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 겐타로는 잡지 모델로 활동할 당시 투명하고 깨끗한 소년의 이미지와 남성적 매력을 모두 갖춘 소금남(흰 피부에 쌍꺼풀이 없고 마르고 키가 큰 남자를 일컫는 신조어, 소금의 결정처럼 하얗고 깨끗한 이미지라는 뜻.-편집자)의 대표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2014년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너와 100번째 사랑>(2017), <히로인 실격>(2015), <내 이야기>(2015) 등에서 외모도 마음도 허점 없이 완벽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일본의 대세배우로 떠올랐다. 드라마 <모방범>(2016), <나라타주>(2017)에선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유유히 배신하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고, 한국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시그널>의 일본 리메이크 버전에 출연하며 한국 팬들에게 더 친숙해지기도 했다. 판타지 로맨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흑백 고전영화 속 공주 미유키(아야세 하루카)와 사랑에 빠지는 청년 켄지를 연기했다. 사카구치 겐타로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순애보적 사랑은 호소력이 짙다. 실물을 마주하고 나자 그 호소력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실물. 외모만큼이나 멋진 태도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카구치 겐타로를 만났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가 굉장하다.
=한국 팬들과 소통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내한 행사에 많은 분들이 와줘서 고마웠고 기뻤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정했나.
=영화 속 공주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라는 스토리라인만 들었을 땐 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켄지와 미유키의 사랑에서 진짜 감정을 느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어졌고 켄지가 점점 좋아졌다. 나에게 분명 플러스가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켄지는 미유키 공주만을 생각하는 일편단심의 다정한 남자인데 때론 나약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눈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내가 연기한 캐릭터와 성질이 달랐고,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처럼 판타지가 가미된 영화를 좋아하나? 아니면 리얼리티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선호하나.
=영화에 판타지 요소가 있지만 어느 순간 판타지라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켄지와 미유키의 사랑 이야기에 울림이 컸다. 두 인물의 순수한 사랑에 자꾸만 시선이 갔고 그것이 곧 리얼리티라고 느꼈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나는 판타지보다 리얼리티를 더 선호하는 편인 것 같다.
-켄지는 <너와 100번째 사랑>에서 보여준 순정남의 계보를 잇는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켄지의 순정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했나.
=<너와 100번째 사랑>도 레코드판을 통해 시간을 되돌리는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 로맨스영화인데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라는 점은 비슷한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선 켄지와 미유키가 서로 닿을 수 없다는 설정이 굉장히 슬펐다. 그럼에도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결정한 두 사람의 선택이 용기 있고 대단해 보였다. 켄지가 미유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는 게 결국 리얼리티를 배가하는 방법이라 여겼다. 켄지는 오로지 미유키만을 생각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촬영이 없을 때에도 미유키를 생각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이어가려 했다.
-켄지가 미유키를 사랑하는 방식은 상대방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다. 만약 현실의 사카구치 겐타로라면 영화 속 켄지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시나리오를 읽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도 켄지가 정말 대단하다는 거였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데도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켄지와 미유키는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극복한다. 현실의 나라면… 선택하기가 정말 어렵다.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이 너무 이상적인 것 같아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좋아하는 대상을 바라만 봐야 한다면 오히려 평생 설레지 않을까.
=와~ 멋지다. 그렇다면 정말 싸울 일도 없겠다. 평생 서로를 바라보며 두근거릴 수 있다는 건 정말 로맨틱한 일이다.
-켄지는 필름 영사실에서 혼자 흑백 필름영화를 보는 게 취미인 1960년대 쿄에이 영화사 스튜디오의 조감독이다. 당시의 인물이 되기 위해 준비한 게 있다면.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영사 기사님한테 필름 영사기 작동법을 배웠다. 자칫 잘못 다루면 필름이 쉽게 끊긴다.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게다가 카메라가 켄지의 손을 클로즈업하기 때문에 능숙한 손놀림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또 당시의 영화 조감독은 어땠을까 싶어서 자료와 사진들을 찾아봤다. 영화의 초반 장면을 보면 켄지가 영화 간판도 직접 그리고 미술 일도 하고 선배가 시키는 일은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한다. 비록 허둥지둥대지만 말이다. 신입 조감독이라면 왠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켄지의 모든 움직임에서 묻어나길 바랐다. 그런데 캐릭터를 위해 뭘 준비했냐고 묻는다면, 시나리오를 깊이 이해하고 캐릭터에 완전히 감정이입하는 게 전부였다. 무언가를 따라하기보다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나만의 켄지를 보여주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결의 작품에 출연했고 짧은 기간에 다작을 했다. 작품 선택의 기준이 궁금하다.
=연기를 갓 시작할 땐 온전히 나만의 판단으로 작품을 결정하진 않았다. 지금은 내 이미지를 배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배반하고 바꿔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영화 <나라타주>에서 질투와 집착의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을 때나 드라마 <모방범>에서 악역을 연기했을 때 내가 가진 긍정적인 인상을 배반해서였는지 관객이 놀라기도 했는데 그런 작업들이 즐겁다.
-잡지 <멘즈 논노> 모델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2014년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명확한 이유를 갖고 연기를 한 건 아니었다. 모델과 배우의 일이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모델로서의 재미, 배우로서의 재미는 서로 다르다. 모델은 한장의 사진 안에 모든 걸 담아야 하기 때문에 좀더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연기를 할 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여러 인생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는 즐거운 직업이다.
-모델로서 카메라 앞에 오래 섰으니 자신의 장단점과 매력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 같다.
=모델로 활동할 당시 같이 작업한 에디터에게 들은 말인데, 나보고 어느 세대, 어떤 상대와도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그 당시 전 연령대의 여성지를 모두 촬영했다. 보통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무색에 가까운 얼굴이라 어디에나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게 강점이 아닌가 싶다. 사실 <히로인 실격>에서 보여준 완벽남 역할은 연기할 때 부담스럽기도 했다. 10명이면 10명 각자가 생각하는 완벽남의 기준이 다른데 그 완벽함을 표현해야 했으니까. 캐릭터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면 그것이 악역이어도 좋다. 남녀간의 사랑이든 친구, 가족, 취미에 대한 애정이든 캐릭터 안에 사랑이 존재하고 그 존재 이유가 분명한 역할들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