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석 촬영감독의 <암수살인> 포토 코멘터리
2018-10-11
글 : 김성훈 |
황기석 촬영감독의 <암수살인> 포토 코멘터리

익숙한 듯 새롭고, 새로운 듯 익숙하다. 10월 3일 개봉한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의 촬영은 노련하면서도 정교해 관객을 능수능란하게 들었다 놨다 한다. 이야기가 우직하게 전개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촬영감독이 누구인지 크레딧을 확인했더니 황기석이었다. 젊은 관객에게 생소한 이름일 수 있겠다. 1990년대 말 혜성처럼 등장해 영화 <친구>에서 ‘실버리텐션 기법’(필름 현상 과정에서 색소에 붙어 있는 은 입자를 씻어내지 않고 남기면 명암의 차가 커져 밝은 부분은 더 밝아지고 어두운 부분은 더 어두워지면서 콘트라스트가 강한 영상이 만들어진다. 보통 회상 장면에서 쓰인다.-편집자)을 처음 시도하고, 현장 편집기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기술들을 선보였고, 이후 <와니와 준하> <형사 Duelist>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 여러 영화에서 좋은 촬영을 보여준 그다. 황기석은 한때 충무로에서 승승장구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현재 미국 뉴욕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촬영 일을 하고 있는 그와 이틀 연속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의 근황과 <암수살인> 촬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편, 인터뷰 직후 <암수살인> 실제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이 ‘유족의 동의가 없는 상영은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영화 배급사인 쇼박스를 상대로 영화상영금지가처분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1일 피해자 유가족측 소송대리인은 “영화 제작사로부터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가처분 소송을 취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암수살인>은 예정대로 10월 3일 개봉하게 되었음을 밝혀둔다.



프롤로그 <암수살인> 촬영 컨셉



‘스타일보다 스토리.’ 황기석 촬영감독과 김태균 감독이 프리 프로덕션 때 시나리오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동의했던 지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고, 모든 인물이 사실적이기에 전형적인 형사영화의 서사 구조를 좇기보다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을 유기적으로 따라가보자는 의도에서 내린 판단이다. 이런 결론을 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시나리오가 지금 영화보다 좀더 장르적인 흐름이 있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미국 뉴욕에서 지내던 황기석 촬영감독은 김태균 감독으로부터 폴 세잔의 포커 치는 두 남자 그림, 안톤 브루크너의 미완성 교향곡 9번 등 두 레퍼런스와 함께 촬영 제안을 받았을 때 감독이 생각한 이미지가 “애매하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다. 황 촬영감독은 “김 감독이 뭔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애매하고 추상적인 이미지에서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 함께 찾고 싶었던 데다가 촬영감독 데뷔작인 <억수탕>을 함께했던 김 감독(당시 조감독), 강대희 조명감독과 20년 만에 뭉치고 싶었던 까닭에 다시 한국을 찾기로 했다”고 <암수살인>에 참여한 계기를 말했다.



현재와 과거가 상반된 빛




<암수살인>은 현재와 과거가 오가며 전개된다. 현재는 형사 형민(김윤석)이 살인자 태오(주지훈)를 만나 그로부터 얻은 단서를 좇는 이야기다. 과거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태오의 범행 사실을 재구성한 형민의 ‘상상’이다. 황기석 촬영감독은 현재를 “무채색 도시의 느낌으로 표현”하기 위해 콘트라스트를 약하게 주었다. 반대로 회상장면을 “컬러풀하고 몽환적인 느낌”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회상 신은 코와 애너모픽렌즈를 장착한 애너모픽 카메라로 촬영됐다. “코와 애너모픽렌즈는 구형 모델의 단렌즈로, 이 렌즈로 찍으면 화면에 굴곡이 많이 맺힌다. 이렇게 촬영된, 왜곡이 심한 부분을 따로 잘라내붙인 화면이 회상 신이다.” 영화에 투입된 코와 렌즈는 40, 50mm 두 종류가 투입됐다. 카메라 두대 이상이 투입되는 몇몇 회상 신은 코와 렌즈를 수급하는 게 쉽지 않아 쿡 애너모픽렌즈도 섞어 사용하기도 했다.



접견실 프로덕션 디자인



교도소 접견실은 형민과 태오가 수차례 만나 설전을 벌이는 중요한 공간이다. 황 촬영감독은 접견실이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공간”인 동시에 “어느 교도소에 가도 있을 것 같은 공간”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처음에는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설계해 보여준 공간이 황 촬영감독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접견실을 참고할 만한 자료가 워낙 없었던 탓에 제작진은 형민의 실존 모델인 김정수 형사가 찍은 휴대폰 동영상 속 실제 접견실을 참고해 접견실을 만들어나갔다. “스타일보다 스토리가 중요했기에 오픈 세트에서 공간을 디자인할 때 빛이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는지부터 정한 뒤 카메라와 조명을 그것에 맞춰 설계했다”는 게 황 촬영감독의 얘기다.



