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300만엔. 84석 단관 개봉 후 입소문으로 관객수 100만명 돌파. 일본 독립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하나의 숏으로 좀비영화를, 그것도 TV생중계로 방송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받은 이들의 이야기다. 37분간 이어지는 롱테이크로 촬영한 영화 속 영화 <원 컷 오브 더 데드>의 미심쩍은 완성도를 먼저 접한 관객은, 그 내막을 보여주는 나머지 파트에서 포복절도하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한국을 찾은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과 만나 이 기상천외한 호러코미디에 대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독·배우양성스쿨과 ENBU세미나에서 신인감독과 배우들이 모여 워크숍 형태로 영화를 만드는 ENBU시네마프로젝트의 7번째 작품이다.
=원 테이크로 찍은 영화를 먼저 보여준 후 나중에 그 비하인드를 보여준다는 설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인터넷에 모집 공고를 올린 후 12명의 배우를 선발했다. 서툰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하나의 시련을 뛰어넘고 극복하는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실제로도 처세술이 뛰어나지 않은 ‘서툰 사람들’을 일부러 뽑았다. 배우들의 성격을 파악한 후 그에 맞게 세세한 전개를 만들어가며 각본 작업을 진행했다.
-등장인물들이 만드는 작품을 ‘좀비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좀비 메이크업 등 특수분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신체 부위 등 여러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백스테이지에서는 이런 요소가 코미디로 승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피가 확 튄다든지 목이 날아다니는 좀비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오히려 상당히 즐겁게 작업한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마치 학생들 같더라. 영화 만들기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장르라고 봤다.
-특별히 참고한 작품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초반 37분은 다양한 좀비영화에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코드들, 가령 살아남은 연인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거나 정말 무서운 존재는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기존에 봤던 좀비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87분의 러닝타임을 하나의 숏으로 찍은 우루과이 호러영화 <사일런트 하우스>(2010), 카메라맨의 시점숏으로 찍은 <R.E.C>를 일부러 다시 봤다. 이후에 제작된 좀비영화의 규칙을 만들었다고 일컬어지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은 상당히 많이, 여러 번 감상했다.
-‘진짜’ 스탭이 영화에서 노출되지 않는다. 극중 스탭들은 어설픈 실수를 남발하지만 실제 현장은 통제가 완벽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웃음) 어느 정도 연습 기간을 거쳤나.
=초반 좀비영화 부분은 회의실을 빌려서 7~8번 반복하며 연습했다. 실제 촬영을 했던 폐공장에서 현장 리허설만 진행한 날도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찍은 영상을 다같이 모니터링하며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 의견을 공유했다. 원컷 분량 촬영은 정확하게 1.5일 걸렸고, 테이크는 6번, 그중 끝까지 진행된 것은 4번이다. 영화에 쓰인 것은 여섯 번째 테이크다.
-각본에 예정되지 않은 실제 트러블도 있었을 것 같다. 가령 카메라에 피가 튀어서 닦는 부분은 실제 상황 같았다.
=와, 예리하다. (웃음) 그건 사전에 계산되지 않은 부분이 맞다. 좀비 메이크업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15~20초 정도 지연되자 배우들이 애드리브로 연결한 부분도 있다.
-장편영화를 제작비 300만엔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어떻게 가능했나.
=이번 작품은 신인 감독과 배우들이 사전에 찬성해서 참여하는 워크숍이다 보니 출연료가 들지 않았다. 로케이션을 했던 폐공장도 운좋게 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시의 소유물이다 보니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짜로 빌려줬기 때문이다. 피투성이가 된 의상은 내가 직접 가게에서 옷을 사와 베란다에서 피 뿌리고 자르고 태우고 불로 지지며 작업한 거다. 주인공이 사는 집은 실제 우리 집이고, 대본 리딩 현장에 나타난 갓난아기는 실제 내 아이다. 공짜로 쓸 수 있는 건 다 가져와서 활용했다. (웃음)
-후반부 인간 피라미드 장면도 와이어를 쓰지 않았다.
=우리가 예산이 넉넉했다면 와이어를 활용했겠지만, 그게 아니니 직접 몸으로 만들어야 했다. 촬영 당일까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신참 AD가 자꾸 쓰러져서 배우가 대신 밑에서 받쳐주는 것은 실제 상황이었다. 막판까지 피라미드 만들기에 실패해서 아예 스토리를 바꾼 것이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15초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영화에 실렸다. 균형을 잡느라고 워낙 죽을힘을 다하다 보니 배우들이 연기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웃음) 그 부분은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일본에 감염자(感染者)라고 불리는 영화 팬들도 있다고 들었다.
=영화를 보고 작품의 팬이 된 분들을 제작진이나 관객, 미디어에서 그렇게 지칭하더라. 영화를 2~3번, 심지어 20~30번씩 봤다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굿즈도 많이 제작하더라. 오늘 입고 온 티셔츠도 팬이 제작해준, 세상에 딱 한장만 있는 옷이다.
-중학생 때부터 캠코더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고.
=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영화전문학교를 간 적도, 조감독을 거친 경험도 없다. 독학으로 연출 공부를 하며 독립영화를 8편 정도 만들었는데, 그때 경험했던 것들이 영화에 어느 정도 투영됐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프로듀서, 제멋대로인 배우 캐릭터라든지 눈물 연기를 할 때 안약으로 대체하자는 말도 내가 실제로 들었던 내용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는 힘들어도 웃음과 열정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기운이 녹아있다. 실제로도 그런 애티튜드로 일을 해온 편인가.
=일본 독립영화에도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둡게 그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밝은 코미디를 많이 만들었다.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태도다. 20대 초반에 상당한 실패가 이어졌는데, 그 실패담을 블로그에 재미있게 적으니 읽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발견했다. 내게는 비극일 수 있으나 시점을 달리해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재미있게 비쳐진다. 또한 주변에 있다면 정말 짜증나는 PD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익살스럽거나 귀엽게 보일 수도 있지 않나. 가급적 세상을 희극적으로 바꾸어서 보고자 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영화 만들기란 다같이 힘을 합쳐 시련을 뛰어넘는 과정이니까.
-일본에서 관객수 100만명을 돌파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마 차기작은 지금보다 큰 규모로 찍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처럼 자유롭게 찍을 수는 없지 않을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단 한번만 존재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300만엔 규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규모 예산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다. 무명배우들, 적은 수의 스탭들과 작업하면 표현의 자유도가 상당히 올라가고, 작업방식이 유연해진다. 사전에 준비를 면밀히 해서 예산이 큰 대작도 만들어보고 싶다. 할리우드에는 시간여행 영화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스파이 장르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팀 강탈 무비는 <오션스> 시리즈 등 대표작이 있는데 일본에는 이거다 싶은 작품이 없다. 오락영화 각 분야에서 왕도가 될 만한 대표작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중규모와 대작, 양쪽을 모두 왔다갔다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