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영화인이 된 것 같아요!” 배우 이봄이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오랫동안 꿈꿔왔다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과연 그녀가 <죄 많은 소녀>의 다솜을 연기한 배우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솜은 주인공 영희(전여빈)를 심적으로 가장 압박하면서도 어떨 땐 먼저 나서서 친구를 위로하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얄미운 면모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이제 막 자기 몸에 맞는 연기색을 찾아나가기 시작한 그녀에게 <죄 많은 소녀>는 부담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준 영화였음이 틀림없다.
-<죄 많은 소녀> 오디션 현장이 어땠는지 기억하나.
=회사에서 오디션을 잡아줘서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다. 4번 정도 읽어 보고 갔는데 오디션장에서 감독님이 궁금한 점이 없냐고 물으시기에 ‘립스틱 바르는 장면이 강조되는 느낌이 들던데 거짓말 같은 의미를 두셨냐?’고 묻기도 했다. 당시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있었는데 시나리오에서도 그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지금 생각났는데 캐스팅되고 다솜의 시나리오 분량이 처음보다 좀 늘어났다.
-어떤 장면이 추가됐나.
=처음 시나리오와 캐릭터 사이의 힘의 균형 같은 게 달라졌다고 감독님이 말씀해주신 기억이 난다. 원래는 다솜이 맡을 역할이 아니었는데 내가 연기하게 된 장면이 많았다.
-다솜을 연기하면서 그녀가 어떤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태세 전환이 빠르고 눈치도 빠른 친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솜을 그저 악역이라고 규정짓지 않게끔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 미세한 뉘앙스를 어떻게 표현할지 장면마다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표현방법을 고민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아도 다솜의 감정 흐름을 계속 상상하고 있었다.
-연기하는 데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무엇이었나.
=다솜의 첫 등장 장면이다.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영희를 붙잡고 “너 아니지?”라고 말하는데 그 대사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극중 다솜이 하는 말이 진심이 없다. 거짓말이거나 상대방을 떠보려고 하는 말이거나. 그런 미세한 뉘앙스의 톤을 잡는 게 어려웠다. 감독님이 연기할 때 확신을 갖지 말고 했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촬영 당시에는 ‘아니, 배우가 확신을 갖고 연기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돌아보면 스스로 옳은 연기라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게 정답 같다.
-동년배의 동성 배우들과 고등학생을 연기하니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겠다.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예전 생활이 떠오르지 않아 주변 학생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웃음) 헤어스타일도 그들처럼 바꾸고 고등학생 때 실제로 등교하면서 가지고 다녔던 소품을 촬영장에서도 지니고 다녔다. 머리빗이랑 헤어롤, 간식 등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녔다.
-2003년 <선생 김봉두>에서 아역으로 데뷔한 뒤 <소녀괴담>을 찍기까지 무려 10년 넘게 공백 상태였다.
=어릴 때 TV를 좋아하는 할머니께 잘 보이고 싶어서 엄마한테 연기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4개월쯤 다니다가 오디션을 봐서 <선생 김봉두>에 합격했다. 이후 예고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선생 김봉두>의 장규성 감독님이 친구들과 학창 시절을 보낸 뒤에 대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하는 건 어떠냐고 조언을 해주셨다.
-배우 이봄에게 <죄 많은 소녀>는 어떤 영화였나.
=전환점이 됐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어야 할지, 목표를 갖게 해줬다. 영화를 찍고 나서 1년 후에 영화제에 초청되어 관객과 만났고 또 1년 후에 개봉을 앞두게 됐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화 찍는 게 마냥 좋아서 들떠 있던 내 모습이 죄송스럽다. 감독님과 제작진이 고생해서 만든 영화인데 나도 그만큼 노력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죄 많은 소녀> 이후에 단편영화 촬영도 많이 쫓아다녔다. 영화 촬영장에서 공동으로 모두 함께하는 그 기운이 너무 좋다. 그리고 운동선수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몸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씨네21> 인터뷰처럼 언젠가 이뤄지겠지? (웃음)
영화 2017 <죄 많은 소녀> 2017 <컴, 투게더> 2016 <우리 손자 베스트> 2015 <시간이탈자> 2015 <뷰티 인사이드> 2014 <어우동: 주인 없는 꽃> 2014 <소녀괴담> 2003 <선생 김봉두> TV 2017 <란제리 소녀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