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경 스튜디오N 대표, “웹툰의 영상화, 비즈니스 크기를 키우는 게 우선 목표다”
2018-09-13
글 : 김성훈 | 사진 : 최성열 |
권미경 스튜디오N 대표, “웹툰의 영상화, 비즈니스 크기를 키우는 게 우선 목표다”

네이버 웹툰이 지난 8월 브리지 컴퍼니인 스튜디오N을 설립해 영화·드라마·웹드라마 등 콘텐츠 비즈니스 산업에 뛰어든 건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다. 적지 않은 웹툰 영화화 판권(IP)을 판매해왔고, 전세계적으로 IP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까닭에 자사의 IP를 직접 개발해 다른 제작사와 함께 공동 제작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건은 누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다. 다른 매체로 확장이 가능한 IP를 골라낼 줄 아는 감식안이 필요하고, 콘텐츠 비즈니스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며, 산업 내 네트워크가 풍부해야 하는데 권미경 전 CJ E&M 영화사업부문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이 스튜디오N을 이끌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만한 적임자가 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 일을 하다가 2006년 CJ엔터테인먼트로 이직해 해외영화 마케팅 업무를 맡았고, CJ E&M 통합법인이 출범하면서 한국영화 마케팅팀장이 되었으며, 이후 월트디즈니코리아로 옮겨 할리우드영화의 국내 마케팅을 책임지다가 2014년 다시 CJ E&M으로 돌아와 투자·배급 사업을 했던 그다. 올해 초 CJ를 나와 휴식을 취하던 그가 스튜디오N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게 된 사연이 무엇일까.



-얼굴이 좋아 보인다.



=사진 찍는다고 해서 비비크림을 발랐다.



-CJ를 나오고 난 뒤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때도 재미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네이버 웹툰이 가지고 있는 IP를 직접 기획·개발해 다른 제작사와 함께 공동 제작하는 사업을 구상한 배경이 궁금하다.



=네이버 웹툰이 2천여개에 달하는 IP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에 판권을 판매한 뒤 그 판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권을 판매했지만 진행이 멈춘 경우도, 제작사가 판권을 또 다른 회사에 다시 파는 경우도 있었다. 네이버 웹툰이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는 과정에서 IP를 판매하는 데 그치는 건 다소 소모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CJ를 나온 뒤 몇년은 쉴 줄 알았는데. (웃음)



=나도 그러려고 나왔다. 김준구 네이버 웹툰 대표가 편하게 식사하는 자리에서 ‘IP는 많은데 모두 개발할 수 없고, 기획·개발 작업 또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고민을 털어놓기에 ‘다른 제작사와 공동 제작을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얼마 뒤 김 대표가 ‘그걸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스튜디오N 사업을 제안해왔다. 산업 바깥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반면 산업 내부는 그만큼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평소 느끼던 차였다. 또 다른 인생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스튜디오N을 차리게 됐다.



-스튜디오N을 시작하면서 산업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나.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콘텐츠 비즈니스와 관련된 모든 시도를 하고 싶다.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웹드라마, 지금은 거의 없어진 시트콤도 개발하고 싶다. 웹툰 판권을 구매하고 싶지만 돈이 없거나 판권을 구매해도 기획·개발할 여력이 없는 제작사들이 많은데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되면 그 부담감이 줄어들게 될 거다. IP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만큼 재능 있는 시나리오작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



-사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공부한 웹툰은 어떤 매력이 있던가.



=만화책 세대라 그런지 평소 웹툰이 깊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가끔 영화화 아이템으로 논의하는 자리에 올라왔을 때 검토하는 정도였다. 회사를 설립하기 전에 웹툰을 제대로 공부해보니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고 상상력의 한계가 없더라. 가령 주인공이 서울에서 알래스카로 가는 이야기가 있다면 영화에선 ‘알래스카까지 가서 찍을 돈이 어디 있어, 그냥 부산으로 가는 설정으로 바꾸자’고 할텐데 웹툰은 알래스카로 갈 수 있고,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저승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할 수 있는 매체더라. 풍부한 상상력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점에서 깜짝 놀랐다.



-이 많은 IP를 당장은 영화나 드라마로 개발할 거라고 들었다.



