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아름답고 귀여운 이미지로 가득해서 매 장면 캡처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소장각’ 영화를 들고 말이다. 그의 9번째 장편영화 <개들의 섬>은 전작과 비교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물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서 드러냈던 역사의식과 21세기 정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따져 묻는 시선도 겸비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인 감독상을 수상한 <개들의 섬>은 웨스 앤더슨의 미학과 변화의 지점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수작이다. 어서 빨리 그의 영화를 들여다보고 싶은 관객에게 영화 속 모험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제작기를 전한다.
정치색을 띠기 시작한 웨스 앤더슨식 모험담
“쓰레기 더미에서 사는 알파독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개들의 섬>은 가상의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인간과 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를 다룬다. 개와 인간의 갈등이라니, 어쩐지 그의 첫 번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Mr. 폭스>(2009)의 동물과 농장주의 대립이 오버랩된다. 인간과 개의 갈등, 그리고 일본을 배경으로 이번에도 역시 유사한 소재의 전혀 다른 버전 이야기가 펼쳐질까. 아니면 개와 일본을 경유하는 웨스 앤더슨식 활극은 과연 부다페스트 특급 호텔을 배경으로 냉전시대라는 폭력의 역사에 주목했던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문제의식이 심화된 결과라 볼 수 있을까.
<개들의 섬>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후 메가사키라는 일본 내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메가사키시의 고바야시 시장(구니치 노무라)은 개들이 어느 날 개독감, 개열병 같은 질병을 퍼뜨리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 시작하자 쓰레기 섬으로 추방하는 법령을 통과시킨다. 그는 솔선수범해 조카 아타리(고유 랜킨)의 경호견 스팟(리브 슈라이버)을 추방 1호로 지정해 쓰레기 섬으로 추방시킨다. 개들의 추방에 반대하는 와타나베 교수(이토 아키라)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개독감, 개열병 등을 치료할 수 있는 해독제를 개발 중이다. 하지만 결국 도시의 모든 개들은 쓰레기 섬으로 추방되고 만다. 웨스 앤더슨의 모험담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시작한다. 시장의 조카 아타리는 친구나 다름없는 스팟을 되찾기 위해 쓰레기 섬으로 잠입하고, 그곳에서 강인한 생존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섯 마리의 개들의 도움을 받아 스팟을 찾아나선다. 쓰레기 섬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아타리 일행과 이들을 저지하려는 정부 세력이 대립하는 과정은 스펙터클한 액션과 아기자기한 추격전의 재미를 동반한다. <개들의 섬>에서 보여주는 아타리의 모험은 아웃사이더 소년이 새로운 땅을 찾아나서는 클래식한 모험담이면서 동시에 권력자들에 대항하는 전형적인 약자들의 스토리다. 거기에 더해 수많은 개들이 가진 입체적인 사연과 혼란스럽지만 예술적인 분위기까지 풍기는 쓰레기 섬의 위용은, <개들의 섬>을 사랑하는 개를 찾아나섰다가 세상까지 바꾸게 되는 소년의 성장담으로 확장시키는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권력을 앞세워 혐오를 퍼뜨리는 시장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통해 21세기 지구촌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소환한다. 바로 지금 전세계가 직면한 난민 문제를 대입해볼 수도 있겠다. 물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폐쇄적인 국가간 이민정책에 대한 문제로도 읽을 수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 메가사키시는 웨스 앤더슨 영화의 어떤 배경과도 비교해 가장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공간이다.
일본으로 간 웨스 앤더슨
소년의 모험담과 버려진 개들의 반란을 앞세우는 투쟁의 서사와 더불어 <개들의 섬>을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일본이 배경이라는 점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일본 문화 전반에 걸쳐 각각의 요소를 다양하게 차용해 미술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이야기에도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끌고 들어온다. 마치 영화 전체를 한편의 탄생 설화처럼 구성해 일본에서 구전되는 이야기와 현재의 사건을 예언서 보듯 엮어내는 점, 하이쿠(일본 특유의 단시)라는 문학 형태를 영화의 앞뒤에 배치하는 점 등이 그러하다. 프로덕션 디자인 전반에는 에도시대 풍속화(우키요에)를 목판화(니시키에)로 작업했던 우타가와 히로시게나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영화의 원안은 웨스 앤더슨 감독과 <다즐링 주식회사>(2007)를 함께 집필한 배우 제이슨 슈워츠먼, <문라이즈 킹덤>(2012)의 작가 로만 코폴라와 함께 써내려갔다. 그런데 일본 문화 표현에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영화에 담길 가부키, 스모, 하이쿠, 스시 등 각종 일본 문화 요소는 일본 배우 구니치 노무라에게 도움을 받았다(그는 극중 고바야시 시장의 목소리 연기도 맡았다). 물론 그 많은 일본 문화 요소 한가운데에는 영화가 있다. “1950, 60년대 일본영화들을 참조했다.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고바야시 시장의 외모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배우 미후네 도시로를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미후네 도시로가 함께한 <주정뱅이 천사>(1948), <들개>(1949), <7인의 사무라이>(1954) 등을 직접 연상케 하는 캐릭터 구도와 플롯, 음악 등 여러 방면에서 <개들의 섬>에 오마주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또 다른 영화 <거미의 성>(1957)과 <란>(1985)은 주인공 아타리의 의상이나 미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모두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의도에서 비롯됐다.
