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과 더불어 쌍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신과 함께-인과 연>은 전편에 비해 삼차사들의 캐릭터에 보다 집중했다. 천년 전 과거, 그들이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지를 조명했다. 그중, 해원맥(주지훈)은 유독 강한 존재감을 뽐냈다. 말 많고 장난스럽던 해원맥에 비해 고려 시대 최고의 무신이었던 그의 과거는 무겁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천년 전 해원맥은 여진족으로부터 고려를 지키는 북방의 장군이었다. 그는 일명 '하얀 삵'으로 불리며 여진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여진족이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죽이는 그의 잔혹한 모습에 여진족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다만 이런 캐릭터 설정에 비해 해원맥이 검술을 선보이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영화는 주로 그의 감정선에 집중했다.
그의 따듯한 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부분도 좋았지만, 설정에 걸맞은 해원맥의 화려한 액션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그렇다면 국내 사극 영화 속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 검객 캐릭터는 누가 있을까. <신과 함께-인과 연>의 아쉬움을 달래 보기 위해, 해원맥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을 모아봤다.
<군도:민란의 시대>
도치(하정우) / 대호(이성민) / 조윤(강동원)그 첫 번째 후보는 윤종빈 감독의 사극 액션 활극 <군도:민란의 시대>의 도치(하정우)다. 그는 가족을 죽게 만든 최고의 무신, 조윤(강동원)에게 복수의 칼을 가는 인물이다. 그는 극 초반 조윤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의적단 '군도'에 의해 구해진다. 이후 군도의 일원이 되어 조윤의 목숨을 노린다. 도치는 고기를 자를 때 쓰는 식칼을 양손에 쥐고 싸운다. 그 모습은 잘 훈련된 검객보다는 저잣거리 싸움꾼 같아 보인다. 하지만 복수를 위해 피나는 수련을 거듭한 결과, 두 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군도 일당의 수장 격 인물인 대호(이성민). 근엄하지만 구수한 사투리로 작전을 진두지휘하던 그는 수장다운 묵직한 검술 액션도 선보인다. 자신의 키만 한 대검을 사용하는 그는 '벤다'보다는 '부순다'에 가까운 검술을 구사한다. 거대한 돌덩이를 단칼에 박살 내기도 한다. 무술뿐 아니라 리더로서의 자질도 훌륭한 인물이며,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조윤과 일기토를 벌이다 사망한다.
백성의 적, 조윤은 영화 속 악역을 담당하고 있지만 사실상 주인공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서자 출신으로, 어릴 적 정실부인의 태생인 이복동생에게 밀려 아버지에게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며 자랐다. 이후 19살의 어린 나이에 무과에 급제, 조선 최고의 검객으로 성장한다. 그는 동생이 죽인 뒤, 가문을 차지하기 위해 동생의 아이마저 죽이려 하는 잔혹한 인물이다.
최고의 무신이란 설정답게 그는 곡예에 가까운 검술을 보여준다. 혼자서 군도 일당을 모두 일망타진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차를 자랑한다. 그는 한 손에 아기를 안고도 도치와 호각을 다투지만, 결국 아기를 지키기 위해 목을 내놓는다. 그는 처음에는 아이를 죽이려 했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 순수한 아이의 모습 등으로 점점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영화의 명대사로도 꼽히는 "더러운 땅에 연꽃이 피어오르는 것은 신의 뜻인가, 연꽃의 의지인가"라는 조윤의 말에서는 복잡한 그의 심경이 느껴진다.
<협녀, 칼의 기억>
유백(이병헌) / 홍이(김고은) / 월소(전도연)개연성 없는 스토리, 어색한 CG 등으로 많은 혹평을 받은 <협녀, 칼의 기억>.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검술의 달인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유백(이병헌)은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그는 뜻을 이루기 위해 상관을 배신하고 장군의 자리에 오른다. 비록 극 초반에는 상관에게 패배하는 등 다소 약하게 묘사되지만 이후 장군이 된 그는 영화의 중심 악역 다운 실력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그런 유백에게 미친 듯이 달려드는 인물이 홍이(김고은)다. 그녀는 유백의 전 연인, 월소(전도연)에게 거둬져 검술을 연마한다. 이후 무턱대고 유백에게 덤벼들지만 패배하여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월소의 스승에게 구해져 다시금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다. 복수에 사로잡힌 그녀는 '칠전팔기'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검술의 달인으로 성장한다.
