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과 수비가 바뀌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이하 국감)는 정권이 바뀐 지 불과 5개월째 치러졌기에 반쪽짜리였음을 감안하면 올해가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첫 국감인 셈이다. 올해 국감에서 나온 영화계 이슈만 놓고 본다면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한 여당은 여당대로, 국감을 여전히 색깔론과 정쟁에 활용한 야당(특히 자유한국당)은 야당대로 창끝이 날카롭지 못했다. 20대 국회 후반기부터 원래의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교육위원회(이하 교육위)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위원장 안민석 의원)로 나뉘면서, 사립 유치원 비리 사태가 국감 기간 내내 사회적 이슈를 주도했던 교육위와 달리 문체위는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도가 뒤떨어진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그럼에도 안민석 문체위 위원장은 “(김수민 의원이 한복을, 이동섭 의원이 태권도복을 입고 온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보여주기식 국감이 아니냐고 비판하지만 문체위는 어느 상임위보다 품격 있고, 정책과 콘텐츠가 풍부한 국감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자평했다. <씨네21>은 올해 국감에서 나온 영화계 이슈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의와 답변을 모아 정리했다.
#10월 10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문체위 회의실_문화체육관광부 국감
“블랙리스트는 유행이 지난 국감 아이템이다.” 국감이 시작되기 전 몇몇 국회 보좌관들 사이에서 나온 얘기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이행 계획에 미흡한 태도를 보이면서 문제가 다시 불거졌지만,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징계(처벌) 시한이 끝난게 아닌가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예상대로 문체위의 문체부 국감이 시작되자 블랙리스트 문제는 자유한국당 의원 몇몇이 색깔론이나 정쟁의 대상으로 이용한 경우를 제외하면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문체위 국감은 영화계와 관련된 이슈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전초전이었다. 이날 국감에서 나온 영화산업 관련 이슈는 크게 블랙리스트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 두 가지였다.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경기 용인시병)은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가 공정하게 진행됐나?”(한선교)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보고받았다.”(도종환) “박근혜 정부가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추구했듯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불공정의 공정, 불공평의 공평의 원칙으로 조사했나? 그런데 나는 진상조사위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 조사 대상을 박근혜 정부로 한정지었나?” (한선교) “그 정권에서 일어난 사태이기 때문이다.” (도종환) “그런데 왜 이명박 정권까지 조사했나.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화이트리스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블랙리스트였다. 장관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 대한) 가치관이 불공정하다.”(한선교)
초선이었던 17대 국회 이후 14년 만에 문체위에 복귀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서대문구갑)은 문체부에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우 의원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는 영화계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해 당장 해결하기 쉽지 않지만 스크린 독과점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한 영화가 몇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국회에서 계류된 스크린 독과점 관련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상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대답했다(도 장관은 의원 시절 CJ, 롯데 같은 대기업이 영화배급업과 영화상영업을 겸업할 수 없고, 극장은 상영관을 시간, 요일별 관객수, 상영시간대 등을 고려해 상영관을 공정하게 배정해야 한다는 등 영화산업의 공정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내용들을 담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편집자). 하지만 이외에 영화산업과 관련된 문제 제기는 없었고, 이마저도 새로운 이슈가 아니기에 선동열 야구국가대표팀 감독을 증인으로 부른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마포구을)의 ‘야(구)알(지)못(함)’ 논란에 묻히고 말았다.
#10월 18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문체위 회의실_영화진흥위원회 국감
이날은 문체부 소관 12개 기관에 대한 감사가 한꺼번에 이뤄졌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집중적으로 받은 질의 내용은 내년 독립영화 관련 사업 예산 삭감 문제와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에 관련한 것이었다.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광주 북구을)은 “문체부나 영진위가 블랙리스트 피해를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복원을 약속했던 독립영화 지원 관련 사업 예산이 줄줄이 삭감됐다”며 “피해를 당한 독립영화단체와 피해자들에 대한 정상화 의지마저 사라진 건 아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오석근 영진위 위원장은 “블랙리스트 피해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속도가 느리고,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국회 예산 심의를 앞두고 의원님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2019년 독립예술영화 예산안을 면밀히 들여다보니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54억6천만원),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6억8천만원), 국내 영화제 육성(6억3100만원), 독립영화제 개최 지원(1억1200만원) 등 4개 사업 예산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동결됐다. 