=영화산업 출신이고 현재 드라마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으니 사업 초반에는 영화와 드라마 중심으로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 <나쁜 녀석들> 시리즈가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가제)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영화와 드라마를 이종 결합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관객이나 시청자는 드라마냐, 영화냐, 한국영화냐, 외화냐 같은 구분을 하지 않는다. 콘텐츠가 얼마나 재미있는가가 중요하다.



-네이버 웹툰이 스튜디오N을 통해 이런 시도를 하는 건 IP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큰돈이 되지 않으니 직접 기획·개발해 시장을 학습하고 더 많은 지분을 챙기기 위한 목적도 있나.



=아니다, 이야기가 너무 나갔다. 큰돈을 벌 생각을 했다면 2천여개의 IP를 전부 직접 제작하면 된다. 회사 설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작자들로부터 ‘그렇게 많은 IP를 직접 하면 되지 왜 그걸 다른 데와 공동 제작하냐’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 많은 IP를 모두 개발할 수 없다. 그리고 네이버 웹툰이 IP들을 가지고 얼마를 벌어내라고 수익을 따졌다면 이 회사에 안 왔을 거다. 오히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콘텐츠 비즈니스의 (시장 혹은 파이) 크기를 키우는 게 우리의 목적이자 목표다.



-스튜디오N이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되면 자금력을 갖춘 거대 제작사 몇 군데를 제외하고 자체적으로 돈을 들여 기획·개발하려는 제작사는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콘텐츠가 네이버 웹툰만 있다면 그런 가정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제작사가 워낙 많고, 저마다 웹툰뿐만 아니라 외국영화 영화화 판권, 오리지널 시나리오, 실화, 논픽션 등 다양한 아이템들을 가지고 기획·개발하고 있는 까닭에 기획·개발 시도 자체가 줄어들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기획 PD가 있거나 기획·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제작사는 극히 일부고, 우리와 함께 웹툰 아이템을 인큐베이팅하는 걸 환영하는 제작사들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스튜디오N으로선 제작 진행에 특화된 프로덕션 하우스가 절실할 것 같은데.



=그것 또한 케이스마다 다를 것 같다. 공동 제작사가 단순한 프로덕션 하우스일 수 있고, 웹툰의 큰 설정만 따르되 나머지는 전부 다 각색할 수도 있다. 또 배우가 어떤 웹툰을 봤는데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어 우리쪽에 공동 개발을 역제안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마다 공동 제작 조건이 다르니, 우리는 셋업이 따로 없고 일한 만큼 가져가는 게 원칙이다.



-결국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계약이 꼬여 있지 않고 되게 심플하다. “웹툰 재미있게 봤어, 시나리오로 만들어줘”라고 얘기하는 제작자도 있고, “우리가 작가를 데리고 있으니 IP만 넘기면 직접 해볼게”라고 얘기하는 제작자도 있다. 또 감독이 IP를 의뢰해서 시나리오로 개발한 뒤 직접 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튜디오N 사업을 한다고 하니 주변 영화인들이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



=외양에 신경쓰기보다 우리 의도대로 사업을 잘 세팅해야 후발 주자들이 잘 따라올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 또한 공동 제작사이기도 해서 투자·배급사와 일을 해야 된다. 사실 여러 투자·배급사로부터 우리가 가진 웹툰을 먼저 보여줄 수 있는 내용(퍼스트룩)이 포함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제안을 받았는데 우리가 기획개발비가 없는 게 아니라서 특정 회사와 손잡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영화계의 구원자처럼 비치는 것보다는 다양한 투자·배급사와 일하면서 산업의 작은 부분에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다.



-네이버 웹툰은 초기 자본금으로 스튜디오N에 얼마를 투자했나.



=매년 네이버 웹툰으로부터 타쓰는 방식이라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얘기하는 건 그렇다. 기획·개발비가 부족해 원하는 프로젝트를 개발하지 못하진 않을 것 같다(네이버는 네이버 웹툰에 올해 초 600억원 출자한 데 이어 지난 6월 초 또다시 1500억원을 출자했다.-편집자).



-회사를 설립한 지 한달도 안 된 지금, 어디와 무엇을 개발하고 있나.



