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국내에서 사랑받은 실존 인물을 다룬 해외의 영화들
2018-11-02
글 : 김진우 (뉴미디어팀 기자)
<보헤미안 랩소디>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10월31일 개봉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외에도 실존 인물들의 삶을 그린 전기(傳記)영화는 최근 쏟아졌다. 7월에는 영국 록밴드 더 스미스를 소재로 한 <잉글랜드 이즈 마인>이, 8월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했던 핀란드의 일러스트레이터 토우코 라크소넨을 그린 <톰 오브 핀란드>가, 10월18일에는 명작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 D. 샐린저의 일생을 다룬 <호밀밭의 반항아>가 국내 개봉했다. 이외에도 지금껏 등장한 전기영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을 그린 외국의 전기영화가 국내에서 흥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 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 윤동주 시인의 삶을 그린 <동주> 등의 국내 전기영화들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외국의 전기영화가 흥행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면, 어떤 외화들이 그 사이에서도 나름 선전했을까. 많은 작품 수를 고려해 정치, 경제 등 각 분야별로 외국 전기영화 흥행작을 모아봤다.

<킹스 스피치>

관객수 : 약 80만 명
<킹스 스피치>

<링컨>, <철의 여인> 등 국가의 지도자들을 소재로 한 전기영화들. 그중 최근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는 2011년 개봉한 콜린 퍼스 주연의 <킹스 스피치>다. 영화는 영국의 말더듬이 국왕, 조지 6세를 그렸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연설을 통해 국민들을 격려하고 통합하며 위인으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킹스 스피치>는 그의 업적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조지(콜린 퍼스)의 웅변 치료 과정과 치료사 라이오넬(제프리 러쉬)과의 우정에 집중했다. 조지 6세를 그저 위인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그의 트라우마와 부담감 등을 보여주며, 왕 조지 6세가 아닌 인간 조지의 극복기를 담았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쉬운 말 한마디가 그에게는 얼마나 큰 역경이었는지를 보여줬다.

<킹스 스피치>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댄디한 외모와 상반된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진 콜린 퍼스지만, 오히려 그 점이 빛났던 영화다. 조지 6세의 딸이자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아버지의 개인사를 그리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막상 영화를 본 후에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행복을 찾아서>

관객수 : 약 61만 명
<행복을 찾아서>

기업인을 다룬 전기영화하면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와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를 다룬 <스티브 잡스>가 떠오른다. 그러나 국내에서 더 큰 인기를 끈 영화는 미국의 사업가 크리스 가드너를 그린 <행복을 찾아서>이다. <킹스 스피치>처럼 <행복을 찾아서>도 이미 성공을 거둔 후가 아닌, 노숙생활을 했던 초창기 크리스 가드너의 삶을 담아냈다.

<행복을 찾아서>는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가 정규직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한다. 그러나 그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궁핍한 생활과 아들(제이든 스미스)을 챙겨야 한다는 사명감. 잘 곳이 없어 아들과 함께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결국 정규직이 되는 데 성공하는 크리스. 회사를 나와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은 차곡차곡 쌓였던 고난과 비례해 큰 울림을 전달했다. <행복을 찾아서>는 이미 해피엔딩이 정해진 영화였지만, 실제 아들과 함께 출연한 윌 스미스의 연기력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기에 충분했다.

<이미테이션 게임>

관객수 : 약 136만 명
<이미테이션 게임>

과학, 수학 분야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했던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삶을 그린 <이미테이션 게임>이 관객수 130만 명을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동성애자였다는 이유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고 화학적 거세를 당한 뒤 자살을 택한 비운의 인물이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베네딕트 컴버배치)과 동료들이 24시간마다 바뀌는 독일군의 ‘애니그마’ 암호 해독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사이, 힘겨웠던 그의 심리를 적절히 섞었다. 전쟁이 끝난 후반부,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그를 외면한다. 2차 세계대전을 2년 단축시키고 수만 명의 목숨을 살린 그였지만 그래서 더욱 안타까움이 더해졌던 영화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섬세한 내면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미테이션 게임> 외에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천재 수학자를 그린 영화로는 2002년 개봉해 5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뷰티풀 마인드>가 있다. <뷰티풀 마인드>는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수학자 존 내쉬(러셀 크로우)의 삶을 그렸다. 현실과 가상이 혼동되는 이야기로 스릴러 영화 같은 긴장감을 연출했으며, 거기에 가족애를 중심으로 드라마 요소도 담아낸 영화다. 이외에도 스티븐 호킹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우주비행사 NASA의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일화를 그린 <히든 피겨스> 등도 있다.

