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라그나로크>의 헬라(케이트 블란쳇), <블랙 팬서>의 킬몽거(마이클 B. 조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 현재 마블엔 히어로만큼이나 매력적인 빌런이 넘쳐난다. 이런 마블에게도 한때 초강력 빌런의 존재감을 먼지처럼 만들어(!) 팬들의 원성을 사던 시절이 있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스러웠던 마블 빌런 다섯을 모았다.
* 해당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플래시는 자신의 아버지를 버린 스타크 가문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빌런이 된 캐릭터다. 아버지가 남긴 설계도를 바탕 삼아 홀로 아크 리액터를 만들고, 자신의 슈트를 제작하는 환상적인 이공계 기술을 지닌 인물. 비상한 두뇌를 지녔으나, 안타깝게도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러닝타임 내내 슈트에 달린 채찍만 휘두르다 사라진 캐릭터로 남았다. 위플래시를 연기한 미키 루크는 입체적인 빌런을 만들기 위해 직접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등 여러 공을 들였다. 정작 완성본에선 그의 분량이 많이 편집되었다고. 후에 미키 루크는 이런 부분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크 엘프들의 수장인 말레키스(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는 오딘(안소니 홉킨스)의 아버지와 상대했던 전설 같은 빌런이었다. 힘의 원천 에테르를 얻고 부활하고자 했던 그의 활약은 다음과 같다. 여왕 프리그(르네 루소)에게 단번에 제압 당하기, 그녀를 비열하게 살해하고 묠니르에 쫓겨 도망가기, 우주선으로 런던 일부 쑥대밭 만들기, 에테르 음미하기, 곧 자기 우주선에 깔려 죽기. 리얼 스톤의 힘을 손안에 넣고서 이렇게 미약한 활약을 보이기도 힘들 것 같다. 분장하는 데만 6시간이 걸렸다는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의 노고는 잊지 말자.
크리 종족 출신인 로난은 인피니티 스톤을 다룰 수 있는 강력한 신체를 지녔다. 타노스(조슈 브롤린)의 밑에서 가모라(조 샐다나), 네뷸라(카렌 길런)에게 무술을 가르쳤을 만큼 싸움 실력도 뛰어나다. 파워 스톤까지 손에 넣은 로난이 MCU의 최강 빌런이 되는 건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망치에 스톤을 박고 제 힘을 과시할 일만 남은 그의 앞날을 망친 건 스타 로드(크리스 프랫)의 막춤. 갑작스러운 댄스 배틀에 넋을 놓은 로난은 단번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에게 파워 스톤을 뺏기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순발력, 집중력의 중요함을 알려주는 좋은 예.
마블엔 유난히 자격지심형 빌런들이 많다. <앤트맨>의 대런 크로스(코리 스톨)도 그중 하나.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에게 인정받지 못한 대런은 어깨너머로 익힌 그의 기술을 바탕으로 수많은 실험 대상을 희생시킨 끝에 옐로우 자켓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직접 슈트를 착용하고 앤트맨에게 맞서던 그. 옐로우 자켓의 액션신은 그의 비장함이 민망해질 정도의 아기자기함을 자랑했다. 모기장에 걸리고, 토마스 기차에 쫓기는 등 몸개그 액션을 아끼지 않던 옐로우 자켓은 결국 제 꾀에 넘어가 자신의 실험 대상들과 같은 최후를 맞았다. 뿌린 대로 거둔 셈.
매즈 미켈슨을 이렇게 낭비하기도 쉽지 않다. <닥터 스트레인지> 속 케실리우스는 다크 디멘션의 힘을 얻기 위해 스승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을 배신하고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위협을 가하는 인물이다. 분명히 닥터 스트레인지보다 더 오랜 세월 수련을 거쳤을 텐데, 액션 신을 보다 보면 실력에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곤장 맞는 자세로 쇠사슬에 묶여있던 장면은 MCU 빌런 사상 역대급 굴욕의 순간으로 손꼽힐만하다. 케실리우스는 별다른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휘어잡은 쾌감도 느끼지 못한 채 도르마무에게 끌려가버리고 말았다. 역대급 빌런을 탄생시킬 배우를 이렇게 떠나보낸다는 게 아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