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2006), <만추>(2010)의 김태용 감독은 지난해 국악 공연 <꼭두>를 연출했다. 영화와 국악의 신선한 결합을 보여준 <꼭두>는 총 20회 공연 중 11회를 매진시키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올해 11월 국립국악원에서 <꼭두>가 재공연 된다. 그에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꼭두>의 영화 버전인 <꼭두 이야기>가 상영된다. <꼭두>는 할머니의 꽃신을 몰래 팔아 강아지를 산 아이들이 할머니가 쓰러진 것을 알고 꽃신을 되찾으러 갔다가 저승길로 떨어져 꼭두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배우 김수안이 할머니의 꽃신을 찾아 나서는 누나 수민을, 조희봉이 네명의 꼭두 중 시중꼭두를 연기한다. 무성영화에 변사의 해설을 곁들인 <청춘의 십자로>, 판소리와 영화의 만남을 보여준 <필름판소리 춘향뎐>, <레게 이나 필름, 흥부>
-<꼭두> 공연 이후 어떻게 지냈나.
=김태용_ 공연을 영화로 남기고 싶어서 <꼭두>의 영화 작업을 진행했고, 다음 장편영화도 준비하며 보냈다. 하루도 안 쉬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왜 영화 안 찍고 노냐고 물어본다. (웃음)
=조희봉_ <꼭두> 쫑파티 때 감독님이 공연을 영화로 새롭게 만들어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잠깐 보충 촬영을 진행했고, 11월에 새롭게 무대에 올리는 <꼭두>의 새 대본도 나와서 곧 공연 작업에 들어간다.
-<꼭두>의 영화 버전인 <꼭두 이야기>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공연과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김태용_ (작업 중인 편집본을 보여주며) <꼭두>를 그대로 영화로 옮기는 게 아니라 공연을 영화적으로 해석해보고 싶었다. 공연에서 무대는 저승, 스크린은 이승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스크린 속 진도의 아이들 이야기, 무대 위 아이들과 꼭두 이야기에 더해, 영화는 무대 뒤편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무대와 스크린뿐 아니라 무대 뒤의 이야기까지 더해져서 구조가 더 복잡해졌다. <꼭두>가 공연 안에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면, <꼭두 이야기>는 영화 안에서 무대와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는 느낌에 가까울 것이다.
조희봉_ 아직 완성된 영화를 못 봤는데, 지금 이렇게 편집본을 보니 기대가 된다. 짧게 봐서 더 감질난다. 막 예매하고 싶어진다. (웃음)
김태용_ 짧게 봐야 흥미롭다. (웃음)
-라이브 연주도 한다던데, 어떤 방식으로 상영되는 건가.
김태용_ 국악에 대한 애정으로 <꼭두>를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국악에 관심이 더 커졌다. 국악의 경우 실제 연주를 들을 때와 녹음된 음악을 들을 때의 차이가 크다. 음색이 중요한 악기들이 많아서, 국악을 영화로 청취하는 게 아니라 라이브로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 영화제에서 상영할 땐, 국립국악원의 연주자들이 영화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서 라이브로 연주한다. 국악기로 연주한 국악으로만 영화 전체를 채운 경우는 아마 이번이 처음일 거다.
조희봉_ 이 지점에서 태용이 형이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웃음) 정말 어마어마한 품이 드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나 역시 공연하면서 국악이란 음악이 정말 모던하고 감동적이라는 걸 느꼈는데, 실제로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울었다는 관객이 많았다.
-<꼭두>는 국립국악원에서 제안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어땠나.
