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주성치 인터뷰
2002-04-25
“한국이 부럽다, 여건이 된다면 합작하고 싶다”

주성치가 처음 꺼낸 화제는 한국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홍콩에선 너도나도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며 인사도 채 하기 전에 첫마디를 건넨 그는, 역동적인 한국영화와 그 인력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인터뷰 틈틈이 계속했다. 그는 정말, 혼자 홍콩영화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소림축구>는 홍콩영화의 침체 속에서도 보기 드문 성공을 거뒀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음악이 그런 것처럼, 축구도 세계 공통의 언어다. 게다가 소림 무술을 축구와 결합해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은 전에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림축구>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가족영화고, 이야기도 신선하기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물론 더 많은 나라, 일본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흥행했으면 하는 소망은 있다.

<소림축구>는 홍콩영화치고는 보기 드물게 긴 제작기간과 제작비가 들어갔다. 당신이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한 영화인 것 같다.

나는 축구와 쿵푸를 무척 좋아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전에는 어떻게 찍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철저하게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촬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인력을 조율하고 연기 훈련하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다. 촬영은 넉달 정도 한 것 같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이미지를 컴퓨터그래픽으로 옮기는 일이 가장 힘들었지만, 완성된 CG는 거의 내가 구상한 그대로여서 만족한다.

전보다 많이 온건해진 것 같다. <소림축구>에는 날계란이 남자들 입안에서 왔다갔다하는 장면 말고는 보기 힘든 부분이 거의 없다.

이번엔 배설물이나 콧물 같은 게 필요없는 건강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지저분해질 것이다. (웃음)

당신의 코미디는 뻔뻔한 경지에까지 이른 것 같다. 웬만큼 자신이 있지 않고선 그런 연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실수를 하면서 배운다. 관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웃기고 싶었는데 관객이 웃지 않을 수도 있고, 나는 그저 실수한 것뿐인데 폭소가 터져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써먹는다. 그러다보면 실수가 아닌데도 실수한 것처럼 뜻밖의 웃음을 끌어낼 수 있다. 또 나는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한국에도 그때그때 유행하는 은어가 있을 거다. 홍콩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지 조사해서 내 생각과 절충한다. 그래도 생각지 못한 일들이 터지곤 한다.

<소림축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주인공이 쓰레기 보따리를 메고 쓸쓸하게 걸어가는 장면이다. 그는 훌륭한 무술인이고 큰 꿈을 갖고 있는데 세상은 그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너무 고독해 보인다.

이젠 거의 감독과 연기를 함께하고 있다. 영화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했는데, 행복한가.

감독과 연기를 동시에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생스러운 일이다. 감독을 하다보면 내 연기에 신경 쓰지 못하고 다른 배우들만 보게 된다. 감독은 생각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 인생에서 기분이 가장 다운된 시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가 상영되면 너무 행복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다.

<소림축구>에 출연한 신인들은 당신이 매우 훌륭한 연기 스승이라고 말했다.감독인 동시에 배우로서, 당신은 다른 배우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변화를 좋아한다. <소림축구>가 이전과 달리 동작보다 액션이 많아진 까닭 중 하나도 그것이다. 나는 오맹달이나 막문위, 황일비 등 비슷한 배우들을 자주 쓰지만 그들의 영화 속 모습은 항상 다르다. 배우들에게 역을 줄 때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재미있다. 이것은 내 능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지금 내 팀은 나와 무척 친하기도 하지만 연기를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특히 오맹달과는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정상에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나.

나는 항상 배우로서 내 재능에 좌절한다. 하지만 사람 인생에는 꼭 굴곡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 신경 쓰지는 않는다. 제일 높이 있을 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제일 밑에 있을 때 너무 실망하지 말 것. 내 신조다.

지금 홍콩영화는 매우 침체돼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인을 키우지 않아서다. 나는 의식적으로 신인을 발굴하려 하지만, 홍콩엔 재능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지금 홍콩을 보면 무너지는 심정이 된다. 그래서 한국이 너무 부럽다. 얼마 전에 <엽기적인 그녀>를 봤다. 재미있고 전지현이라는 배우도 뛰어났다. 여건이 된다면 한국 영화인들과 합작하고 싶다.▶ 울트라 폭소 히어로, 주성치 웃음공작실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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