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부터 9월 8일까지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로마>를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에게 돌아갔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는 톱스타와 유명 감독들의 신작이 대거 공개된 프로그램 구성으로 평론가들과 대중의 환호를 받았다. 또 하나의 대형 영화제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영화광들의 시선을 독차지했으니, 바로 9월 6일부터 9월 16일까지 개최된 토론토국제영화제다.
토론토국제영화제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만큼이나 주요한 행사로 손꼽힌다. <노예 12년>, <룸>, <라라랜드>, <쓰리 빌보드> 등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눈여겨보면 이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의 연관성이 얼마나 짙은지 알 수 있다.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뿐만 아니라, 베니스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궜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퍼스트맨>, 브래들리 쿠퍼의 연출 데뷔작 <스타 이즈 본>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 역시 토론토국제영화제의 부름을 받았다. 할리우드에서 눈여겨볼만한 작품들이 한 데 모인 이 자리. <콜라이더>, <인디와이어> 등 해외 매체들이 선정한 리스트를 바탕으로,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들을 정리해봤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영화부터 순서대로 나열했다.
위도우즈
감독 스티브 맥퀸 | 출연 비올라 데이비스, 엘리자베스 데비키, 미셸 로드리게즈, 신시아 에리보
네 명의 여성들이 뭉친다. 범죄자 신분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들이 남긴 빚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남편이 못다 한 일을 완수하고,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나간다. 1983년 영국 ITV에서 방영한 동명 드라마가 원작. 콜린 파렐, 리암 니슨 등 대형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이들은 조연에 그칠 뿐, 비올라 데이비스를 비롯한 여성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노예 12년>을 연출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신작. 소설 <나를 찾아줘>의 작가 길리언 플린이 스티브 맥퀸과 함께 각본을 썼다.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
감독 베리 젠킨스 | 출연 키키 레인, 스테판 제임스, 데이빗 프랭코
<문라이트>로 세상을 깜짝 놀래킨 베리 젠킨스 감독의 신작. 1974년 출판된 제임스 볼드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는 뉴욕 할렘가에 거주하는 여성 티시(키키 레인)가 인종차별주의자 경찰에게 휘말린 남편 포니(스테판 제임스)의 무죄를 입증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문라이트> 못지않은 색감과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 신예 키키 레인과 스테판 제임스의 활약 역시 주목할만하다. 데이빗 프랭코, 페드로 파스칼, 디에고 루나도 함께 출연한다.
뷰티풀 보이
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 | 출연 스티브 카렐, 티모시 샬라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뷰티풀 보이’, 티모시 샬라메의 신작.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셰프와 그의 아들 닉 셰프가 쓴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뷰티풀 보이>는 약물 중독으로 벗어나려는 소년을 조명한 작품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약물 중독에 빠진 소년 닉 셰프를, 스티브 카렐이 그를 보살피는 아버지 데이빗 셰프를 연기한다. 굴곡진 스토리보단 끊임없이 약물과 사투를 벌이는 닉 셰프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 작품. 티모시 샬라메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이 라이프
감독 클레어 드니 | 출연 로버트 패틴슨, 미아 고스, 줄리엣 비노쉬
올해 상반기 <렛 더 션샤인 인>으로 극장가를 찾은 클레어 드니 감독은 곧바로 자신의 첫 영어 영화 <하이 라이프>를 공개하며 토론토의 문을 두드렸다. <하이 라이프>는 인간 복제 실험의 대상이 된 범죄자들이 우주에서 미션을 수행하다 겪는 고난을 담았다. 로버트 패틴슨이 범죄자 중 한 명인 몬테를 연기하고, 줄리엣 비노쉬가 우주선의 과학자 디브즈를 연기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보통의 SF 영화를 상상하면 곤란하다. 물리학보단 생물학에 가까운 영화라고. 우주선 밖보단 우주선에 탑승한 이들의 혼란스러운 내면에 집중한 영화다.
할로윈
감독 데이빗 고든 그린 | 출연 제이미 리 커티스, 닉 캐슬, 주디 그리어
마이클 마이어스가 돌아온다. 2018년판 <할로윈>은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다른 속편은 무시하고 1978년작 오리지널 <할로윈>으로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담는다. 40년 전 할로윈 밤에 간신히 살아남은 로리는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와 다시 마주하고, 그와 마지막 대결을 펼친다. <할로윈> 시리즈의 상징인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가 할머니가 된 로리를 연기하며 팬들의 추억을 소환할 예정. <앤트맨> 속 스콧 랭(폴 러드)의 전처를 연기한 주디 그리어가 그녀의 딸을 연기한다. 공포영화의 명가로 떠오른 블룸하우스와 유니버셜이 제작을 맡았다.
올드 맨 앤 더 건
감독 데이빗 로워리 | 출연 로버트 레드포드, 케이시 애플렉, 대니 글로버
70세의 나이로 미국 샌 퀜틴 교도소 탈출에 성공하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한 은행 강도의 대담한 이야기. <올드 맨 앤 더 건>은 1920년대를 풍미한 은행 강도 포레스트 터커의 실화를 다룬 범죄 코미디 영화다. 지난 8월 은퇴를 선언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포레스트 터커를, 케이시 애플렉이 그를 쫓는 형사 존 헌트를 연기한다. 포레스트 터커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 주얼 역엔 씨씨 스페이식이 캐스팅됐다. <피터와 드래곤>, <고스트 스토리>를 연출한 데이빗 로워리가 메가폰을 잡았다.
글로리아
감독 세바스찬 렐리오 | 출연 줄리안 무어, 숀 애스틴, 마이클 세라
<판타스틱 우먼>으로 올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의 신작.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은 지난 2013년 <글로리아>로 전 세계 영화제에 호명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공개한 <글로리아>는 자신이 연출한 동명 작품을 할리우드판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고자 하는 중년 여성 글로리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할리우드판 글로리아는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다. 원작 <글로리아>(2013)에서 글로리아를 연기한 폴리나 가르시아는 이 역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은곰상을 품에 안았다.
