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챕터로 이뤄진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Worlds Apart, 2015)에서 첫 번째 챕터 ‘부메랑‘은 시리아 난민 남성과 그리스 여성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다프네(니키 바칼리)는 괴한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는데, 시리아 난민 청년 파리스(타우픽 바롬)가 그녀를 구해주고 이후 사랑이 싹트게 된다. 그런데 극도의 제노포비아(Xenophobia, 이방인 혐오증)를 지닌 파시스트 조직의 우두머리인 다프네의 아버지는 폐공항에 모여 살고 있는 난민들을 불법 마약과 무기의 온상이라며 무차별 공격한다. 폴 그린그래스의 <그린존>(2010)에서 묘사된 것처럼, 지난 2003년 대량살상무기 제거라는 거짓된 명분으로 바그다드를 폭격하여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낳았던 미국과 별다를 바 없다. 그렇게 그들은 세계 어디서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안타깝게도 다프네의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으로 딸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데, 챕터 제목 ‘부메랑’은 잘못된 공격의 피해가 그대로 내게 돌아온다는 것의 상징과도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난민들은 지옥 같은 전쟁터를 떠났지만 여전히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운명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의 <주피터스 문>(2017)은 초현실과 결합한다. 뒷돈을 받아 수용소에서 난민을 빼내주던 부패한 의사 스턴(메랍 니니트체)은 부상당한 시리아 난민 소년 아리안(좀보르 예게르)에게 중력을 거슬러 공중부양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능력을 자신의 돈벌이에 이용한다. 이후 소년과 함께하는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헝가리의 현실은 실로 비참하다. 그런 가운데 아리안은 마치 예수와도 같은 표정과 몸짓으로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지 않았던” 부다페스트 사람들에게 안식의 시간과 구원의 기회를 허락한다. 영화에서 슈퍼히어로와도 같은 난민의 행로가 지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반면교사가 된다. 그들은 바로 지금 우리의 ‘생얼’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오프닝 자막에는, 목성의 위성들 중 얼음층 아래 바다가 있다고 추정되는, 즉 생명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위성 유로파에 대한 얘기가 등장한다. 바로 난민들을 ‘새로운 생명체의 발상지’가 될지도 모를 유로파에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작품’으로 난민 얘기를 하자니, 그저 낭만적 이상주의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코르넬 문드루초의 나라이자 동유럽에서 가장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는 헝가리는 최근 난민을 돕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불법 이민자를 지원하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최대 1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하여, 유럽연합(EU)을 향해 반(反)난민정책을 공공연히 표명하고 나섰다. 지금 한국에서도 그 논란이 뜨겁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단일한 사건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최근 몰래카메라 성차별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대학로 시위를 비롯해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였던 장애인들을 향한 조롱과 공격, 그리고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한 배우 정우성에 대한 공격을 보면서, 지난 촛불혁명이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였는지 되묻게 된다. 전에 없던 현대사의 뜨거운 승리를 쟁취한 시민들에게 배제와 혐오의 논리는 왜 더욱 공고해지는 걸까. 대한민국이 진짜 변화의 시험대에 오른 것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배우 정우성은 이번호 <인랑> 표지 모델 중 한명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집에서 ‘특별전: 스타, 배우, 아티스트 정우성’의 주인공으로도 만날 수 있다. 얼굴은 물론 가슴에서도 빛이 나는 배우라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