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바뀐 거야?” 일본 소도시 이토모리 마을의 소녀 미츠하(가미시라이시 모네)와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가미키 류노스케). 영문도 모르고 몸이 바뀐 두 소년소녀는, 한 마을을 소실하게 만든 대재앙 속 참사를 되돌려놓는 기적을 불러온다. <너의 이름은.>(2016)은 판타지물이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집요한 작화가 뒷받침되어 마치 실재하는 듯한 감흥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1500만명의 관객이 영화를 보고 치유받았다. 웹툰 작가 기안84가 신카이 감독이 <너의 이름은.>을 그리면서 실제 배경지로 삼은 기후현 히다 후루카와와 나가노현의 스와 호수를 여행했다. 영화를 그대로 옮겨온 듯 똑같은 배경을 찾는 재미에, 고즈넉한 일본 소도시 여행지의 즐거움까지 함께했던 시간. 기안84가 “내 그림으로는 이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가 없었다”며 여행지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너의 이름은.> 속 곳곳의 스케치도 함께 수록한다.
“정말 이 마을 지겨워. 좁디좁아 말도 많고. 빨리 도쿄 가고 싶어.” <너의 이름은.>의 사라진 마을 ‘이토모리’의 배경이 된 기후현의 소도시 히다 후루카와 마을로 떠나기 전 영화 속 아이들이 늘어놓던 푸념이 떠올랐다. 기차는 2시간에 한번 오고, 편의점은 밤 9시에 문을 닫고, 술집은 두개밖에 없고, 서점도 치과도 없는 곳. ‘우리 카페나 갈까?’ 하는 말에 함께 도착한 곳이 고작 ‘벽다방’이었다. 이토록 작은 이토모리를 배경으로 하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모델로 삼은 마을은 어디였을까. 신카이 감독의 집요한 작화 방식을 세상에 알린 첫 작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1999)에서 그녀와 고양이가 사는 좁은 다다미방. 바닥 틈새와 집기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혼자 작화해서, 시력이 치명적으로 약해진 일화를 들으며 그의 이후 작품들을 접해왔었다. <초속5센티미터>(2007)의 배경이 된 다네가시마 마을, <언어의 정원>(2013) 속 도쿄 신주쿠의 정원까지 장면과 똑같은 지점을 찾아내는 놀이(이건 실사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인데도 이렇게나 똑같다)는 신카이 감독의 팬들에게는 작품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환상과 현실의 접점, 실재하는 이토모리 마을
이토모리 마을의 미츠하와 도쿄의 타키를 이어준, 과학으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물이건 쌀이건 시간이건 이어지는, 신과 인간을 잇는 소중한 전통 ‘무스비’(인연의 끈)를 그린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신카이 감독이 주목한 이토모리 마을이 일본에 실재한다.
히다 후루카와는 도야마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이토모리 호수는 나가노의 스와 호수를 배경으로 한다. 이번 <너의 이름은.> 배경지 투어에 웹툰 작가인 기안84에게 동행을 제안하자 “영화 속의 모습을 실제로 본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며 선뜻 동참해왔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소년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는 그는, “<너의 이름은.>이 그 감정을 표현하는 중에서도 가장 와닿았다”며 “특히 미츠하와 타키가 재회했다가 다시 사라지는,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투어의 시작, 미츠하가 씹어 만든 술을 마시고 “기적의 시간, 너를 만나러 왔어!”라며 황혼녘 그곳을 찾은 타키. 노을이 지던 영화 속 이토모리 호수를 두눈에 담겠다는 일념에 일행은 공항에서 바로 영화의 배경인 나가노의 스와 호수로 직행했다.
미츠하가 신사 계단 끝에 다다라 호수를 바라보며, “다음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줘” 하고 소리를 지르지만, 실제 호수는 히다 후루카와 마을과는 떨어진 곳이라 여행자들은 두곳을 각각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가는 것이 좋다. 이곳은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으로 유명한 데다 겨울철에 스키를 타러 많이 오는데, <너의 이름은.>이 개봉한 후 호수를 찾아 오는 영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언덕 위를 한참 오른 뒤 스와 호수를 맞닥뜨리자 감탄이 먼저 흘러나온다. 거대했다! 영화 속 호수보다 족히 세배는 커 보이는 호수라 한눈에 담기가 힘들었다. 신카이 감독이 ‘1천년도 전에 운석이 떨어져서 생긴 운석 호수’라는 이토모리 호수를 그리자면, 미츠하와 타키가 그토록 바라던 만남을 이루자면, 이곳 말고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싶었다. 기안84는 “이 정도로 장관일 줄 몰랐다. 이곳만큼은 영화가 진짜를 다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라며 스와 호수를 즉석에서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날이 흐려 붉은 석양이 깔리는 걸 보지는 못했지만 기안84의 그림에는 석양을 보고 싶은 열망을 담아 빨간 노을을 채색했다.
