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여중생 A> 속 카메라가 인물과의 거리로 보여주는 것
2018-06-27
글 : 홍은애 (영화평론가)
미래의 미래

영화 <여중생 A>에는 가정 폭력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있다. 만약 이 장면에서 폭력을 그대로 보여줬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원작 만화에도 영화에도 이 장면은 소리로만 표현된다. 특히 영화에선 방문 앞에 서 있던 카메라가 방문이 닫히고 미래(김환희)가 맞는 소리가 들리자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바로 이 장면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멈춰선 카메라의 거리를 통해 따뜻한 감독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경섭 감독은 원작 만화가 보여준 이미지에 충실하게 영화를 촬영했다. 하지만 몇몇 장면에서 만화 텍스트가 보여준 이미지 외에 새로운 장면들을 추가해 영화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지금부터 그 장면들을 찾아가보려고 한다.

그날의 진실은

한 여학생이 텅 빈 전철 플랫폼을 따라 걸어가고 카메라는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그녀는 멈추고 가판대의 신문을 집어 펼친다. “여중생 A양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2005년 10월 17일 그날의 진실은”이라는 신문 1면의 기사가 클로즈업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 영화는 허5파6의 동명 네이버 웹툰이 원작이다. 영화는 웹툰과 마찬가지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형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감독은 웹툰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도입부 첫 번째 장면(여학생이 신문을 펼쳐 보는)과 엔딩의 마지막 장면이 서로 만나는 미장아빔(액자) 구조를 취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프롤로그 첫 번째 장면만이 에필로그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어째서 감독은 이 장면을 영화의 첫 장면으로 배치한 것일까?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무엇인가?

우선 영화의 도입부를 보자. 여학생이 신문을 펼쳐 보는 장면에 이어 카메라는 마치 그날의 상황을 보여주듯이 빠른 화면으로 텅 빈 교실, 창밖으로 빠르게 떨어지는 물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다친 여학생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 장면을 보고 놀랄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책상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자는 여학생(김환희)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그녀(미래)는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 앉아서 노트에 글을 쓴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했던 그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여중생 A’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감독은 이미 우리가 그녀를 ‘여중생 A’라고 믿도록 장면들(여학생, 신문 기사, 바닥에 엎어진 여학생, 잠에서 깬 여학생)을 순차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의 믿음을 배신한다.

이제 영화의 에필로그로 가보자. 첫 장면에서 우리가 보았던 전철 플랫폼에 여학생 B가 걸어간다. 카메라는 첫 장면과 동일하게 그녀를 따라간다. 여기서 그녀를 여학생 B로 한 것은 멀리 희미하게 먼저 도착한 여학생 A가 신문을 펼쳐 보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여학생 B가 여학생 A에게 다가가면 여학생 A는 읽고 있던 신문을 접는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신문을 읽고 있던 여학생 A가 ‘노란’이고, 방금 우리가 본 여학생 B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본 주인공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우리에게 이런 착각을 일으키게 했을까? 영화에서 노란의 머리 길이는 미래보다 훨씬 길었고 묶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미래와 노란은 교복, 백팩, 머리 스타일, 머리 길이도 같다. 우리는 감독의 이런 의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여러 차례 보았던 반복을 통한 인물의 자리바꿈과 같은 장치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의 초반 반장인 백합(정다빈)은 반 학생 모두가 멀리하는 미래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말을 건다. 물론 나중에 우리는 백합이 미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미래가 글을 잘 쓰기 때문에)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백합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부반장 노란은 그런 백합이 못마땅해서 미래를 더 심하게 괴롭힌다. 설상가상으로 미래는 글쓰기 대회에서 백합의 글을 표절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결국 화장실에 갇히기까지 한다. 화장실에 갇힌 미래를 노란이 구해주고 노란은 백합이 미래의 글을 표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은 다시 노란과 백합에게도 반복된다. 체육시간에 짝이 없는 외톨이는 미래에서 노란으로 바뀌고, 노란은 백합을 괴롭히고, 화장실에 갇혀 물세례를 받은 백합을 미래가 구해준다. 교실에 돌아온 백합을 본 선생님은 누가 그랬냐고 묻지만 미래를 포함한 반 학생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미래가 백합의 글을 표절했다는 오해를 받았을 때, 미래의 글을 읽었던 태양이 모른 척했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동일한 상황에서 인물의 자리바꿈은 마치 누가 걸릴지 모르는 수건돌리기 게임을 연상시킨다. 이제 게임을 끝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미래가 즐겼던 게임 세계 <원더링 월드>가 서비스 종료를 알렸을 때, 다크(미래)는 절벽에서 투신하는 것으로 게임을 끝냈다. 반면에 미래는 현실 세계에서 술래인 백합이 혼자 창문의 분필가루를 닦을 때, 기꺼이 술래가 된다. 이때 반 친구들도 나서서 함께 술래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모두가 술래가 될 때, 게임은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 이것은 영화의 제목 여중생 ‘A’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A’는 ‘B’와 ‘C’로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신문을 펼쳐 보는 ‘여학생’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그녀는 ‘노란’뿐만 아니라 그들 중 누구(미래, 백합)로도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미래와의 단절 혹은 나아감

다시 영화의 엔딩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전철 플랫폼의 의자에 네명의 여학생(노란, 미래, 안경 여중생, 백합)이 앉아 있다. 이들은 백합의 집에서 떡볶이를 만드는 수행평가를 같이 한 중3 같은 반 학생들이다. 노란은 자신의 집에서 떡볶이를 해먹자고 제안한다. 미래가 약속이 있다고 할 때, 전철이 플랫폼에 들어오고 그녀들의 모습은 전철에 가려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그녀에게 “남자친구 만나러 가냐”고 묻고, 미래가 “희나”(랜선 친구 재희)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장면에서 비로소 카메라는 미래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 멈춰서 있다. 이 카메라의 거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감독은 영화에서 단 한번 예외적인 장면(가정 폭력 장면)을 제외하고 보호자처럼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줄곧 미래를 따라다녔다. 이 장면에서 닫힌 방문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미래가 맞는 소리가 들리자 서서히 뒤로 물러나서 방문의 손잡이가 보이는 곳에서 멈춘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입술이 찢어진 미래가 나온다. 아마도 카메라는 손잡이가 돌아가는 순간, 즉 미래가 나오는 것을 보기 위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웹툰에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에서 느꼈던 그 순간을 아쉽게도 만화에선 느낄 수 없었다. 마침내 감독은 영화의 엔딩에서 미래가 앉아 있는 플랫폼 반대편으로 카메라를 옮겨놓는다. 그곳에서 미래를 지켜보던 카메라는 지나가는 전철에 의해 미래와 단절된다.

이제 미래는 완전히 카메라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녀가 앞으로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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