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목격자> 제작한 차지현 AD406 대표, "여름 언제라도 개봉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했다"
2018-10-04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출세했네. (웃음)” 차지현 AD406 대표와 인터뷰 하기 전에 그의 친동생인 배우 차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차태현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형이 제작자로서 충무로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차지현 대표는 방송 음향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충무로에 들어가 창립작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2012)를 시작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끝까지 간다>(2013), <사랑하기 때문에> (2016), <반드시 잡는다>(2017) 등 개성 있는 영화들을 제작해왔다. 그런 그가 올해 제작한 영화 <목격자>는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등 맹수들이 즐비했던 올해 여름 시장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252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모으며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차 대표를 만나 ‘배우 차태현의 형’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제작자로 안착하기까지 사연을 들었다. 그는 차태현보다 얼굴이 좀더 동그랗고, 자신을 전혀 포장하지 않는 모습이 담백했다.

-곧 이사한다고. 돈 벌었나보다.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났다. 귀향하신 부모님이 사시던 집으로 들어간다.

-<목격자> 성적에 만족하나.

=너무 감사하다. 지난해 두편(<반드시 잡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두 잘 안 됐는데 <목격자>까지 그랬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여름 시장에 뛰어들 줄 예상하지 못했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 시장에서 잘 버틴 것 같다. 운이 좋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름 시장에 뛰어든 이유가 뭔가.

=대작들이 연달아 등판하는 상황에서 장르영화가 틈새시장을 노려 선전한 경우가 2년에 한번꼴로 있었다. 지난 2월, 여름 시장 대진표가 나오자 틈새시장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름 언제라도 개봉할 수 있는 상태로 철저하게 준비한 것도 그래서다. 배급사로부터 여름 시장에 선보이는 게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규장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우연히 본 것을 계기로 <목격자>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너무나 쉽고 명쾌해서 선택하는 데 고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찾아와줘서 고마웠다.

-감독의 전작 <그날의 분위기>(2015)가 흥행에 실패했는데.

=개인적으로 그 영화가 재미있었다. 신인감독인데 잘 버텼다는 생각도 들었다. 느낌적으로 확 잡아당기는 감독이 있는데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다.

-전작 중에서 그런 느낌이 온 감독이 또 누가 있나.

=<끝까지 간다>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도 첫 느낌이 희한했다. 그렇다고 몸이 먼저 반응하지 않는 사람과 일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주인공 상훈(이성민)이 살인사건을 목격한 뒤 경찰에 신고하지 않게 만드는 게 관건이었을 텐데.

=상훈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게 하려고 그의 주변 상황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과 그 문제에 대해 상의하다가 잠깐 쉬기도 했다. 나중에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다시 푹 빠지고.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그 고민을 수없이 반복했다.

-더이상 의심하지 않는 순간이 있었나.

=상훈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오히려 그게 말이 됐다. 그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니까 그 뒤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다.

-동생인 배우 차태현의 영향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줄 알았는데 원래 연극영화과 출신이라고 들었다.

=단국대 연극영화과 92학번이다. 방송 일을 하신 부모님 덕분에 학창 시절 때 자연스럽게 방송반에서 활동했다(아버지 차재완은 25년 동안 KBS 음향감독으로 일했고, 어머니 최수민은 유명한 성우다.-편집자). 특히 아버지가 음향감독이어서 영화 연출보다 방송음악(혹은 음향) 일을 하고 싶었다.

-신문방송학과를 가지 그랬나.

=연극영화과에선 음향이나 음악을 가르쳐주지 않더라. 면접 볼 때 교수님에게 ‘연기도 연출도 해본 적 없다. 그런데 연극도 영화도 음악과 음향이 필요하니 입학시켜주면 그걸 도맡겠다’고 말씀드렸다. 4년 내내 진짜 그것만 시키더라. (웃음) 연극 20편, 단편영화 10편 넘게 음향과 음악을 작업하고 졸업했다.

-음향의 무엇이 재미있었나.

=무대 위에서 배우가 관객과 호흡을 주고받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관객이 내 음향에 대해 반응하는 걸 보면서 스탭이 아닌 내 작품처럼 느껴졌다.

-졸업한 뒤 충무로로 가지 않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IMF가 터질 때 졸업했다. KBS 음향 부서로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부서장이라 불편해 도저히 갈 수 없겠더라. (웃음) 1999년 콘텐츠진흥원의 전신인 소프트웨어진흥원에 영상 스튜디오를 설계·운영하고, 작은 콘텐츠 회사들의 후반작업을 지원해주는 일을 했다.

-차태현이 인정옥 작가의 드라마 <해바라기>에 출연해 많은 인기를 얻을 때가 아닌가.

=태현이를 보면서 나도 저쪽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면서도 어떤 분야로 가야 할지 몰랐던 시절이다.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간 것도 그래서인가.

=공무원이라 승진해야 하니 학위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단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연출전공으로 진학했다. 수업에서 코리아픽쳐스 배급 팀장의 특강을 들었는데 기획 PD의 역할이 귀에 들어왔다. PD? 방송은 PD고, 영화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 PD가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깜짝 놀랐다.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방향이 딱 섰고, 퇴사해 곧바로 미국에 갔다.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겠다.

=유학 가는 걸 탐탁지 않아 하셨는데 하는 수 없었다. ‘여차여차해서 가야겠으니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정 안 되면 태현이가 있으니까. (웃음)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본 영화 중에서 지금 제작하는데 도움이 된 작품은 뭔가.

