지 못했다”는 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인랑>도 이처럼 위험부담이 매우 큰 작품이다. 원작이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실사 영화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굵직한 장르 영화들을 성공적으로 연출하고, 매 영화마다 자신의 색을 잘 녹여낸 김지운 감독이라면 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