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경사기도권]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할로윈>의 전설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18-11-05
글 : 허지웅 (작가)
죗값을 치를 때가 되었다
<할로윈>

전설은, 종종 사소하게 탄생한다. 존 카펜터가 처음에 떠올린 제목은 <베이비시터 살인>이었다. 애초 <블랙 크리스마스>의 속편으로 고안한 이야기였지만 각본 작업을 하면서 독립된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제작비 조달에 난항을 겪으면서 이야기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모든 사건이 하루 동안 벌어지도록 이야기를 수정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특정한 하루가 선택되었다. 핼러윈이었다. 영화 <할로윈>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히치콕의 <싸이코>가 슬래셔 무비 장르의 태조 이성계라면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와 <블랙 크리스마스>는 태종 이방원이었으며, <할로윈>은 세종 이도였다. <할로윈>은 슬래서 무비의 모든 규칙을 집대성했으며, 이러한 규칙은 이후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를 비롯한 슬래셔 무비뿐만 아니라 대개의 호러영화에 의해 계승되었다. 1978년 봄, 단 20일 만에 촬영된 이 영화는 고작 30만달러를 들여 만들어졌으나 당대 “역사상 만들어진 독립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작품”으로 기록되었고 숱하게 많은 속편과 아류작을 양산했다.

존 카펜터는 천재다. 그외에는 그를 표현할 별다른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존 카펜터는 동세대 감독들 가운데 근대적 의미의 천재로 분류될 만한 유일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그리고 존 카펜터가 향후 할리우드를 선두에서 지휘하리라 예상하는 건 별다른 선구안이 없더라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카펜터를 두려워했다. 존 카펜터는 이야기를 쓰고 연출을 하며 음악을 작곡했다. 존 카펜터는 모든 걸 할 줄 알았고,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성취를 언제나 웃돌았다. 그는 범접할 수 없는 천재였다.

세월이 흘러 스필버그와 루카스, 하다못해 피터 잭슨과 샘 레이미처럼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았던 독립영화계의 스타들조차 거대 스튜디오 안에 안착했다. 그리고 예전처럼 소수의 팬덤이 열광하는 영화 대신 절대다수가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존 카펜터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스필버그나 루카스 같은 업계 친구들이 사상 최고의 흥행작을 매번 경신해내는 동안 그는 독립영화계의 천재로 머물렀다. 그는 꾸준했고, 여전했다. 늘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할리우드의 토머스 에디슨이라면, 존 카펜터는 니콜라 테슬라였다. 그리고 그 출발은 <할로윈>이었다.

1978년 존 카펜터는 이미 <다크 스타>와 <분노의 13번가>로 주목받는 신예였다. 앞서 언급했듯 <할로윈>은 캐나다의 전설적인 슬래셔영화 <블랙 크리스마스>의 속편을 구상하던 중 탄생했다. 카펜터가 <블랙 크리스마스>의 광팬이다보니 감독에게 “속편을 써도 되겠느냐”는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이후 이야기를 발전시키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할로윈>이 된 것이다. 처음 출발은 존 카펜터의 대학생 시절 기억이었다. 수업의 일환으로 정신병원을 방문했던 존 카펜터는 어느 소년을 보고 얼어붙었다.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표정이 없었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존 카펜터는 소년을 둘러싼 공기에서 순수한 악을 발견했다. <할로윈>의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는 여기서 출발했다.

이제는 전설이 된, 마이클 마이어스는 본래 여자 이름이었다. 마이클 마이어스는 존 카펜터의 첫 번째 여자친구 이름이다. 왜 살인마 이름을 첫번째 여자친구 이름으로 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엉뚱한 사람이니까. 그의 악취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리즈를 통틀어 마이클 마이어스와 대적했던 정신과 의사 루미스 박사의 이름 ‘샘 루미스’는 존 카펜터의 전작 <분노의 13번가>를 유럽에 배급한 담당자의 이름이었다. 그는 “고마워서”라고 이유를 밝혔으나 그게 정말 당사자가 고마워할 일인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