아웃로 킹
감독 데이빗 맥킨지 | 출연 크리스 파인, 애런 존슨, 플로렌스 퓨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의 개막작. 14세기를 배경으로 한 <아웃로 킹>은 거대한 영국 군대에 맞서 적은 병력으로 나라를 지켜낸 스코틀랜드의 무법자 왕, 로버트 브루스의 이야기를 담는다. <로스트 인 더스트>를 연출한 데이빗 맥킨지 감독이 넷플릭스와 함께 만든 작품. 정치가라기보단 전사에 가까운 역사적 인물 로버트 브루스를 크리스 파인이,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드 버그는 <레이디 맥베스>로 전 세계에 눈도장을 찍은 플로렌스 퓨가 연기한다. 그 외 차세대 영국 배우로 주목받고 있는 애런 존슨, 빌리 하울 등이 함께 출연했다.
디스트로이어
감독 캐린 쿠사마 | 출연 니콜 키드먼, 세바스찬 스탠, 토비 켑벨, 브래드리 휘트포드
과거 캘리포니아 사막의 갱단에 언더커버 요원으로 잠입했으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형사 에린 벨(니콜 키드먼). 그녀의 앞에 갱단의 우두머리가 나타나고, 에린 벨은 자신의 과거를 파괴한 악마들에게 다시 접근하기 시작한다. <디스트로이어>는 플래시백을 이용해 에린 벨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스터리한 전개를 이어간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극단의 끝에 선 캐릭터, 에린 벨을 연기한 니콜 키드먼의 변신이 눈에 띄는 작품. 세바스찬 스탠이 그녀의 수사 파트너 크리스를, 토비 켑벨이 갱단의 조직원 사일러스를 연기한다.
늑대의 어둠
감독 제레미 솔니에 | 출연 제프리 라이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라일리 카오
<블루 루인>, <그린 룸>으로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던 인디 영화의 샛별 제레미 솔니에 감독의 신작. 넷플릭스 영화 <늑대의 어둠>은 알래스카 설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한 아이를 물어간 늑대 떼를 찾기 위해 마을을 방문한 동물 전문가 러셀 코어는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더 어두운 비밀을 마주한다.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작품들에 출연 중인 라일리 코프가 아이의 어머니인 메도라를,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그녀의 폭력적인 남편 버논을 연기하며 서늘한 얼굴을 뽐낸다. 사건의 중심에 선 러셀 코어는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한다.
마야
감독 미아 한센-러브 | 출연 아시 버너지, 로만 코린카
<마야>는 시리아에서 인질로 잡혔다 풀려난 프랑스 전쟁 특파원 가브리엘을 조명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가브리엘은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대부가 살고 있는 인도로 향하고, 그곳에서 대부의 딸 마야와 함께 교감하며 자신의 삶을 재건해나간다. <다가오는 것들>로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며 유럽 영화의 선두에 선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신작. 인도의 모델 출신 배우 아시 버너지가 마야를, <다가오는 것들>에 출연했던 프랑스의 신예 로만 코린카가 가브리엘을 연기한다.
더 데스 앤 라이프 오브 존 F. 도노반
감독 자비에 돌란 | 출연 키트 해링턴, 나탈리 포트만, 벨라 손, 제이콥 트렘블레이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어 영화 데뷔작 <더 데스 앤 라이프 오브 존 F. 도노반> 역시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베일을 벗었다. 일련의 스캔들에 휘말린 존 F. 도노반이 죽음을 맞은 후, 그와 5년 동안 펜팔 주고받았던 팬 루퍼트 터너가 이후 배우가 되어 그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내용을 담았다. 존 F. 도노반을 연기한 키트 해링턴 외 나탈리 포트만, 수잔 서랜든, 케시 베이츠, 벨라 손 등 탄탄한 라인업이 눈에 띄는 작품. <룸>, <원더> 등에 출연하고 이번 작품에서 루퍼트 터너 역을 맡은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압도적인 연기력 역시 주목할만하다.
벌새 프로젝트
감독 킴 누옌 | 출연 제시 아이젠버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셀마 헤이엑
사촌 지간인 빈센트(제시 아이젠버그)와 안톤(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은 캔자스와 뉴저지 사이에 광섬유 케이블을 깔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일 꿈을 지니고 있다. 안톤은 브레인, 빈센트는 사기꾼 역할을 맡아 그들의 프로젝트를 추진해나가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이다. 그들의 보스 에바 토레스(셀마 헤이엑)가 그들의 앞에 나타나며 일이 어그러질 위기에 처한다. <르벨>을 통해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에 이름을 올린 킴 누예 감독의 신작. 믿고 보는 배우들의 이름 역시 신뢰감을 더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JT 르로이
감독 저스틴 켈리 | 출연 로라 던, 크리스틴 스튜어트, 다이앤 크루거, 짐 스터게스
<JT 르로이>는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었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다. 작가 로라 알버트(로라 던)는 JT 르로이라는 필명으로 통찰력 있는 소설을 써낸다. 그녀는 JT 르로이에게 버지니아 출신의 10대 소년이자 성노동자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설정을 부여한다. 독자들과 미디어가 열광하고, 로라 알버트는 남편의 여동생인 사반나(크리스틴 스튜어트)를 JT 르로이로 위장시킨다. 사반나는 6년 동안 자신을 JT 르로이라 속이며 살아간다. 캐릭터의 괴짜스러움도 납득시키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로라 던의 연기가 빛난 작품. 짐 스터게스, 다이앤 크루거, 코트니 러브이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