=영화를 제작하는 데 기준이 됐던 영화가 세편 있다. <시네마 천국>(1988)을 통해 영화가 가진 정서에 감동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매트릭스>(1999)를 통해 영화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 또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창작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충무로에 곧바로 복귀했나.

=서울에 도착한 날 태현이가 절친한 제작자인 조원장 필름앤픽쳐스 대표를 소개해주었다. 그날로 조원장 대표의 회사에서 PD 명함을 파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 <숙명>(2008) 등을 진행하는 걸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러면서 지금의 회사인 AD406을 차려 창립작 <미확인 동영상…>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여러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AD406이 무슨 뜻인가.

=AD는 아버지가 설립한 선교사업 단체이름인 AD농어촌방송선교회로부터 따왔다. 406은 사무실 주소의 번지수다. 창립작을 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줄곧 직원 한명과 함께 책상 두개 놓고 일하고 있다. 투자 받으면 프로덕션 사무실을 얻어 제작하고, 영화가 끝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말이다. 경상비가 아까워 큰 사무실을 못 쓰겠더라.

-창립작은 <미확인 동영상…>인데 어떤 작업이었나.

=재미있었다. 개발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돈을 벌어다준 프로젝트였다. 그 돈으로 시나리오 개발비, 진행비, 인건비 등 수년간 썼던 비용을 해결했다. 같은 해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내놓을 수 있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차태현과 함께 작업한 첫 영화이지 않나.

=형제가 같은 작품을 해서 뭉클했다.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형제가 같이 작업해서 결과가 안 좋았던 경우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당시 태현이는 배우로서 자리를 잡은 반면 나는 신생 제작자라 아무리 형제라도…. 그럼에도 동생과 함께 작업해서 좋았다. 현장에선 데면데면했지만. (웃음) 모니터 뒤에 내가 앉아 있으면 동생이 나가 있었고, 내가 나가면 동생이 들어오고 그랬으니까.

-차태현과 두 번째 작업한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 노래로 채운 작품으로, 기획이 신선했는데.

=<시네마 천국>을 통해 정서를 작품으로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나라면 어떤 정서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등학생 때 유재하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의 노래를 들으면 나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버킷리스트처럼 이 노래를 가지고 뭘 해야 할 것 같았다.

-유재하 노래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 있나.

=다 좋아한다.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 영화 한편 다 본 느낌이다. 이 영화도 그렇게 출발했다. 다만, 저작권을 허락받지 못해 유재하 노래 7곡 중 두곡(<사랑하기 때문에> <지난날>)밖에 사용하지 못한 건 아쉽다. 태현이도 ‘형한테 속았다’고 속상해했고.

-그럼에도 차태현은 ‘형 영화이기에 시나리오를 더 객관적으로 보고 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던데.

=나 또한 그렇다. 감독이나 배우는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라서 접근하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예민하게 해야 한다. 태현이는 동생이라서 애매한 게 있다. 차라리 남이면… 어떻게 보면 옛날에 더 친했다. 요즘은 자주 만나도 데면데면하다. (웃음)

-<끝까지 간다>는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은 작품이다. 2014년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그 영화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필름앤픽쳐스에 잠깐 있을 때 김성훈 감독이 초고를 가지고 와서 함께 진행하게 됐다. 이야기 정서가 B급이라고 하기엔 고급스러운 요소가 많았고, 시대를 앞선 까닭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야기가 신통방통하게 살아 있어서 잠이 안 왔다. 그런데 어떤 문제 때문에 감독님이 회사 밖에 가지고 나가서 고생을 하며 개발하다가 다시 어렵게 모셔와서 진행할 수 있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성동일, 백윤식이라는 중견 배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좋게 얘기하면 의미가 있는데 계산이 안 나오잖나. 안 나오는 계산이면 하지 말아야 하나. 그럼에도 이야기와 감독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진행한 건데 흥행에 실패해 지금도 속상하다. 그렇게 실패할 영화가 아닌데.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영화를 하는 게 아닌데 이게 한계구나 싶었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인데 왜 했나.

=그럼에도 이야기가 좋았고, 성동일, 백윤식 말고는 떠오르는 배우가 없었다. 젊은 배우를 노인 분장 시켜서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 감독, 배급사 모두에 감사한데. <목격자>진행할 때 자꾸 그 생각이 나서 속상해 죽을 뻔했다.

-매 작품 개성 강하고 미덕을 가진 작업들만 해왔는데.

=다 고만고만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웃음) 지난해와 올해 영화를 진행하면서 아직은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차태현 하나 가지고는 안 된다. (웃음) 나도, 우리 감독님들도 좀더 분발해야 한다.

-좀더 자신을 포장해달라. (웃음)

=아직은 더 성장해야 한다.

-다음 영화는 뭔가.

=모두 규모가 큰 작품들이다. 드라이브를 많이 걸었다가 올해 메이드 시키지 못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싶었다. <목격자>가 귀한 작품이 됐다. 회사가 많이 힘들었고, 아직 <목격자>가 정산되기 전이라 지금이 가장 힘든데 내년에 재정비하면서 내후년에 이 작품들이 들어가도록 할 거다.

-차태현 배우가 “부모님이 아직도 형을 많이 걱정하고 있다”던데. (웃음)

=그럴 수 있겠다. 제작사는 언제나 흥망성쇠가 명확하기 때문에 평생 걱정하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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