조희봉_ 일단 <청춘의 십자로> 때 고생을 많이 했다. 변사가 돼서, 사람들의 감정이 활활 타오르게끔 한시간 반 동안 이야기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에 비하면 <꼭두>는 하루에 네번도 공연할 수 있겠더라. (웃음) 처음엔 국립국악원이라는 큰 단체와 협업한다는 사실에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하기도 했다. 국립국악원의 예술가들과 협업해야 하는데, 그들은 어떤 분들일까, 우리를 예쁘게 봐주실까 걱정이 됐다. 실제로 고비도 많았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차츰 손발이 맞고 공연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기적 같다고 느꼈다. 굉장히 짜릿한 경험이었다. 올해도 그래야 할 텐데. (웃음)
김태용_ 공연 안에 무용도 있고 연극도 있고 음악도 있고 영상도 있다. 각각의 페이스보다 앙상블이 중요한 공연이었다. 배우들 입장에선 연기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음악과 무용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힘들었을 거다. 무용수나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하지만 이질적인 요소들이 잘 어우러지면 재미있고 신비로운 경험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처음 국악 공연을 제안받았을 땐 국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꼭두 이야기를 바탕으로 공연과 영화가 적극적으로 만나는 시도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꼭두가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라 국악원에선 “괜찮을까요?”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악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국악계 바깥에서 연출자를 데리고 왔는데, 무겁고 무서운 이야기가 될까봐 우려했던 것 같다.
조희봉_ 나 역시 처음엔 막연했다. 어떻게 공연이 완성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전라남도 진도에서 찍은 공연 속 단편영화를 보고나서, 그때 처음으로 이 공연이 잘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_ 조희봉 배우의 말처럼, 사람들이 처음엔 완성된 공연의 형태를 잘 가늠하지 못했다. 이거 연극이야? 글쎄 연극은 아닌데. 무용이구나? 무용도 아닌데. 영화는 왜 찍어? 영화도 나오니까. 국악 공연이야? 국악도 나오지. 그럼 그걸 한번에 다 보는 거야? 한번에 다 보는 거야. (웃음) 이런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한때 영화 <신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꼭두>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나.
김태용_ <신과 함께> 전부터 이승과 저승 이야기, 꼭두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신과 함께>를 해보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10년쯤 전에 동숭아트센터의 꼭두박물관과 김옥랑 관장의 꼭두 관련 책을 통해 꼭두를 알게 됐다. 우리가 죽고 나면 저런 존재들이 저승까지 인도한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후의 이야기라 하면 저승에서 죄를 심판받는 설정에 익숙한데,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이승에서 한번도 대접받지 못했던 당신을 최고로 대접해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상여의 문화가 좋았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타는 가마가 상여다. 상여는 돈이 많든 적든, 계급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모두 탈 수 있다. 게다가 상여에 4명의 보디가드(꼭두)를 붙여서 저승길을 안내한다는 설정이, 과거 마을 공동체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이상하게 힘을 주고 위안을 줬던 것 같다.
-<청춘의 십자로>나 판소리와 영화를 접목한 이전 공연들과 비교하면, <꼭두>는 스크린과 무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적극적 크로스오버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태용_ 그렇다. 이전 공연들은 ‘우리가 어떻게 영화를 해석하고 있는가’ 를 보여주는 게 핵심이었다. 반면 <꼭두>에서 영화는 해석과 주석의 차원을 넘어선다. 무대와 스크린의 내러티브가 서로 넘나든다. 영화의 내러티브가 무대로 들어오고, 무대의 감정이 영화로 들어간다. 이런 시도는 해본 적이 없다. 선례도 없다.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 절반의 숙제가 남은 것 같다. <꼭두>는 영화로 시작해 영화로 끝난다. 그 중간에 공연이 있다. 아이들이 저승에서 경험하는 판타지 모험은 무대에서 펼쳐진다. 저승의 스펙터클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중요했는데, 신비로운 춤과 공연이 충분히 스펙터클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지 않고 무대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대에서 펼쳐지는 저승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했다.
조희봉_ 이번 영화 작업은 색달랐다. 진도 배경의 단편엔 출연하지 않고, 공연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만 참여를 했는데 꼭두를 연기한 배우 중에 나 말고는 영화 작업을 해본 사람이 없었다. 배우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해야 했다. 여기선 이러는 게 좋겠어, 여기선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 그런데 문득 내가 이래도 되나 싶더라. 여러모로 분심(分心)이 많았던 작업이다.
