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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돌처럼> 박소현 감독 - 우리도 춤을 출 수 있다
2018-06-28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 장편경쟁부문 작품상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 퍼포먼스, 깡마른 발레리나가 선보이는 고난도 무용 기술만이 춤이 아니다.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 장편경쟁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구르는 돌처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의 남정호 교수가 8일 동안 대안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즉흥춤 수업을 통해 춤과 몸의 본질을 생각게 한다. 각자가 살아온 인생과 개성이 녹아 있는 몸을 긍정하고 자기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춤이라고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박소현 감독 역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춤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춤을 못 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사실은 춤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감독을 만나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이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는지 궁금하다.

=영등포에 자리한 하자센터에서 다양한 대안학교들이 네트워킹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이곳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상 수업을 하고 있고. 2012년부터 방학 때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무용가 남정호 선생님을 초청해서 7~10일 정도 즉흥춤 마스터클래스를 열어왔는데, 2017년 여름방학이 바로 10번째가 되는 때였다. 그동안 남정호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돌아와 참여하기도 하는 자리인 만큼 하자작업학교의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일종의 메이킹 필름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 모습을 카메라에 기록하다 보니 영화로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내용을 영화의 소재로 생각하게 될 만큼 ‘몸’과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구르는 돌처럼> 작업을 할 즈음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내가 있던 같은 병실에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있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입원했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몸의 역사가 있더라. 내가 그동안 사소하다고 생각하며 몸에게 해왔던 일들이, 일상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신체에 나타나는 시기가 되니 자연스럽게 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내 몸을 증오하게 되면 결국 다른 사람의 몸도 증오하게 된다. 대상화되지 않은 몸을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영상 작업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다른 언어나 그들과의 협업에 대해서도 계속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찍기 전과 후 몸과 움직임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춤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다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생각하며 잘 추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랬는데, 생각해보니 사실 나는 춤추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더라. 아침마다 같이 사는 고양이와 춤을 추고 있다. (웃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춤이라고 하면 TV로 보던 공연이나 입시무용 같은 것을 떠올리다 보니 우리도 춤을 출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다. 남정호 선생님의 수업은 온전히 자기 몸에 집중해서 땀을 흘리고, 나조차도 잘 몰라서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을 움직이는 경험을 가능케 하는 춤을 보여준다. 또한 남학생들은 축구나 농구를 하면서 땀 흘릴 일이 있지만 여학생들은 그럴 기회가 적지 않나. 그래서인지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남학생들도 있었지만 결국 여성의 몸과 대상화되지 않은 몸으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연대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전작 <야근 대신 뜨개질>(2015)은 주요 인물 셋 나나, 주이, 빽이 있었고 확실하게 그들의 개성이 보였다. 반면 <구르는 돌처럼>은 남정호 무용가 중심으로 흘러가고 학생들의 캐릭터를 크게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학생들 각자의 사연도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지금 영화보다 좀 짧은 분량으로 만든 메이킹 필름을 먼저 상영한 적이 있는데, 그 영상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등장한다. 평소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이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너무 소극적이라 에너지를 분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수업에 참여한 학생도 있었다. 영화에서는 남정호 선생님과 선생님의 수업이 주는 의미에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학생들 개인의 이야기는 편집에서 좀 덜어냈다. 대신 그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고다를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마스터클래스 첫해부터 꾸준히 수업에 참가했던 고다가 영화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야근 대신 뜨개질>은 3년여 동안 주인공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며 찍은 작품이다.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퇴사도 한다. 반면 제한된 기간 동안 벌어지는 수업을 담은 <구르는 돌처럼>은 찍는 방법이 완전히 달랐을 것 같다.

=정말 달랐다. 정해진 기간 동안 남정호 선생님의 수업을 집중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홍효은 촬영감독과 함께 몸의 움직임을 담기 위해 신체를 어떻게 잡을지, 학생들의 표정을 어떻게 담을지 등등 사전 준비를 많이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을 함께해준 홍효은 촬영감독의 공이 크다. 정말 평생 잊지 말아야 할 큰 빚을 졌다.

-지금까지 작품을 보면 졸업작품을 제외하고는 조감독 시절부터 다큐멘터리만 줄곧 찍어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실 학부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할 때는 편집감독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는 많은 스탭들을 아우를 수 있는 아우라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학교에서도 감독이 아닌 선생님처럼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웃음) 그러다가 편집이 가능한 조감독을 원한다기에 <우리학교>(2006)에 참여했는데, 극영화 연출보다 나와 성향이 맞는 것 같더라. 하지만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만 한다고 경계를 짓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잘할 수 있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가려고 한다.

-<야근 대신 뜨개질>은 실제 다녔던 회사에서의 경험을 담았고, <구르는 돌처럼>은 감독이 일하는 대안학교 네크워크에서 알게 된 수업이 계기가 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독특하면서도 개인의 경험과 밀착되어 있다.

=어떤 것을 발굴하기보다는, 일상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이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 안의 ‘사소한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계속 담고 싶다.

-지금 여성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워낙 사회적으로 이슈다보니 여성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온 감독님 입장에서도 확실히 창작자로서나 여성으로서 드는 생각이 많을 것 같다.

=조감독과 공동제작으로 참여한 <자, 이제 댄스타임>(2013) 당시만 해도 낙태 경험이 있는 당사자를 찾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주변을 수소문해서 겨우겨우 사람을 구했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칼럼에서 자신의 낙태 경험을 고백하는 시대가 됐다. 여성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어디엔가 이런 여성이 있다는 것을 서로 인지하게 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사실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은 주변의 여성 동료들 덕분이다. 남정호 선생님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며 자신의 예술을 하는 분이기 때문에 많은 영감을 줬다. 동료 여성 작업자들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함으로써 서로에게 용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준비하는 차기작은.

=올여름 학생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긴 여행을 떠나는데, 이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며 10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예정이다. 이 세상의 19살이 모두 입시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고, 20대 초반이라고 해서 모두 대학을 다니고 있지도 않다. 또한 <구르는 돌처럼>을 만들며 느낀 바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의 몸을 아카이빙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계속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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