접견실 신 촬영 설계




접견실 신에서 황 촬영감독의 촬영은 수시로 변화하는 형민과 태오, 둘의 관계와 상황을 정교하게 반영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마주 앉는 접견실 신은 서로의 속내를 알 수 없는 형민과 태오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관건이었다. 창문 유리에 반사된 빛이 인물의 얼굴을 종종 가리고, 카메라가 180도 라인을 넘나들며 둘의 시선을 일치시키지 않은 것도 혼란스러운 상황을 표현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둘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장면의 의도와 인물의 감정에 따라 유리 반사와 180도 규칙 깨뜨리기는 강도를 달리한다. 카메라가 180도 라인을 넘나들 때마다 인물에 떨어지는 그림자 또한 방향이 달랐는데 황 촬영감독은 그림자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함께 신경 썼다고 한다.





형민이 태오의 실체를 드러내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마지막 접견실 신은 유리 반사와 180도 규칙 깨뜨리기가 전혀 시도되지 않는다. “모든 게 선명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마지막은 전형적인 장르영화의 법칙대로 찍었다.” 또 창문이 많은 오픈 세트인 까닭에 조명은 기본적인 세팅을 갖추되 날씨 변화에 따라 유기적으로 조절됐다.



조명과 색보정



색보정 작업에서 색을 빼거나 더한 건 거의 없다. 황 촬영감독은 여러 전작들에서 촬영한 부산이라는 도시를 잘 알고 있었는데 이번 영화만큼은 부산을 무채색 도시로 염두에 두고 찍었다. 미국에서 개퍼(DP 시스템에서 조명을 담당하는 스탭)로 활동하고 있던 황 촬영감독과 당시 공연영화를 준비하느라 공연 조명에 관심이 많던 강대희 조명감독이 유독 조명에 신경 쓴 장면은 회상 신이었다. “회상 신의 거의 모든 장면이 밤 시간대라 좀더 화려하고 원색적인 느낌을 강조하려고 했다.”



파트너로서의 김윤석



김윤석과 주지훈 모두 처음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다. 황 촬영감독은 “나는 김윤석씨와 잘 맞았다. 까탈스러움까지 나와 비슷했다. (웃음) 까탈스러움은 열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암수살인>을 하면서 시작된 인연은 김윤석의 연출 데뷔작 <미성년>으로까지 이어졌다. 황 촬영감독은 <미성년>을 촬영하고 뉴욕으로 건너갔다. “<미성년>을 찍으면서 김윤석씨와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됐다. (웃음)”



에필로그 새로운 출발



현재 황기석 촬영감독은 뉴욕에서 지낸다. 뉴욕은 중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이민간 곳이다.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대학 2학년 때인 21살부터 개퍼로 뮤직비디오, CF 일을 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던 황 촬영감독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아서다. 또 하나는 더이상 “생계형 촬영감독이 되는 게 싫”었다. “한국 사회는 나이가 들면 내 경험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반면 미국은 아직도 활발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이곳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그가 현재 뉴욕에서 공연 촬영, 조명 관련 일을 하고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이유다. 그렇다고 그가 한국영화를 완전히 손에 놓은 건 아니다. “<암수살인>처럼 좋은 기회가 들어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그 점에서 좋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 김태균 감독에게 꼭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힘든 상황에서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연민의 시선으로 작품을 이끌어가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진솔함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촬영을 오래 보고 싶다.



사용한 카메라와 즐겨 쓴 렌즈



카메라_ 아리 알렉사 SXT(Arri Alexa SXT) / 아리 알렉사 미니(Arri Alexa Mini)



렌즈_ 자이스 마스터 프라임 렌즈(Zeiss Master Prime Lens) / 아리 알루라 스튜디오 줌렌즈(Arri Alura Studio Zoom Lens) / 코와 애너모픽렌즈(Kowa Anamorphic Lens) / 쿡 애너모픽렌즈(Cooke Anamorphic Lens)



180도 법칙은 무엇인가


줄로 카메라를 매달고 있는 장비가 번지캠이다.

인물들의 시선을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영화 편집의 기본 규칙이다. 대화하거나 마주 보는 장면에서 배우들의 좌우 위치가 언제나 같아야 인물들이 주고받는 시선이 튀지 않고 연결된다. 보통 대화 신을 찍을 때 ‘숏/리버스 숏’ 구도로 찍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나 왕가위의 <아비정전>(1990)처럼 감독의 연출 의도에 따라 180도 규칙을 일부러 깨뜨리기도 한다.



180도 라인을 넘나드는 장면 촬영을 할 때 특별한 렌즈를 쓰지 않았다. 촬영의 기본 컨셉이 화면 속 인물의 사이즈(클로즈업, 미들숏, 와이드숏)와 상관없이 한 발짝 떨어진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접견실 신은 롱렌즈(텔레포토 렌즈라고도 하며, 표준 렌즈보다 초점 길이가 긴 렌즈를 뜻한다) 위주로 촬영했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카메라와 피사체(인물)간의 거리가 멀어졌다. “크고 무거운 줌렌즈로 핸드헬드의 느낌을 내기 위해 번지캠(카메라를 고무줄에 매달아 흔드는 장비)을 투입해 카메라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필모그래피



<억수탕>(1997)
<친구>(2001)
<와니와 준하>(2001)
<똥개>(2003)
<우리 형>(2004)
<형사 Duelist>(2005)
<아이스케키>(2006)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소년은 울지 않는다>(2008)
<달려라 자전거>(2008)
<통증>(2011)
<후궁: 제왕의 첩>(2012)
<공정사회>(2012)
<열한시>(2013)
<암수살인>(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