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나와 봄날의 약속> “같이 아름답게 잘 망하자”
2018-06-27
글 : 장영엽 (편집장)

영화감독 이귀동(강하늘)은 지난 10년 동안 한편의 영화도 찍지 못했다. 생일을 맞은 그는 숲속에서 홀로 케이크를 먹으며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한다. 이야기가 풀리지 않자 귀동은 세상이 다 망했으면 좋겠다고 외친다. 그 순간 굉음이 들려오며 어디선가 네명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중 ‘야쿠르트 아줌마’ 복장을 한 중년의 여성(이혜영)은 평소 귀동의 굉장한 팬이었다며 그에게 작업 중인 시나리오의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다. 귀동은 그녀에게 지구 종말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아포칼립스 프로젝트>(가제)를 들려준다.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한나(김소희)와 야구모자를 쓴 남자(김성균)의 동행기, 평생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교수 의무(김학선)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여학생(송예은)의 이야기, 주부 수민(장영남)을 데리고 자신의 거처로 떠나는 자칭 그녀의 후배, 미션(이주영)의 이야기가 디스토피아적인 풍경 속에서 펼쳐진다. <나와 봄날의 약속>은 지구종말을 하루 앞두고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외계인들의 이야기다. 지극히 익숙한 풍경을 낯설고 기묘하며 때로는 섬뜩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종말을 원하는 주인공들에게 외계인이 건네는 특별한 선물이 공개되는데, 매혹적이면서도 파괴적인 ‘그것’은 “같이 아름답게 잘 망하자”는 귀동의 세계관과 겹친다. 스토리텔링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로, <장례식의 멤버>(2008)를 연출한 백승빈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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