김태용_ 분심이란 단어는 잘 안 쓰는 표현인데. 국악 공연으로 차 마시며 인터뷰하고 분심이란 단어까지 쓰니 부산국제영화제엔 개량한복을 입고 가야 할 것 같다. (웃음)
-<꼭두>의 또 다른 주인공인 김수안 배우는 공연이 처음이었지만, 역시나 놀랍게 무대에 잘 적응하더라.
김태용_ 단편 <피크닉>(2014) 때 이 친구의 놀라운 천재성을 확인했다. 그 뒤로 폭풍성장을 해서 스타가 된 수안이에게 공연을 함께하자고 했다. 내심 수안이가 공연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느꼈지만, 수안이에겐 스크린이 너무 작다. 에너지가 카메라를 뚫고 나온다. 그러다보니 나뿐 아니라 다른 감독들도 영화에선 수안이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누를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데 무대는 훨씬 넓으니까, 수안이가 충분히 무대에서의 연기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조희봉_ 공연을 올리기 며칠 전에 우리끼리 그런 걱정을 했다. 할머니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 생각해 꽃신을 되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인데, 그 감정에 빠지지 못하고 무대에서 놀고 싶어 하는 모습이 강하게 보였다. 김수안이라는 개인으로 보면 공연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흥미로웠을 거다. 그래서 수안이의 놀고 싶은 마음을 자제시켜야 하나 자유롭게 놔둬야 하나 어른 배우들끼리 의견을 나눴다. 그런데 그 모든 걱정이 기우였다는 듯이 수안이가 스스로 길을 잘 찾아가더라.
김태용_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들이 있다. 에너지와 퍼스낼리티가 강한 대표적인 배우가 내게는 수안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배우들과 잘 맞는다. 배우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극하는 연출을 잘 못한다. 대신 에너지가 많아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하는 배우를 절제시키는 걸 좋아한다. (웃음) 열정 많은 배우들을 좋아한다.
-두분의 인연도 참 오래됐다. 단편 <이 공을 받아줘>(2003), <가족의 탄생>, <청춘의 십자로>에 이어 <꼭두>까지 함께하고 있다.
조희봉_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를 찍고 나서, 태용이 형이 대학로 뒤편 낙산의 작업실에서 민규동 감독, 강이관 감독, 박관수 PD와 같이 매주 영화를 찍었다. 그때 배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감독님의 영화 워크숍에 참여했던 게 인연의 시작이다. 사실 나는 감독 대 배우로 만나고 싶었는데, 형이 연기 욕심이 있어서 자꾸만 배우로 뭔가를 같이하려고 해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웃음)
김태용_ 그때 우리가 찍었던 단편들을 공개하면 정말 난리가 날 텐데.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영화와 공연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작업들을 해왔지만 <만추> 이후 장편영화는 선보이지 않았다. 장편영화를 기다리는 이들도 많은데.
김태용_ 나 역시 장편이 너무 하고 싶더라. 시나리오도 나와 있다. 인공지능에 관한 SF영화다. 올해도 <꼭두> 공연하고 나면 다 지나가겠지만, 빨리 영화 촬영을 시작하고 싶다.
조희봉_ 지난해에 점 봤을 때 역술가가 뭐라 그랬더라?
김태용_ 날짜를 하나 점지해줬다. (웃음) 올해 11월 15일이 그날인데. 11월에 개봉할 거였으면 올해 초엔 영화를 찍었어야 했다. 그렇다고 11월 15일에 크랭크인하기에도 빠듯하고.
조희봉_ 그럼 대본 리딩?
김태용_ 아직 투자와 캐스팅 전이라 리딩도 어려울 것 같고. 내 바람은 계약? (웃음)
조희봉_ 그게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인다. 일단은 <꼭두 이야기>와 <꼭두> 공연을 잘 마무리짓자.
김태용_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꼭두 이야기>로 관객과의 만남도 계획하고 있으니, 영화와 공연 모두 많이 보러 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