=지난 8월 초에 론칭해 웹툰 4~5개를 (영화나 드라마로) 개발하고 있다. 신생 법인이라 계약서 초안을 준비하고 있어 도장을 아직 안 찍어 무슨 작품인지 밝힐 순 없다. 어쨌거나 옷이 가득 들어 있는 옷장 하나를 선물받았는데 몇벌만 꺼냈을 뿐 나머지 95%는 어떤 옷이 얼마나 있는지 아직 파악이 안 됐다.



-무슨 옷이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 업무겠다.



=올해는 옷장을 뒤지는 게 목표다. 옷을 전부 꺼낸 뒤 진행을 시작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시간적인 한계가 있으니 뭐든지 꺼내보고 예쁘면 곧바로 진행할 생각이다. 기장만 자를지, 대대적으로 수선할지는 꺼내보고 판단하려고 한다. IP 모두 혼자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파트너가 받아줘야 진행이 가능한 까닭에 구체적으로 어떤 로드맵이 그려질지는 좀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지금부터 시작하면 내후년에 개봉할 것 같고, 드라마는 생각보다 좀더 빨리 진행될 것 같다. 방송국 PD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IP도 있고. 어쨌거나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같은 콘텐츠를 시도해보고 싶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자면, 올해 초 CJ에서 나오자마자 어떤 시간을 보냈나.



=캠핑카를 사서 함께 살고 있는 대형견 두 마리와 제부도, 전북 오수, 강원도 인제 등 여러 곳을 여행다녔다.



-당시 충무로에서 거취와 관련된 설들이 많았는데.



=주변 영화인들로부터 ‘너 거기로 간다며’, ‘언제부터 출근이야’라고 물어보는 항의 문자가 많이 와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소문들을 들으면서 권미경이 열명인 줄 알았다. (웃음)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광고회사 농심기획으로 취직한 이력이 재미있다.



=이과생이었는데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대학을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우리 세대 때 연극영화과에 대한 부모님의 생각이 단호하셨다. 그래서 물리학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해 광고 동아리에 들었다. 졸업할 때쯤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과생은 광고대행사 지원 대상이 아니었는데 신생 회사였던 농심 기획은 전공 불문이라 가까스로 지원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이 무척 모범적이었던 것 같다.



=꼭 그렇지도 않았다. 고등학생 때 교외 활동으로 MBC에서 리포터를 했었다. 축제 때 남고와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날라리였다. (웃음)



-농심기획과 광고대행사 웰콤에선 어떤 광고를 선보였나.



=당시 최고의 아이돌 그룹 SES와 새우깡 광고를 찍었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가요~.” 웰콤에선 최민식 선배가 친구에게 가수 김수철씨의 <젊은 그대>를 불러주며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교보생명 광고를 선보였는데 그해 광고 대상을 받았다. 그 광고를 당시 CF감독으로 활동했던 박광현 감독이 찍었고, 최민식 선배의 친구 역할로 뒷모습만 출연한 배우가 박희순씨였다. 정우성씨가 나온 지오다노 광고를 한 덕에 그때부터 정우성씨를 알고 지냈다. 남편도 광고 일을 하면서 만났다.



-광고 일을 하다가 CJ엔터테인먼트로 이직하게 된 이유가 뭔가.



=광고 일도 재미있었다.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영화를 안 한 게 후회가 되더라. 2005년 추석 때 아직 미혼이니 어릴 때 꿈꿨던 영화 일에 도전해보자 싶었다. 그해 12월 CJ엔터테인먼트가 광고대행사 출신을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했고, 파라마운트가 CJ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던 2006년 3월 입사해 해외마케팅 일을 시작했다.



-이후 CJ엔터테인먼트와 직배사 디즈니를 오갔는데 되돌아보면 두 회사에서 보낸 생활은 어땠나.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이 배웠다. CJ라는 회사가 가진 경영 철학도 깊이 공감했고, 콘텐츠에 대한 생각이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지금 내 자양분은 CJ엔터테인먼트에서 생활하면서 쌓은 것들이다.



-그동안 월급쟁이로 살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책임지고 결정하는 자리에 올랐는데 어떤가.



=좀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우리 회사 모토가 ‘재미있게 일하자, 재미없으면 하지 말자’다. 우리가 재미없으면 남들도 재미없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