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의 모습이 내가 본 기키 기린의 마지막이었다. 그때 포토콜을 지나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그녀를 본 후, 돌아와서도 문득문득 그녀의 안부가 걱정됐다. <어느 가족>(2018)에서 하츠에의 늙은 모습을 좀더 자연스럽게 하고자 틀니에 가발까지 착용했다고 하는데, 칸에서 직접 본 모습은 역할보다 한층 더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2004년 유방암 발병 후 양쪽 유방을 적출한 뒤 2012년 척추, 콩팥 등 20곳으로 암이 전이되어 전신암 판정을 받았지만, 항암치료 후 2014년에는 다행히 완치를 선언하기도 했었는데 지난 8월 지인의 집 계단에서 굴러 왼쪽 대퇴골 골절로 그만 병세가 악화됐다. 수술 후 사위이자 배우인 모토키 마사히로가 “무사히 위기를 넘기셨다”고 전했지만, 노령의 몸이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듯하다. 기키 기린은 지난 9월 15일 오전 2시45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택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살. 별세 소식을 듣고야 어떤 예감이 현실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웠다. 그녀의 죽음이 어느 명망 있는 배우의 죽음만이 아닌, 마치 살가운 나의 할머니를 잃게 된 것마냥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유작이 된 <어느 가족>을 비롯해 <걸어도 걸어도>(2008), <태풍이 지나가고>(2016) 등의 작품을 통해 지난 10여년간 기키 기린과 꾸준히 작업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녀의 마지막 시간을 가장 근접거리에서 지켜본 협업자였다. 고레에다 감독은 “올해 3월 암이 뼈까지 전이된 걸 알고서 할 말을 잃은 나와 스탭들을 반대로 살피시면서 본인은 죽음을 준비하셨다.
<어느 가족>의 무대 인사에서 냉정을 유지하며 배우 일을 완수하려는 자세에 머리가 숙여졌다. 최후까지 정말 기키 기린다운 인생의 매듭을 지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스기무라 하루코(배우), 모리시게 히사야(배우), 구제 데루히코(연출가)씨의 흉내를 섞은 기린씨의 즐거운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쓸쓸하지만 명복을 빕니다”라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기키 기린은 194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61년 극단 분가쿠좌에 입단하며 데뷔, 코믹극에서 속깊은 드라마까지 연기 경력 60년에 달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다. 분가쿠좌에서 10여년의 단역 생활을 하던 중 1971년 <TBS> 코믹 드라마 <시간 됐어요>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중인 인지도를 얻게 된 건 1974년 <TBS> 드라마 <데라우치 간타로 일가>에서 머리를 탈색하고 노모 역할을 하면서였다. 우리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그 많은 할머니 역을 비롯해 <도쿄타워>(2005),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에서의 할머니의 모습이 근작이지만, 이미 33살 때부터 할머니를 연기한 특이한 경력의 배우기도 했다. 이즈음 일본 록계의 수령으로 불리던 뮤지션 우치다 유야와의 결혼 발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는데, 이후 별거에 들어갔으며, 매사 보여준 직설적인 태도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 역시 “숨기거나 도망가는 게 싫다”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왔다.
기키 기린을 떠올릴 때면 후기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매 영화에 할아버지 역할의 배우가 바뀐 것과 달리 고레에다 영화 속 할머니는 대다수 기키 기린에게 돌아갔고, 그렇게 매번 신작이 나올 때마다 그녀도 함께 나이 들어갔다. 때로 유쾌하고 정감 있게, 늘 고레에다 가족 서사를 감싸안는 할머니 역할을 하던 그녀가, <걸어도 걸어도>에서처럼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가 훗날 어머니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닌 ‘직접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묘사된 건 <어느 가족>이 처음이었다는 점도 돌이켜보면 한층 더 이번 연기가 의미심장해 보인다. <어느 가족>에서 기키 기린이 연기한 할머니 하츠에는 각자의 필요로 모인, 이 가족의 구심점이었다. 가족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떠올릴 바닷가 여행. 하츠에는 그 추억이 될 모래를 검버섯이 피어오른 늙은 팔에 덮으며 “고마웠어”라고 말한다. 영화 속 가족의 추억이, 이제는 그녀를 기억하는 모든 관객의 가장 슬프고도 감사한 추억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녀를 기억하는 우리의 아픔과 별개로, 그녀만은 자신의 최후를 늘 염두에 두고 차근차근 이별을 준비해왔음이 틀림없다. 지난 5월 일본의 주간지 <아에라>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키 기린은 <어느 가족>의 출연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내 얼굴에 질렸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에 나오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락을 한 거다. 나도 이제 폐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인데, 인간이 늙어가고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한다. “영화 속 귤을 훑어먹는 장면이 굉장한 연기라고들 하는데, 그저 잇몸으로 평소처럼 먹었을 뿐 이가 없다는 건 그런 거다”라며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지난 10년간 병은 그녀의 삶을 모두 바꿔놓았다. 암뿐만 아니라 2003년 망막박리로 실명 위기를 겪기도 했던 그녀는 병에 대해 항상 의연한 태도를 취해왔다. “암 발병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왔다”며 암에 대해서도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죽음을 마주볼 수도 없었을 거다. (중략) 암은 간단하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객관적이 되고 삶의 방식도 살뜰해진다”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선택도 병으로 인해 바뀌어갔다.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매니저 없이 그간 팩스 하나로 단출하게 스케줄을 직접 관리해온 그녀다. “죽음은 언젠가 오는 것이 아니고 언제라도 올 수 있다. 암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일도 먼 미래의 것은 약속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1년 이내의 것만 약속한다. 일전에도 2년 계약을 요구하기에 그런 건 거둬달라고 이야기했다. 그걸 지키는 게 괴로우니 봐달라”라며 작품 선택도 자제해왔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도 걸어갔던 할머니 토시코의 구부정하고 따뜻한 등을 이제 오랫동안 하염없이 지켜보고 싶다. 작은 단팥빵 가게를 홀연 찾아와 팥이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 긴 여행기를 들려주며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라고 사랑을 전해주었던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의 할머니 도쿠에처럼, 이제 우리가 기키 기린 당신에게, 당신의 존재가 지금까지 큰 의미가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앞선 당신의 걸음이 큰 의미가 될 거라는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나무와 숲을 꿈꾸다’라는 뜻의 예명 기키 기린(樹木希林)은 그녀가 1977년 스타 애장품을 기부하는 생방송에 출연해 “팔 물건이 없다”며 기존의 예명을 내놓으면서 얻은 이름이다. 그렇게 얻은 이름처럼 푸른 나무와 숲에서 그녀의 영혼이 부디 편히 쉬길 기도한다.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