인종차별 논란과 일본어 번역 문제
그런데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개들의 섬>이 처음 공개됐을 때 평단에서는 일본 문화의 재현 문제를 포함해 영화(서양 감독)가 일본(동양)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다. 영화의 메인 플롯은 권력자의 횡포에 맞서 아타리가 고난을 극복해가는 이야기지만 그가 섬에서 모험을 펼치고 있을 때 권력에 맞서는 또 다른 한축으로 스테이시(그레타 거윅)라는 미국인 교환학생이 등장해 활약하는 대목 때문이다. 불의에 항거하며 앞뒤 맥락 없이 갑자기 등장해 투쟁하는 백인 여학생 스테이시의 모습은 흡사 일본 역사 속 전공투 세대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평단에서는 이를 두고 “전형적인 백인 구원자의 서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또 많은 평론가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영화 속 일본어 번역과 자막의 문제였다.
영화가 시작하면 극중 모든 개 짖는 소리는 영어로 번역되며 일본어에 대해서는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반쯤 농담 섞인 알림 문구가 등장하는데, 일본인 캐릭터가 일본어로 이야기할 때는 아무런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 몇몇 장면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캐릭터들이 통역관이나 통역기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개 짓는 소리는 모두 영어로 번역된다는 점이다. 물론 상황과 캐릭터의 표정 등 뉘앙스로도 충분히 뜻을 유추할 수 있는 대사가 대부분이지만, 이 또한 인종차별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이에 대해 감독은 “자막이 들어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영화 내내 자막을 읽어야 하는 경우에는 언어를 귀기울여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극중 모든 일본인 캐릭터의 일본어 자문은 구니치 노무라가 맡았지만 이 문제 또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고바야시 시장의 시선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아타리의 짜릿하고 신나는 모험의 끝에는 아주 통쾌하고 긍정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비롯해 그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어쩌면 가장 대중적인 해피엔딩일지 모른다. 세상의 편견과 억압, 불의에 맞서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소년의 모험담만큼 신나는 활극이 또 있을까. 혹자는 이 대목에서 왜 여전히 ‘소년’이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이라면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앞으로 되물어야 할 질문을 더 많이 갖게 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세계는 언제나 아기자기한 모험으로 가득했다. 그가 펼쳐 보이는 모험은 늘 범죄나 비극을 수반하지만 아름답고 귀여운 파스텔 톤의 이미지는 그 삶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볍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단지 색감이 예쁘고 빈티지한 소품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영화 속 세계의 진실이란, 보이는 것 너머 심오한 무언가를 깨닫게 만들기보다는 작지만 소중한 현실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들의 섬>은 웨스 앤더슨 영화 가운데 대중적이면서 가장 전복적인 결말을 지닌 영화일지 모른다. 어찌됐건 머리 아픈 고민은 일단 영화를 보고 나서 하도록 하자고 못내 추천하고 싶은데, 마지막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영화가 아무래도 개들의 관점에 쏠린 나머지, 고양이 혐오 논란에 휩싸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극중 아타리의 대사에도 등장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를 알기 위해 싸워나가는 모든 존재는 아름답다. 웨스 앤더슨 감독도 다음에는 고양이들이 겪는 편견과 억압에 맞서 싸워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웨스 앤더슨의 장인정신 스톱모션 기법
웨스 앤더슨의 두 번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제작 과정만으로도 감동적이다. 퍼펫(인형)은 제작에만 6개월이 소요됐고 1천개 이상 모형을 만들었다. 퍼펫 부서 인원 70명, 애니메이션 부서 인원 38명을 포함해 총 670명이 참여했고 촬영은 445일이 걸렸다. 스톱모션은 많은 노동력과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으로, 특히 털 작업이 매우 복잡했다. 극중 개들의 털을 표현하기 위해서 테디베어 공장에서 쓰이는 알파카 털과 메리노 양털을 모아 사용했다. 퍼펫 제작 책임자 앤디 젠트는 “손으로 퍼펫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표면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에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이번에는 그런 특징이 요긴하게 쓰였다. 꾀죄죄한 개들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의 가장 복잡한 시퀀스는 와타나베 교수가 배달받는 초밥이 만들어지는 장면으로, 촬영 당시에 쌀알의 디테일한 표현이 필수였다. 그 한 장면을 위해 애니메이션 감독을 따로 두었을 정도. 웨스 앤더슨 감독이 스시 셰프의 완벽주의가 사실적으로 표현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총 4명의 애니메이터가 한 장면을 위해 두달 넘게 매달렸다. “그 장면에서 스시 자체는 약간의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발명품’이다. 하지만 퍼펫들이 실제 스시 셰프처럼 칼을 사용하고 꼼꼼하게 생선을 다뤄야만 흥미로워 보일 것 같았다.”
어렵지만 더 어렵게
최근의 스톱모션 제작 과정은 특수 소프트웨어와 디지털카메라 덕분에 능률화가 이루어졌다. <개들의 섬>에는 캐논 IDX 카메라, 프레임 조정과 실시간 미리 보기가 가능한 드래곤 프레임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이용되었다. 물론 여전히 스톱모션은 인내심을 요한다. 퍼펫의 액션이 실제처럼 보이려면 1초마다 24개의 동작을 표현해야 한다. 이를 ‘on ones’ 애니메이션 기법이라고 한다. 프레임당 하나의 동작, 즉 1초당 24동작이다. 하지만 앤더슨은 ‘one twos’ 애니메이션을 선호한다. 이렇게 되면 움직임이 좀더 기이하고 딱딱해 영화 전체에 특정한 미학을 부여하고 뚜렷한 정서적 분위기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