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허스토리> 이설 - 침착하고 대담하게
2018-06-28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내 혼자 잘 컸지.” <허스토리>에서 바깥일에 바쁜 문 사장(김희애)의 딸 혜수는 무심하고 대범하다. 천연덕스러운 부산 사투리로 엄마 옆에서 소주를 들이켜는 그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저 배우는 누굴까 궁금해졌다. <허스토리>로 첫 번째 장편영화 데뷔를 마친 배우 이설은 그간 김동률의 뮤직비디오 <답장>과 웹드라마 <두 여자> 시즌2 등을 통해 세련된 이미지로 젊은 층에 이름을 알렸다. 다음번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의 임수정처럼 당차고 코믹한 연기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며 앞으로의 활동에 포부를 불태운 배우 이설을 만났다.

-오디션장에서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고. 캐스팅 일화가 궁금하다.

=전학을 여러 번 다녀서 적응이 힘든 혜수의 전사를 들려줬더니 단번에 민규동 감독님이 “이거 너 실화지?”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와 청도에서 살았는데 이후 부산, 울산, 대구로 전학을 여러 번 다녔다. 적응이 안 돼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도 했었다. 혜수의 마음이 이해가 돼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감독님은 원래 사투리를 쓰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라 나를 더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실제로는 대구 사투리에 더 익숙해서 부산 사투리를 열심히 연습했다.

-의연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혜수 캐릭터와 닮은 면이 있는 것 같다.

=서울에 혼자 상경한 이후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러다 운 좋게 모델 일도 하게 됐다. 지금도 원하는 게 있으면 일단 겁 없이 해보려고 한다. 곧잘 질려 하는 성격이기도 한데, 이상하게 연기는 죽을 때까지 붙들고 싶다. 말하고 보니 조금 느끼한 표현인가. (웃음)

-혜수는 터닝포인트를 겪고 할머니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혜수의 변화는 지금 동시대 내 세대가 겪는 현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어린,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자꾸만 주변 인물들의 대화에서 혜수가 언급된다. 다음 세대가 더 나은 미래를 누리기를 염원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것 같았다.

-혜수가 발언하는 집회 장면은 실제 위안부 수요집회에 참석해서 찍은 거라고.

=민규동 감독님이 무대에서 혜수가 발언하는 내용을 직접 쓰라고 하셔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도 다녀왔다. 촬영날 무대 아래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우는 걸 봤다. 나도 울컥해서 준비한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내려왔다. 중요한 건 영화에서 할머니들이 더이상 숨지 않기로 결심한 것처럼, 나도 그동안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내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곳에 계속 참석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 움직임이 계속해서 보존되고 대물림될 거라 믿는다.

-데뷔작인데 김희애, 김해숙 등 실력 있는 선배 배우와 가까이서 호흡하느라 부담감이 컸겠다.

=블로킹이 뭔지, 더블이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웃음) 선배님들 앞에서 더 잘하고 싶은 오기로 연습을 많이 했는데, 막상 현장에선 십분의 일도 보여주지 못했다.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선배님들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조언해주셨다.

-조급하다는 건 하고 싶은 게 많다는 말로도 들린다.

=얼마 전엔 스킨스쿠버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다. 물 속에서 호흡기를 놓쳐서 당황했는데 번뜩 선배님들에게 들었던 얘기가 떠오르는 거다. 속으로 ‘침착하게’를 되뇌이며 무사히 마쳤다.

-첫 영화가 개봉하는 소감이 어떤가.

=출발선 바깥으로 던져진 기분이다. 배우는 캐릭터와 만나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드러내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들을 잘 이겨내서 내 안에 쌓인 것들을 진정성 있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차기작 계획은.

=최근 정혁기 감독의 <뎀프시롤>(가제) 촬영을 마쳤다.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2014)에서 구교환 배우가 맡았던 역할을 내가 하게 됐다. 즐겁게 촬영했던 작품이라 기대가 된다.

영화 2017 <허스토리> 웹드라마 2018 <자취방> 2016 <두 여자> 시즌2 뮤직비디오 2018 김동률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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