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기봉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잊어서 안 되는 건, 그가 웬만한 상황에서 웬만한 영화는 이미 다 만들어봤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다작했으니 질이 들쑥날쑥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우견아랑>(1988), <동방삼협>(1993), <흑사회>(2005), <스패로우>(2008), <화려상반족: 오피스>(2015)를 모두 감독한 감독의 폭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스타일과 개성에 갇히지 않고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주어진 한계가 그리 갑갑하지도 않고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는 그런 감독. 그는 스타일과 이야기를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독전>의 원작인 <마약전쟁>(2013)에도 제한은 있다. 중국 공안이 주인공인 영화이니 이들을 다룰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다. 이들은 부패해서도 안 되고 흔들려서도 안 된다. 마약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공익영화처럼 명백하다. 결말은 대놓고 권선징악이다. 하지만 늘 말해왔듯 이런 제한은 영화 예술가들에게 오히려 자신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매력적인 탈출구일 수 있다.
<마약전쟁>은 그 기회를 자의적으로 이용한다. 영화는 중국 공안이 주인공인 마약 소탕 이야기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제한을 모두 지키고 있고 메시지도 그 정도면 선명한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스타일의 실험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공연한 메시지도 끝에 달았지만 거기에 끌려가지는 않는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영화엔 일반적인 홍콩영화의 브로맨스, 끈적끈적한 관계 묘사, 감상주의, 사연같은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애당초 캐릭터나 그들의 관계 묘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선악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지 않아도 경찰들 사이에 관계 묘사를 넣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런 거 안 한다. 한쪽은 잘라버려야 한다는 게 조건이 되자 당연한 듯 양쪽을 다 잘라버린 것이다.
두기봉은 밀키웨이식 프로페셔널리즘의 묘사를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경찰은 마약범을 잡는 것 이외엔 어떤 잡생각도 없고 마약범들은 범죄를 통해 최대한 이익을 내면서 법망을 빠져나오는 것 이외에 어떤 생각도 없다. 어쩔 수 없이 경찰에 협조하는 범죄자가 한명 있긴 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에게 흔한 회색을 허락지 않는다. 그가 영화 후반까지 회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검정과 흰색 사이를 빠르게 오가기 때문이지 캐릭터가 어떤 모호함을 품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것이 있다고 쳐도 영화의 단호한 결말은 그에 대한 고민을 가볍게 차단해버린다. 다시 말해 그의 색깔은 이 영화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결과 <마약전쟁>은 일반적인 홍콩 액션영화와는 많이 다른 종류의 짐승이 된다. 마약을 둘러싼 두 무리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을 거의 동물학자처럼 아무런 감정도 개입하지 않고 관찰하는 그런 영화. <마약전쟁>이 밀키웨이 영화들 속에서도 관습적이지 않고 신선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초 캐릭터의 변주 이상의 것
이 영화가 이해영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따라 <독전>이다. 한국어에선 별 의미가 없는 제목인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리메이크 과정이 알려지고 캐스팅 뉴스가 전해지면서 어떤 영화로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한 느낌이 왔고 주변 사람들의 예측도 비슷했는데, 보고 나니 정말 그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영화였다. 여기서 느낌이나 촉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데, 자유롭게 스타일과 이야기를 선택한 두기봉과 달리 이해영에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감독이 만들었다면 당연히 다른 영화가 나왔겠지만 그 느낌에서 벗어날 정도로 심하게 다른 영화는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독전>의 기본 이야기는 원작과 비슷하다. 마약범들을 사냥하는 경찰 집단이 있다. 어쩌다보니 이들에게 체포되어 협조하게 된 마약범이 있다. 이들은 힘을 합쳐 마약범을 소탕하는데 이에 협조하는 마약범의 진짜 목적은 알기 어렵다.
어떻게 이를 원작과 차별할 것인가? <독전>은 <마약전쟁>을 디테일이 빠져 있는 설계도나 스케치로 본다. 그리고 그 가상의 빈자리를 캐릭터와 사연, 도덕적 모호성으로 채워넣는다. 그러니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BWV 846의 전주곡 1번을 잃어버린 노래의 반주라고 상상하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은 샤를 구노의 <아베 마리아>와 비슷한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작에는 얄팍하기 그지없었던 모든 인물들이 보다 입체적이고 개성적으로 그려지며 그들에겐 여분의 이야기가 들어간다. 관계 묘사가 깊어지는 건 당연하고. 모 영화의 팬들은 이 묘사가 그 영화의 표절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여기서 문제는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BWV 846의 전주곡 1번이 구노가 만든 예쁜 멜로디의 반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이듯, <마약전쟁>도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기봉은 그냥 이런 종류의 소재를 다루는 중국어권 영화들이 몇 십년 동안 반복해온 비슷비슷한 레퍼토리들을 일부러 제거하면서 <마약전쟁>을 다른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독전>의 시도는 <마약전쟁>을 특별한 영화로 만들었던 예술적 선택을 제거해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과정이 된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가 예쁜 노래이듯, 이 작업의 결과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많은 하드보일드물이 그렇듯, 이 영화에는 노련한 배우들을 재료로 한 뚜렷한 캐릭터의 전시가 있다. <독전>은 원작과는 달리 “이선생이 누구냐?”라는 미스터리에 많은 시간을 할해하고 이를 캐릭터와 연결시키는데, 그 반전은 전혀 놀랍지 않지만, 이 이야기가 가진 고풍스러운 모험담의 풍취를 매력으로 보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캐릭터가 뚜렷한 만큼 재미있거나 창의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들에겐 지난 몇년 동안 한국영화에서 보았던 마초 캐릭터의 변주 이상의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 중 몇명이 여자라고 해서 이들이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건 아니다(여기에 대해 더 꼼꼼하게 비판하고 싶은 독자들은 강승현이 연기하는 여자 형사 캐릭터가 양쪽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비교해보면 되겠다).
이해영의 <독전>은 두기봉의 <마약전쟁>의 팬픽 버전에 가깝다. 이 자체는 예상했던 것이고 다른 무언가가 나왔다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일단 공동각본가 정서경의 전작 <아가씨>(2016) 역시 원작 <핑거스미스>의 팬픽이었고 최근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조직폭력 소재 액션물은 80, 90년대 홍콩영화의 팬픽이기 때문이다. 이는 번안물의 한계가 아니다. 역시 홍콩영화의 리메이크인 마틴 스코시즈의 <디파티드>(2006)와 비교해보라. 이들 영화에는 스코시즈 영화에는 없는 것, 그러니까 80, 90년대에 홍콩영화를 보면서 한국인 관객이 느꼈다고 생각하는 감흥을 재현하고 과장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들이 어떻게 소비되건 간에 이 태도는 기본적으로 반동적이며, 이 반동성은 실제로 80, 90년대를 관통하며 영화를 만들어왔고 지금까지 꾸준히 스스로를 재창조해온 홍콩 감독영화의 리메이크에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