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조·단역 작품도 없이, 김시아는 스크린 데뷔작인 <미쓰백>으로 존재를 알려왔다. 방치와 폭력을 일삼는 아동학대의 음지에서 미쓰백(한지민)의 손을 잡고 뛰쳐나온 아이 지은이 그의 생애 첫 역할이다. 올해 11살. 한없이 유순한 인상이지만, 무표정에선 일찍 철든 아이의 근심과 결연함이 묻어난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인 데뷔작에 이어 굵직한 차기작 행보까지 전해 듣고 나니, 행여 너무 빨리 두각을 드러내는 것 같아 노파심이 일었다. 호들갑을 떠는 기자에게 김시아는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차분한 답변을 전했다.
-600:1의 경쟁률을 뚫었다는 오디션 과정이 궁금하다.
=<미쓰백> 오디션만 여러 차례 봤다. 부분적으로 시나리오를 주셔서 연습해가는 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았을 땐, 오디션인 줄 알고 준비해갔는데 합격 소식을 알려주려고 부르신 거였다. 엄청 좋았다!
-아동학대의 당사자를 연기해야 했는데, 심적인 부담감을 어떻게 극복했나.
=이 영화를 통해 아동학대가 우리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관객이 한번 더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이렇게 뜻 깊은 작품이 내 첫 영화라는 게 반가울 뿐이었다. 캐스팅 소식도 믿기지 않았고 마냥 행복했다. 이후에는 감독님과 지은의 몸짓과 표정, 말투에 대해 조금씩 상의해 나갔다. 지은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감독님이 먼저 의견을 들려주시면, 나도 이런저런 대답을 내놓았다.
-촬영을 하면서 무섭진 않았나.
=영화 촬영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처음엔 지은이 학대를 당하는 장면에서 내가 진짜로 맞는 건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때리는 시늉만 하는 것이었고,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가 카메라에 담기는 과정을 알아갈 수 있어서 신기했다. 지은의 감정을 담아 꾸준히 일기를 쓴 것도 도움이 됐다. 내게 어울리는 연기를 찾기 위해 인물을 파고드는 과정을 즐겼다.
-배우들과는 금세 친해졌나. 한지민 배우는 원래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미쓰백>을 하기 전까진 한지민 언니가 누군지 몰랐다. (웃음) 이번에 알게 된 지민 언니는 평소엔 정말 착하신데, 연기가 시작되면 차가운 미쓰백의 모습으로 돌변하셔서 깜짝 놀랐다. 이 기회를 통해서 꼭 전하고 싶다. “멋진 선배님들과 촬영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영화에서 지은은 유독 깡마른 모습이다. 일부러 체중을 감량하기도 했나.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니지만, 지은이라면 끼니를 제때 먹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은이의 상황을 체험해보려고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일부러 참거나, 밥 먹는 양도 평소보다 줄였다. 나는 아직 성장기니까 엄마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걱정하시기도 했다. 평범한 환경이 아니라 학대받는 상황에 있는 아이를 이해하려는 나 나름의 노력이었다. 혼자서 고민하다가 너무 어려울 땐 감독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쩌면 낯선 타인일 미쓰백과의 끈끈한 유대감도 이해하기 쉬운 감정은 아니었을 텐데.
=지은은 외로운 아이다. 화장실에 갇힌 채 창밖을 내다볼 때 가끔씩 골목에 혼자 서 있는 미쓰백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가지 않았을까 상상했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왠지 믿음이 간달까. 지은의 입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켜봐왔던 사람이니까, 마음의 문을 쉽게 열 수 있었을 것이다.
-시사회나 무대인사 등 각종 행사를 경험한 소감도 남다르겠다.
=모두 한번씩 부딪쳐보고 나니까 이제는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일동 웃음) 촬영장은 물론이고 제작발표회나 언론시사회도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할 만했다. 어렵다기보단 행복한 경험이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났는데 개봉 전 반응을 먼저 접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연기 외에는 무엇을 좋아하나.
=집에서 노래 틀어놓고 혼자서 춤추는 걸 즐긴다. 유튜브로 음악을 튼다.(김시아는 지역키즈댄스경연대회에서 1등을 해서 댄스학원 수강권을 얻기도 했다. 이후 다수의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율동팀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편집자)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에도 출연한다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사는 아이를 연기했다. 동생까지 챙겨야 하기에 마음속의 슬픔이나 화를 드러내지 않고, 애써 밝게 지내려고 한다. 내 실제 성격도 조금 비슷한데, 아파도 웬만하면 티내지 않고 꾹 참는 편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연기도 잘하면서 촬영장에서 다른 사람들도 잘 챙기는 한지민 언니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역할의 의미를 지혜롭게 전해주는 좋은 배우가 되겠다.
영화 2017 <미쓰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