마이클 마이어스를 상징하는 마스크에는 두개의 후보가 존재했다. 하나는 서커스 광대 마스크였다. 광대는 무섭다. 이건 이후 스티븐 킹의 <그것>에서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당시 잡화점에서 핼러윈 코스튬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1달러짜리 커크 선장(<스타트렉>) 마스크였다. 스탭 테스트를 돌린 결과 후자가 압도적으로 무섭다는 의견이었다. 광대 마스크는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1달러짜리 커크 선장 마스크는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밑도 끝도 없이 무섭다는 것이다. 결국 이 1달러짜리 커크 선장 마스크가 채택됐다. 이 마스크는 더이상 ‘커크 선장 마스크’로 불리지 않는다. 이건 ‘마이클 마이어스 마스크’가 되었다.

마이클 마이어스를 연기한 닉 캐슬은 고충을 토로했다. 도대체 살인마의 동기를 모르겠다는 게 이유였다. 동기를 알 수 없으니 연기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존 카펜터는 이에 대해 닉 캐슬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마이클 마이어스가 사람을 죽이는 동기는,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니까요.” 즉 마이클 마이어스에게 살인이란 그저 본래 타고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고, 동기도 없다. 존 카펜터가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사이코 살인마를 만들어낼 때만 하더라도 ‘사이코패스’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존 카펜터가 젊은 시절 정신병원에서 마주했다는 그 소년이야말로 바로 그 사이코패스의 전형이었을지 모른다.

<할로윈>

마이클 마이어스와 함께 이제는 아이콘이 된 ‘안티 마이클 마이어스’ 샘 루미스에 관해서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본래 존 카펜터는 피터 쿠싱이나 크리스토퍼 리에게 샘 루미스 역할을 맡기고 싶어 했다. 피터 쿠싱과 크리스토퍼 리는 유니버설 영화사의 몬스터 프랜차이즈에서 반 헬싱과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한 아이콘이다. 크리스토퍼 리는 지금 세대에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으로 더 유명할 것이다. 둘 다 “출연료가 터무니없이 적어서” 샘 루미스 역할을 거절했다. 크리스토퍼 리는 이후 샘 루미스 역할을 거절한 일에 관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후회하는 결정”이라고 술회했다.

<할로윈> 이야기를 하면서 이 시리즈의 히로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사실상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로리 스트로드를 연기한 제이미 리 커티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쓴 그녀는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저 유명한 희생자 마리온을 연기했던 재닛 리의 딸이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할로윈> 이전에도 단역을 연기한 바 있었지만 제대로 된 배역, 그것도 주연을 연기한 건 <할로윈>이 처음이었다. 일종의 파격적인 캐스팅이었다. 사실상 어머니 재닛 리가 <싸이코>에서 연기한 마리온의 후광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제이미 리 커티스는 <할로윈>을 통해 자신만의 오리지널티를 만들어냈다. 재닛 리는 <싸이코>의 저 전설적인 샤워 살인 장면으로 역사상 첫 번째 ‘호러 퀸’이 되었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할로윈>을 통해 역사상 가장 완성적인 ‘호러 퀸’이자 첫 번째 ‘스크림 퀸’, 즉 비명의 여왕이 되었다. 재미있는 일이다. <싸이코>가 슬래셔 무비의 시작을 알리며 재닛 리를 호러 퀸으로 인식시켰는데, <할로윈>이 슬래셔 무비의 완성을 선언하며 그 딸을 호러 퀸의 정석으로 자리매김시켰으니 말이다.

정작 그녀는 첫 번째 촬영 이후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 너무 실망한 나머지 주연이 교체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10대이고, 자신감이 없었다. 그날 밤 존 카펜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당연히 “너는 해고”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카펜터는 그녀의 연기에 매우 만족했고, 축하를 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었다. 이후 그녀를 안심시키고 스스로의 연기에 확신을 갖게 하려는 조치가 취해졌다. 존 카펜터는 제이미 리 커티스가 연기할 때마다 ‘이 장면은 로리 스트로드가 어느 정도로 겁에 질려 있다’를 1부터 5까지의 숫자로 세분화 해 알려주었다. 그렇게 제이미 리 커티스는 비명의 여왕이 되었다.

