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구스 반 산트 / 출연 마이클 피트, 루카스 하스, 아시아 아르젠토 / 제작연도 2005년
어쩌면 그는 겨울에 태어났을까. 어쩌면 오늘이 그날인지 모른다. 마른 숲을 맨발로 지나면서, 나는 그의 유일한 증인이 되어간다. 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덜덜 떠는 그의 몸을 따라간다. 그의 이름을 불러 뒷모습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숲에서는 누구나 길을 잃고 어둠은 아직 반복된다. 나는 이미 죽은 몸으로 그의 망각을 도울 뿐… 어차피 나는 그 이름 기억하지 못해. 그것은 나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모른다고… 되새기며 그러니까 빌어먹을 내 이름도 모르는 심정이다. 누가 그를, 나를 여기로 보냈을까. 추론만 가능한 집.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저택. 친구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구나. 내가 훔칠 수 있는 건 내 눈물뿐. 그러는 사이 방문자들이 들락거리며 집을 더럽힌다. 나는… 잊어버린 물건 같아. 그것이 총이나 칼은 아닐 거야. 아마… 여동생이 아끼던 머리 잘린 인형 같은… 그런 것도 아닐지 몰라. 더이상 전화는 받지 않아야 해… 더이상 찾지 않아야 해. 대체 그 집에서 뭐 하는 거야? 그날 약속을 못 지키면 다 네 망신인 거야. 노크 노크…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지내시죠? 그냥 똑같은 날들입니다. 나는 진부한 로커입니다. 복잡한 일에 끼어들기 전에 빨리 나가. 다 나가버려. 내 노래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얘야, 차 가지고 왔단다. 나랑 같이 가자. 여기서 나가자. 어렵지 않을 거야. 친구들이 나를 찾을 거예요. 아니 내가 친구들을 아니 내가 나를 찾을 거예요… 우리가 피하는 건 오로지 추위였어요. 추위였는데… 두명의 친구가 침대에서 세명의 친구가 되고 네명의 친구가 쪼개진 나를 명명하기 시작하고… 스르르르… 스르르르… 나는 침대 밑에서 기어나와 덩그러니… 덩그러니… 풍문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몸. 나의 혈통이 나를 불러 세워요. 어머니는 과도한 양의 리탈린을 내게 먹였어요. 벌거벗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나를 모른 척할 때,나는 내가 잊은 물건 바로 그 물건을 챙겨 나를 찾아야 해요. 우리는 많은 것을 상상에 의존했습니다. 이봐,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이 함께 오고 있어. 마른 숲을 맨발로 지나면서 유일한 죄인이 되어간다. 그런 걸 바란 적 없나요. 나를 닮은 누군가, 숲에 들어선다. 짧은 안부를 위해. 기어이 우리는 어둠을 나누어 덮는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It’s a long lonely journey from death to birth.
지지연 의상감독. <범죄의 여왕>(2016), <소공녀>(2017)의 의상을 맡았다. 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상상해본다. 나는 관객으로 시작하다가 블레이크(극중 캐릭터)였다가 또는 블레이크를 대하는 마이클 피트(배우)였다가 또는 커트 코베인으로 이 영화를 곱씹는다. 고독하고 분열적인 그의 순간들처럼. 그것이 <라스트 데이즈>를 오롯이 즐기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