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멋과 낭만을 아는 사람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서정주 시인의 수필 <석남꽃>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수필의 한 대목에서 노랫말을 딴 뒤 <소연가>라는 노래를 직접 작곡했다(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작곡한 이 노래를 한번 부른 적 있다). 1년 개봉작을 몽땅 챙겨볼 만큼 지독한 영화광으로도 유명했다. 진보신당 대표 시절이었던 2009년, <씨네21>이 마련한 장항준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코언 형제 영화가 개봉하면 무조건 극장에 달려갔고, <젊은이의 양지>에 출연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특히 좋아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시 <씨네21>이 진행한 시네마테크 후원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그는 “산업적 가치를 입증하지 않는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공적인 비용을 지불하여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역할 아닌가”라며 “우리가 민간 비영리로 운영되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관심을 갖고 후원하는 것은, 예술은 가난 속에서 나온다고 굳건히 믿는 정부에 대한 저항이자 시대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 부유한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첼로를 배웠던 그는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고 말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말했던 정치인 대부분과 달랐다. 1997년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이란 제목의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진보정치의 아이콘,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문화예술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7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 원내대표의 발인은 7월 27일이다. 이 날 오전 10시 국회 영결식이 국회 분수대 앞 잔디밭에서 진행된다. 언제나 서민의 언어로 권력과 맞섰던 그가 오래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