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최근 생을 마감한 키키 키린, 놓쳐선 안 될 그녀의 연기를 담은 영화 4편
2018-09-19
글 : 유은진 (온라인뉴스2팀 기자)
<어느 가족>

2018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으로 여름 극장가를 찾았던 키키 키린이 9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일본의 국민 배우로 칭송받는 그녀는 지난 2004년 유방암을 진단받은 후 14년간 암과 싸우며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눈여겨본 관객들이라면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터. 18세에 1961년 극단 분가쿠좌에 입단하며 연기를 시작한 키키 키린은 1962년 드라마 <일곱 명의 손자>를 통해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했고, 1974년 TBS 드라마 <데리우치 간타로 일가>에서 간타로(고바야시 아세)의 어머니를 연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당시 노모 역할을 맡은 그녀의 나이는 33세. 아들 역을 맡았던 고바야시 아세보다 10살 어린 나이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를 발표했던 지난 2016년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키키 키린은 정말 내 어머니 같았다”(<씨네21> 1081호)라고 밝힌 바 있다. 서른을 조금 넘어선 나이에서부터 머리카락을 탈색하고 누군가의 어머니 역할을 맡아왔던 그녀는 특색 있는 연기로 작품마다 제 인장을 새겨왔다. 늘어진 말투로 엉뚱한 대사를 늘어놓으며 긴장을 어그러뜨리다가도, 날 선 눈빛과 뻔뻔함으로 무장해 관객들을 현실로 밀어 넣고야 말았던 키키 키린의 연기.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홀렸던 배우 키키 기린의 놓쳐선 안 될 연기를 담은 영화 네 편을 모았다.

도쿄 타워

감독 마츠오카 조지, 니시타니 히로시 출연 오다기리 죠, 키키 키린

다양한 작품에서 감초 연기로 활약하던 키키 키린의 첫 주연작. <도쿄 타워>는 일본에 신드롬적인 인기를 몰고 왔던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어머니의 암 투병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키키 키린은 아들이 하는 모든 일에 응원을 아끼지 않는 엄마 오칸을 연기한다. 키키 키린의 연기는 자칫 빤한 신파극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작품의 균형을 잡아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녀의 친딸인 배우 우치다 야야코가 오칸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키키 키린은 이 작품으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걸어도 걸어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유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들을 둔 엄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토시코(키키 키린)는 세상을 떠난 아들을 놓을 수 없다. 죽은 아들에 대한 한치 흔들림 없는 그리움은 한여름 뙤약볕이 배경인 이 영화에 서늘한 분위기를 드리운다.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키키 키린이 처음 만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순간순간 응축된 세월을 담아내는 토시코의 얼굴이다. 키키 키린이 아니고선 상상하기 어려운 역할. 당시 토시코 역에 다른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키키 키린이 “자신만큼 적합한 배우가 없다” 주장하며 역할을 따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키키 키린은 이 작품으로 제32회 일본 아카데미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

감독 가와세 나오미 출연 키키 키린, 나가세 마사토시, 우치다 카라

키키 키린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단의 대표격인 배우로 유명하지만, 배우 생활을 이어오는 내내 스즈키 세이준, 나카시마 테츠야 등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들과 함께 한 배우이기도 하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키키 키린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최연소 수상자인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 함께 작업한 영화다. 그녀는 일본의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에 아르바이트생으로 합류하는 할머니 도쿠에를 연기했다. 치유와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 속에서 키키 키린은 제 존재감만으로도 이야기에 신뢰를 불어넣는 힘을 지녔다. 온 마음을 담아 팥을 만들고 그를 통해 주변인들의 마음까지 녹여내는 도쿠에의 따스함과 섬세함은 키키 키린이 지닌 연륜이 있었기에 더 빛날 수 있었다.

어느 가족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키키 키린

<걸어도 걸어도>부터 <어느 가족>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시리즈는 키키 키린의 연대기라 봐도 손색이 없다. 언제나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을 거란 당연한 확신이 있었기에, <어느 가족>이 그녀의 유작이란 사실이 팬들에게 더한 상실감을 전하는지도 모르겠다. 혈연관계 없는 가족 이야기를 조명한 <어느 가족>에서 키키 키린은 연금과 죽은 남편의 위로금을 통해 삶을 연명하며 타인에게 집을 내어주는 할머니 하츠에를 연기한다. 집안의 중심에 서서 존재감을 과시했던 전작들의 캐릭터와 달리, 가족 구성원의 가장 끄트머리에 서서 홀로 이별을 준비하는 캐릭터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추억을 쌓으려 놀러 갔던 바닷가, 홀로 모래사장에 앉아 행복해하는 가족들을 보며 ‘다들 고마웠어’라 읊조리던 장면은 그녀의 애드리브였다고. 즉흥적인 감으로 묵직한 힘을 지닌 장면을 만들어낸 그녀, 키키 키린이 얼마나 대단한 배우였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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