유백, 홍이 모두 검술의 달인으로 등장하지만 영화 속 최고의 고수는 월소이지 않을까. 그녀는 죽을 위기에 처한 유백을 구해주기도 했으며, 홍이에게 검술을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백, 홍이가 권력, 복수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검을 휘두른다면 그녀는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월소는 영화 속 주요 반전을 쥔 인물이기도 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황정민(황정학) / 이몽학(차승원)일본의 유명 캐릭터 '자토이치'를 떠오르게 하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맹인 검객 황정학(황정민). 그는 한때는 동료였지만 야망에 눈이 멀어버린 이몽학(차승원)을 막으려 한다. 황정학은 평상시에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지팡이 속에 숨겨진 검을 뽑았을 때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웃음과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캐릭터였다. 숨을 거두기 직전, 멀어 버린 두 눈을 뜨며 이몽학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강한 여운을 남겼다.
임진왜란, 백성을 버리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바쁜 조정을 향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이몽학. 그는 오로지 신념에만 사로잡혀 수단과 방법 따윈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면 상관, 부하할 것 없이 모조리 죽인다. 곧은 신념만큼 그는 검술에서도 상대할 자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준다. 이몽학은 화려한 기술은 없지만 적이라 생각된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내리치는 현실적인 액션을 선사한다.
<형사 Duelist>
슬픈 눈(강동원) / 남순(하지원)그렇다. 또 강동원이다. 하지만 긴 생머리 뽐내며 아름다운 검술을 보여줄 사극 캐릭터로는 그만한 배우가 없어 보인다. 미장센의 대가, 이명세 감독의 퓨전 사극 <형사 Duelist>에서 강동원이 맡은 '슬픈 눈'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가짜 화폐 유통 사건'의 핵심을 쥔 인물로 가면을 쓴 채 활동하는 자객이다. 그는 기다란 검을 사용하며 마치 발레같이 우아한 몸놀림의 액션을 자랑했다.
슬픈 눈과 함께 춤에 가까운 아름다운 검술 액션을 선보이는 캐릭터가 그를 쫓는 형사, 남순(하지원)이다. 그녀는 슬픈 눈과 반대로 짧은 단도 두 자루로 그를 상대하며, 짧고 경쾌한 현대 무용 같은 액션을 구사한다. 슬픈 눈, 남순은 남성, 여성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서로 정 반대되는 이미지의 액션을 보여줬다. 마지막 둘의 결투 장면은 싸움이 아닌 함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천>
이곽(정우성)어색한 CG, 유치한 스토리로 많은 혹평을 받았지만 <신과 함께> 이전, 처음으로 대규모 CG가 사용된 영화 <중천>. 이곽(정우성)은 <중천>에 등장하는 퇴마 무사다. 자신을 대신해 죽은 연인, 소화(김태희)을 잊지 못하던 그는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 뒤 다시 소화를 만난다. 그녀는 이곽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원귀들의 표적이 된 그녀를 구하려 한다. 이곽은 판타지 세계의 인물답게 이미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무공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 후반 부에서 그는 삼만 명의 원귀들을 혼자 상대하기도 한다.
화려한 검술 액션을 선보인 캐릭터들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한다면 다른 사극 영화 속 인물들이 꿈에 나와 "어찌 검술 실력만으로 최고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불호령을 할 것 같아, 추가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줬던 사극 캐릭터들을 가져와봤다.<명량>
이순신(최민식)추가 캐릭터 소개는 이 분의 영향이 크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 최민식이 연기한 <명량>의 이순신은 일본 군을 베어내는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진 않는다. 영화는 그보다 이순신의 내면과 갈등에 더 집중했다. 강인할 것만 같던 그의 부담감, 두려움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이후 스펙터클한 해상 전투 신과 함께 죽을 각오로 싸우는 이순신을 결연한 모습을 그려냈다. 검술 실력보다 강인한 이순신 장군의 정신력을 보여준 <명량>은 국내 최고의 흥행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도부장(김인권)또 다른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왕의 곁을 지키는 호위무사 도부장(김인권). 그는 궁의 법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고지식한 인물로, 극 중 유일하게 눈썰미만으로 하선(이병헌)이 가짜라는 것을 눈치채기도 한다. 그런 진중한 성격과 반대로 하선의 말에 완벽히 속아넘어가는 등 코믹한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의 마지막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남한산성>
이시백(박희순)인물들 간의 다른 가치관을 훌륭히 그려내며 사극판 설전의 진수를 보여준 <남한산성>. 그들이 말의 전쟁을 펼치는 가운데, 이시백(박희순)은 홀로 묵묵히 몸으로 청의 군대를 막아낸다. 그는 전투에서 패배한 책임으로 사형을 받은 부하 대신 자신을 죽여달라 간청하는 등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죽은 부하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따듯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스스로는 일개 무사에 불과하다는 겸손과 왕을 향한 충성심마저 갖춘 인물이니 이쯤 되면 진정한 리더의 표본이라 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