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피아노를 쓰다듬으며 류이치 사카모토는 말한다. “잘도 버텨냈군.” 그러곤 “자연이 조율해준 쓰나미 피아노”를 연주한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계적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원전 반대 등 환경 문제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예술가다. 그런 그가 2014년 인후암 판정을 받는다. 충분히 쉬지도 못했건만 존경하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영화음악 작업 의뢰를 수락한다. 이후 미뤄뒀던 새 앨범 《ASYNC》 작업에도 박차를 가한다. 하루 8시간 이상 일할 수 없는 몸 상태지만 부지런히 새로운 소리를 채집하고 음악을 만드는 건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좀더 남기고 싶어”서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부터 2017년 《ASYNC》를 발표하기까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시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마지막 황제>(1987) 등 영화음악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보고 바흐를 연주하면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듣고 싶은 소리를 찾아가는 예술가의 일상이 경이롭다. 영화의 엔딩. 바흐의 코랄 전주곡을 연습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류이치 사카모토는 부끄러운 듯 이렇게 말한다. “좀더 열심히 날마다 손가락을 움직이기로 했어요.” 삶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아름다운 동시대 예술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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