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2013년 2월, 첫 무주산골영화제를 준비하며 낯선 무주를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이었다. 캠핑을 좋아하던 팀장이 덕유산에 야외상영하기에 좋은 곳이 있는데 한번 가보자고 했다. 덕유대야영장 대집회장. 세계잼버리 대회가 열렸던 곳이라고 했다. 입이 딱 벌어졌다. 영화를 상영하기에 끝내주는 공간이었지만 너무 넓었다. 그때 무주에서 상영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던 영화가 있었다. <비포> 시리즈였다. 당시 <비포 미드나잇>이 개봉했었는데, 무주에서 <비포> 시리즈를 연속으로 상영하면 멋지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비포> 시리즈를 무주에서 상영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모두 할리우드영화여서 판권 처리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2015년 3회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사무국장과 고민 끝에 처음엔 엄두가 안 났던 바로 그 대집회장에서 야외상영을 해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떤 영화를 상영해야 무주, 그것도 덕유산에까지 영화를 보러 올까? 고민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해외 배급사를 접촉하던 중에 우연히 이 회사에서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의 판권을 관리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기뻤다. 그런데 망설였다. 일이 너무 많았고 영화제가 코앞이었다. 고민하다가 여유 있게 준비해서 2016년에 상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비포 선라이즈>가 1995년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5년은 <비포 선라이즈> 개봉 20주년이었다. ‘그래, 이건 못 먹어도 고다.’
접촉을 시작했다. 그런데 두편 모두 가능한 상영 포맷은 35mm 필름 프린트뿐이었다. 필름이라….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필름 상영도, 예산도 걱정됐다. 기술팀에서 오랜 기간 일한 경험이 있는 사무국장이 외쳤다. “까짓것, 해봅시다.” 이렇게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의 35mm상영이 결정되었다. 상영이 확정되던 날, 동료들은 물개박수로 환호했다. 그렇게 덕유대야영장 대집회장에서의 영화 상영이, 이곳에서의 35mm 필름 상영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SNS상에서 관객은 <비포> 시리즈 3편의 연속 상영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후 덕유대야영장 대집회장은 무주산골영화제를 대표하는 야외상영장이자 얼굴이 되었다.
<비포> 시리즈를 상영하기 전날, 덕유산에는 잠깐 비가 왔었다. 영화 상영을 시작했는데, 산속이다 보니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유료 판매 중이던 믹스커피를 무료로 나누어주고, 가지고 있던 담요를 빌려주었지만 추위를 막을 순 없었다. 관객은 추위와 싸우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이 끝나고 마이크를 잡았다. 마지막 영화 <비포 미드나잇>은 필름 상영도 아니고 개봉한 지 얼마 안 돼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 여러분이 원한다면 상영을 여기서 끝내겠다고 했다. 끝까지 남아 있던 50여명의 관객은 “상영해달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가, 내 영화제 인생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야외상영의 마지막 순서가 시작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표’는 그렇게 관객과 함께 완성되고 있었다.
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올해 6회 무주산골영화제가 6월 21일 개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