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맨>을 본 이들이라면 눈여겨봤을법한 배우가 있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닐 암스트롱의 아내, 자넷 암스트롱을 연기한 클레어 포이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클레어 포이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 받는 여성 배우 중 하나다. 영화보단 주로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온 클레어 포이의 얼굴이 다소 낯선 관객들도 있을 터. 앞으로 더 다양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을 그녀의 지난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봤다.
연극 무대 위에서 다진 기본기
영국 출신 배우 클레어 포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연기 공부를 시작했다. 학과에서 공부를 진행함과 동시에 여러 영국 배우들을 배출한 옥스포드 스쿨 오브 드라마(Oxford School of Drama)에서도 <워터쉽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등의 작품으로 연극 무대 위에 오르며 연기의 기본기를 다졌다. TV 데뷔 이후에도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런던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극장, 로열내셔널시어터(Royal National Theatre)를 비롯한 여러 극장의 무대에 올랐던 배우. 지난 2013년엔 제임스 맥어보이와 함께 연극 <맥베스>에 출연하기도 했다.
클레어 포이, 어디서 봤더라?
클레어 포이는 2008년 드라마 <빙 휴먼>에 출연하며 처음 카메라 앞에 섰다. 데뷔한 해 단번에 주연으로 올라서며 영국에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드라마 <리틀 도릿>. 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으로, 그녀는 주인공 에이미 도릿을 연기하며 왕립텔레비전협회(Royal Television Society)가 선정한 최고의 여성 배우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를 거뒀다.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약하던 그녀가 스크린에서 돋보이기 시작한 건 2011년부터. 5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판타지 블록버스터 <시즌 오브 더 위치: 마녀 호송단>에 캐스팅된 클레어 포이는 극 중 마녀로 추정되는 소녀를 연기하며 종잡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레커스>에선 당시 드라마 <셜록>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함께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묻어놓은 비밀을 감추려다 끝내 폭주하는 데이빗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그에 맞먹는 내면 연기를 선보인 클레어 포이의 존재감이 빛났던 작품이다.
2015년에 만난 BBC 드라마 <울프 홀>은 할리우드의 중심으로 떠오른 그녀의 성장에 발판이 되어준 작품이다. 작가 힐러리 맨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헨리 8세와 함께했던 영국의 정치가 토마스 크롬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클레어 포이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을 연기했다. <천일의 스캔들>에서 나탈리 포트만, 드라마 <튜더스>에서 나탈리 도머가 연기했던 그 역할. 냉철하고 지적인 면을 앞세운 클레어 포이의 앤 불린 캐릭터는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클레어 포이는 이 작품으로 영국 아카데미 TV 부문 여우주연, 크리틱스 초이스 TV 부문 여우조연 부문에 제 이름을 올렸다.
2018년 4월엔 앤디 서키스가 연출을 맡은 <달링>으로 스크린을 찾았다. 폴리오 바이러스로 인해 전신이 마비된 환자 로빈 캐번디시가 아내 다이애나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내용을 담은 실화 로맨스. 클레어 포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믿는 다이애나를 연기하며 로빈을 연기한 앤드류 가필드와 극 중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대표작 <더 크라운>으로 온갖 상을 휩쓸다
그녀의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이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전기 드라마로 클레어 포이가 엘리자베스 2세를 연기했다. 아버지 조지 6세(자레드 해리스)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을 전해 들은 엘리자베스 공주는 26세의 나이로 여왕이 된다.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바뀐 엘리자베스는 왕관을 쓰자마자 온갖 난제와 마주한다. 그러나 왕관의 벅찬 무게를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 군주로서의 의무를 이행함과 동시에 아내·언니로서 가족과 갈등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던 인간 엘리자베스의 생애에 집중한 작품.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엘리자베스 2세는 진정한 군주로서 성장해나간다. 온전히 저만의 힘으로 극을 이끌어나간 클레어 포이의 연기가 빛난 작품이다.
클레어 포이는 이 작품으로 2017년과 올해 미국배우조합상의 TV드라마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제74회 골든글로브 TV 부문 여우주연상의 트로피 역시 그녀의 것. 지난해 후보에 오른 것에 그쳤던 에미상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 역시 올해엔 클레어 포이에게 돌아갔다.
시대극 전문 배우?
그녀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드라마 <리틀 도릿>부터 그녀의 대표작이 된 <더 크라운>까지. 클레어 포이는 주로 시대극 속에서 활약해왔다. <리틀 도릿> 이후 선택한 드라마 <판타스틱 우체국>, 전쟁 드라마 <더 프로미스>, 1970년대 방영된 동명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업스테어즈 다운스테어>, 18세기 해적을 다룬 드라마 <크로스본즈>, 앞서 언급한 드라마 <울프 홀>까지. 15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드라마 커리어를 쌓으며 각종 시대를 오고 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온갖 시대를 소화할 수 있는 그녀의 폭넓은 연기력 덕분이다.
앞으로 어디서 볼 수 있죠?
클레어 포이는 11월 신작 <거미줄에 걸린 소녀>로 다시 한번 스크린을 찾을 예정이다. 다니엘 크레이그, 루니 마라 주연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속편으로,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4권을 원작으로 한 작품. 누미 라파스, 루니 마라에 이어 이번엔 클레어 포이가 천재 해커 리스베트를 연기한다. 파격적인 비주얼은 물론 내면마저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그녀가 어떤 식으로 해석해냈을지 궁금할 따름.
북미에서 지난 3월 개봉한 <언세인> 역시 국내에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신작. 자신을 쫓는 스토커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 병원을 찾은 여성이 의도치 않게 입원하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을 스토킹했던 남성을 마주하게 되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았다. <거미줄에 걸린 소녀> <언세인> 모두 그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스릴러물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차차 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클레어 포이. 어떤 작품에서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마는 그녀의 탄탄한 차기작들 속 연기 역시 기대를 걸어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