<할로윈>은 숱하게 많은 속편을 낳았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그 가운데 4편에 출연했다. 1편과 2편, 그리고 20주년판과 그 속편에서 로리 스트로드를 다시 연기했다. 그로 인해 참 많은 타임라인이 생성되었다. 1편과 2편이 한 묶음이다. 4편에서 5편까지가 또 한 묶음이다. 1편과 2편, 그리고 20주년판과 그 속편이 또 다른 한 묶음이다. 세 가지 묶음이 모두 다른 타임라인의 설정을 가지고 있다. 1편의 피해자 로리 스트로드는 2편에서 마이클 마이어스의 또 다른 혈육으로 밝혀졌다. 4~5편에서 로리 스트로드는 이미 고인으로 분류된다. 20주년판과 그 속편에서는 이름을 숨기고 다른 신분으로 살아왔다가 다시 찾아온 마이클 마이어스의 도전을 겪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리고 지금, 가장 최신의 <할로윈> 시리즈가 당도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타임라인이 만들어졌다. 굳이 따지자면 5번째 타임라인이지만 <할로윈3>는 <할로윈> 시리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마이클 마이어스가 없는 <할로윈> 시리즈라니), 사실상 4번째 타임라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타임라인은 원작 이후 모든 속편을 무시하는 새로운 이야기다. 즉, 1편 <할로윈>의 살인사건으로부터 40년 이후 벌어지는 유일한 속편이라는 것이다. 로리 스트로드는 언젠가 마이클 마이어스가 반드시 돌아오리라 예견하고 언제나 준비해왔다는 설정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로리 스트로드가 더이상 마이클 마이어스의 숨겨진 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리 스트로드가 마이클 마이어스의 숨겨진 누이라는 설정은 2편에서 만들어졌다. 복기해보면 다소 치명적인 설정이었다.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캐릭터를 일종의 집착적인 존속 살인범으로 제한하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마이어스는 그저 순수한 악을 상징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일 때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가 된다. 마이클 마이어스가 로리 스트로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저 자신의 피해자 가운데 그녀가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 로리 스트로드의 현실은 다소 팍팍하다. 마이클 마이어스를 이기기 위한 수십년 동안의 광기어린 준비성 때문에 두번 이혼했고 딸은 어머니를 등졌다. 로리는 홀로 외롭게 살면서 흡사 <터미네이터2>의 사라 코너처럼 준비에 만전을 기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40년 만에 마이클 마이어스가 정신병원을 탈출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존 카펜터가 4일 만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할로윈>의 익숙한 오리지널 스코어와 함께 시작된다(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국내 유수의 탐사 시사 프로그램들에서 BGM으로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듣자마자 반가우리라). 샘 루미스 박사는 이미 고인으로 설명된다. 다큐멘터리팀이 정신병원에 수감 중인 마이클 마이어스를 방문해 40년 전의 ‘베이비시터 살인사건’에 관해 질문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이클 마이어스는 탈출에 성공하고, 다시 한번 해든필드를 찾아간다. 해든필드.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부히스에게 크리스털 호수가 있고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에게 엘름 스트리트가 있다면,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에게는 해든필드가 있는 것이다.

오리지널의 상황이 자주 복기되어 연출되는 이번 영화에서, 백미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전된 위치다. 로리 스트로드는 더이상 일방적인 희생자가 아니다. 그녀는 준비해왔고, 비명이나 열심히 질러대는 피해자이기를 거부한다. 마이클 마이어스는 이제 그 죗값을 치를 때가 되었다.

오리지널에서 마이클 마이어스가 로리에 의해 발코니에서 떨어진 뒤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는 엔딩은 이번 최신작에서 역전되어 반복된다.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통쾌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일방적인 희생자였던 로리 스트로드가 가해자 마이클 마이어스를 계획한 대로 처단하고 40년 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은 올드팬의 눈물을 자아내게 만든다. 복수하리라. 살아남으리라. 그리고 번성하리라. 로리 스트로드와 함께 나이 먹은 우리는 <할로윈> 시리즈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영리하고 명민한 이번 속편을 통해 일종의 치유를 경험하는 듯싶다. 내게 이번 <할로윈>은 힐링 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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