이토모리 마을의 본격 탐험. 실제 배경이 된 히다 후루카와를 모두 담기위해 둘쨋날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다행히 비가 걷히면서 소도시의 소박한 정경이 햇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났다. 천천히 느린 발걸음으로 이곳저곳 둘러볼 수 있는 반나절 코스라 지도 없이 다녀도 길 잃을 리 없는 곳이었다. 사실 이곳 가이드로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너의 이름은.> 속 소년 타키다. 이미 3년 전, 혜성이 떨어져 마을 주민 몇 백명이 죽은 대참사, 타키가 가지고 있는 호수 마을의 사진은 재난 이전의 것이었다. 히다 후루카와역에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은 대략 30분 간격. 타키 일행이 역사에서 처음 만난 검은 소 캐릭터 ‘히다쿠로짱’도 그 자리에 있었다. 만화가의 관점다운 기안84의 반응이 재미있다. “정말 그대로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다시 보니 정말 제작진이 죽어났겠구나 싶다. (웃음)” 히다쿠로짱 앞에서 잠깐 기념촬영을 하고, 계단을 올라가면 영화 속 모습과 똑같은, 기차가 역사로 진입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기차 진입 시간에 맞춰 기차가 들어오는 게 어찌나 반갑던지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어쩜 그렇게 영화 속 장면과 내 눈에 담은 풍경과 사진으로 찍은 것이 모두 똑같은지 캡처해간 화면과 사진을, 그리고 기안84의 스케치를 연신 비교해보며 감탄하느라 바빴다. 역에서 내려오니 역 앞에 택시 한대가 정차해 있다. 타키가 택시 기사에게 길을 물어보던 그 정류장이다. 굳이 영화 속 공간을 공들여 찾지 않아도 이곳 모두가 영화 속 풍경 그대로다. 이토모리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타키 일행이 먹었던 ‘고헤이 모찌’ 가게에도 들렀다. 모찌 가게에서 갓 구운 모찌를 사서 타키가 서 있던 자리로 와 모찌를 먹는 체험. 이때만큼은 영화 속 타키의 선배같이 우리도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영화가 만들어가는 도시의 새로운 역사
오후엔 타키가 마을의 자료를 찾던 마을 도서관에 들렀다. <너의 이름은.>이 개봉하고 나서는 서가 한쪽이 영화를 기념하는 자리가 됐다. <너의 이름은.>의 관련 도서와 이곳을 찾은 이들이 기록한 방명록이 빼곡하다. 미츠하와 타키를 귀엽게 그려놓은 페이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마을의 모습을 붙여넣은 페이지, 이렇게 각지에서 온 팬들의 팬심이 더해진 노트가 10여권 넘게 서가에 자리하며 히다 후루가와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마을 중간의 양조장에 들러 미츠하가 쌀을 씹어 만들던 술도 챙겼다(물론 진짜 씹어 만든 술은 아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가는 날에 무스비 끈을 엮어주는 기념품점이 문을 닫아 하염없이 유리창 바깥에서 안쪽의 무스비를 바라보다 왔다. 항상 느끼지만 여행지에는 이런 ‘불운’이 함께하는데, 그건 이곳을 다시 찾을 구실을 만들어주는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발길을 옮긴다.
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히다 지역의 게타와카미야 신사를 <너의 이름은.>의 투어 마지막 일정으로 잡았다. 영화 속 미야미즈 신사는 꿈을 키워나가던 어린 미츠하에겐 속박이 되었던 곳이지만 기존의 가치관을 고수하려는 할머니에게는 ‘가족은 사라졌어도 전통은 지켜나가야 한다’는 신념의 공간이었다. 이렇게 세대간의 충돌이 오갔던 신사에 이르자 짧은 여정 속 숙연함이 더해졌다. 일년에 한번, 가장 흥겨운 축제날 사라진 마을. 대재앙의 운명 속에서 꼬이고 엉키고 돌아오고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그 무스비의 가치를, 지진으로 상처입은 현대의 사람들에게 연결시켜준 신카이 감독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도 절대 잊지 않게, 서로의 이름을 써주자”며 “좋아해”라는 글귀를 새겨넣은 그 착한 마음들.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오랫동안 잊지 않을 최고의 작품으로 남은 <너의 이름은.>의 공간 속에 우리도 이 말을 전한다. “좋아해.”
나고야시에 갔다면 여기만큼은 가자
<너의 이름은.> 투어를 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바로 나고야공항이 있는 나고야시다. 일본 아이치현 서부에 자리한 나고야시는 일본의 3대 도시 중 하나에 꼽히며 도카이 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연간 23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도시로 혼슈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3대 성으로 불리는 나고야성은 1612년 에도 막부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성한 곳. 지붕에 장식된 금으로 만든 한쌍의 사치호코를 눈여겨볼 것. 오아시스21은 쇼핑가와 버스터미널이 함께 있는 나고야 시내의 센터다. 물과 빛을 테마로 한 입체형 공원으로 지상 14m의 지붕 ‘물의 우주선’ 위로 올라가 산책할 수 있다. 야경이 장관이다. 나고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나고야 TV타워를 찾자. 180m 높이로 일본 최초로 TV통합 안테나와 전망대 기능을 갖춘 곳이다. 붉은 된장 아카미소를 활용해 만든 미소카쓰(된장돈가스), 히쓰마부시(장어덮밥)는 나고야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그림이 된 여행
기안84가 기억하는 히다 후루카와, 스와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