<블라인드 사이드>

관객수 : 약 35만 명
<블라인드 사이드>

스포츠 선수도 빠질 수 없다.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의 성장담을 그린 <블라인드 사이드>. 영화 속 마이클(퀸튼 아론)은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와 헤어지고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소년이다. 그는 우연히 마주친 리 앤(산드라 블록) 부부의 집에서 하루 머물게 되고, 마이클의 따듯한 심성을 본 리앤 부부는 그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마이클 오어의 전기영화이지만, 사실 그녀를 거두어 준 리 앤의 전기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영화는 마이클의 불우한 환경보다 그런 그를 받아들이는 리 앤의 모습을 빈번히 비춘다. 전형적인 미국의 백인 상류층인 그녀가 생면부지의 아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주위의 시선은 어색한 두 사람의 조합을 곱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한 동정심이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느낀 그녀는 마이클을 포기하지 않는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마이클 오어의 성장담인 동시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리 앤의 성장담이기도 한 영화.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곳’을 밝히는 법을 담은 영화는 훈훈한 이야기로 국내에서도 호평과 소소한 흥행을 기록했으며, 미국 현지에서는 제작비의 8배가 넘는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관객수 : 약 34만 명
<아메리칸 스나이퍼>

과연 그를 ‘위인’이라 칭할 수 있을까.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라크 전쟁, 미국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아이의 출산도 보지 못한 채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그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위인이다. 그러나 적국인 이라크, 혹은 국가가 아닌 개인의 시각에서 그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인물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런 그를 ‘전쟁영웅’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그려냈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대신, 영화는 사람을 죽이는 ‘군인’이 느끼는 죄책감, 압박감을 보여준다. 작은 아이가 폭탄을 들고 가는 것을 포착한 크리스(브래들리 쿠퍼). 그는 방아쇠를 당겨야 할지 깊게 고민한다. 이 장면은 긴장감과 더불어 그가 느꼈을 중압감을 잘 대변했다. 보고 싶은 가족을 뒤로하고, 국가의 부름에 달려가는 그에게도 전쟁은 지옥이다.

크리스는 이라크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한 후 평번한 가장으로 돌아오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며 병원을 오간다. 심지어 크리스는 같은 장애를 앓고 있던 퇴역군인을 치료하다 그에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없었던 크리스의 불행한 인생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전쟁영웅의 개인적인 심리에 집중하며 전쟁에 대한 회의와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낸 영화.

<8마일>

관객수 : 약 29만 명(재개봉 포함)
<8 마일>

음악, 미술, 문학, 영화, 패션 등 다양한 예술인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전기영화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지만 국내 성적은 반비례했다. 그중 그나마 많은 관객수를 동원한 영화로는 미국의 블루스, 재즈 뮤지션 레이 찰스의 전기영화가 <레이>가 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음향상에 빛나는 영화는 2004년 국내 개봉해 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러나 <레이>보다 국내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 있다. 미국의 래퍼, 에미넴의 초창기 생애를 그린 <8마일>이다. 악기를 다루는 뮤지션, 노래를 부르는 싱어가 아닌 래퍼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된다. 심지어 <8마일>은 에미넴 본인이 직접 주연을 맡았으며 그의 어머니, 친구 등은 전문 배우가 연기했다.

에미넴 스스로 다큐멘터리가 아닌 전기영화에 출연했지만 <8마일>은 ‘미화’ 혹은 ‘자기자랑’과는 거리가 멀다. 초창기 에미넴의 빈민가 속 밑바닥 인생을 그린 영화는 그를 대단한 인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저 힘든 그의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그가 느꼈던 고통, 의지를 조명했다. 여러 고난을 뚫고 래퍼로서 인정받는 부분은 등장하지만 마지막까지 희망보다는 막막한 그의 삶을 덤덤히 담아냈다. <8마일>은 에미넴이 스스로 인생의 치부를 재현해낸 일기장 같은 영화였다. <8마일>은 2003년 이후 개봉 이후 뒤늦은 인기에 힘입어 2017년 국내 재개봉했으며, 최종적으로 <레이>의 관객수를 웃도는 29만 명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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