영화교육(지역영상향유, 6억100만원), 독립예술영화전용관(23억1600만원) 등 사업 2개의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각각 4억9천만원, 3억1천만원 삭감됐다. 올해 처음 편성된 전용관 통합예매시스템구축사업 예산은 2억7천만원으로 책정됐다. 수치로 따지면 최경환 의원의 지적이나 영화계 일각에서 나오는 비판처럼 올해 독립영화 지원과 관련된 예산이 삭감되거나 동결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전년도에 비해 삭감된 영화교육 지원 사업은 충무로에 위치한 서울영상미디어센터 직영을 중단하고 위탁으로 운영 방향을 변경하면서 필요 없게 된 위탁관리비(작품 선정 및 상영관 관리) 예산이 감액된 것이다. 지난해 독립영화전용관을 설립하는데 필요한 예산을 지원했던 독립영화관 지원 사업 또한 신규 극장 설립에 대한 수요와 사업 실효성이 없기에 신규 설립 예산이 감액된 것이다. 그러니까 제작, 배급, 상영 사업 예산 총액은 2018년에 비해 총 4300만원이 감액된 셈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좀더 많은 예산 편성과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다소 아쉬울 수 있는 결과다. 영진위는 내년 독립영화 지원 사업의 예산편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2019년 예산편성 과정에서 영진위는 예산승인 당국인 기획재정부에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사업 예산은 41억원 증액, 독립예술영화 기획전 및 관객 지원 사업 예산은 11억7천만원 증액,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전용예매발권시스템 사업 예산 15억6천만원, 전용관 관람환경 개선 18억원, 국내 영화제 지원 사업 예산 3억원, 서울독립영화제 지원예산 1억9천만원 증액을 요구했다. 특히 상영 및 배급 부문 예산 증액이 중요하니 전용관 예매발권시스템 및 관객지원금 예산과 국내 영화제 지원 예산, 서울독립영화제 지원 예산 등 독립영화 상영환경 개선 예산의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마지막까지 기재부에 요구했으나, 전용관 통합예매시스템구축사업 2억7천만원 외에는 예산안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앞으로 진행될 국회의 예산 승인 과정에서 독립영화의 창작, 배급 및 상영 활성화에 필요한 예산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는 게 영진위의 입장이다. 사실상 예산 편성 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나 상위 기관인 문체부가 아닌 소관 기관인 영진위가 독립영화 지원과 관련된 예산안을 삭감하거나 동결했다는 비판을 받는 건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영진위에 집중적으로 질의한 부분은 지난 7월 5일 발족된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에 관한 부분이었다.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경북 상주시군위군의성군청송군)은 7월 5일과 8월 29일 각각 열린 1, 2차 회의록을 공개하며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에서 나온 의견들이 북한에 대한 제재 위반임을 지적했다. 김 의원이 공개한 1차 회의록에 따르면, 한 참석자는 “개성은 350만평 정도가 공단이고 나머지 1천만평이 배후도시 용도로 남북이 합의돼 있는데, 우리가 거기서 대규모 촬영장을 시도해볼 수 있겠는가 알아보니 (북측이) 충분히 검토 가능한 안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아직은 개성공단은 장벽이 높다. DMZ 안은 남과 북 누구 땅도 아니니까 그곳에 세트장을 짓자고 하면 더 많은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농구 교류 협력은 금방 진행되지 않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필 받으면 영화는 일사천리로 간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2차 회의 때는 남북 영화 교류를 위한 기업 컨소시엄이 논의되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개성공단에 영화 촬영장 부지 확보 문제를 정책적으로 잘 풀면 기업은 당연히 컨소시엄을 할 거다. CJ는 참여할 거고, 국민주가 상당 부분 있어야 한다”며 “이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 제안하자”는 의견을 냈다. 김재원 의원은 “남북 영화 교류를 하면 북한이 영화를 체제 선전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며 “개성공단에 남북 공동 촬영소를 만들어 그곳에서 영화를 찍는 건 제재 위반”이라고 말했다. 오석근 위원장은 “영진위 차원에서 북측 상황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영화교류특별위원회 의원들이 각자가 가진 아이디어를 공유한 내용”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국감 전부터 한선교 의원의 이준동 영진위 부위원장 돌출(?) 증인 신청이 국회 안팎에서 궁금증을 유발했는데, 이날 한선교 의원의 이준동 부위원장에 대한 질의는 맥락이 없어 일찌감치 김이 샜다. 굳이 이준동 부위원장과 관련된 내용을 끄집어내자면, 지난 10월 10일 열린 문체부 국감에서 이준동 부위원장이 제작한 영화 <버닝>(2018)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었다. “<버닝>이 모태펀드로부터 투자받았다는 사실이 지적되었”으나 도종환 장관이 “영진위가 <버닝>에 지원한 적 없다”고 대답하면서 일단락됐다.
#10월 19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_KBS 국감
<씨네21>은 1178호 포커스 ‘<인천상륙작전>은 건전애국영화일까’를 통해 공영방송 KBS가 영화 시나리오와 예상손익서 한장으로 <인천상륙작전>에 30여억원 투자를 결정했고, KBS의 30억원과 IBK기업은행의 20억원을 합친 50억원은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가 건전영화에 지원해주라고 지시한 그 50억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이날 국감이 끝난 뒤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비례대표)은 KBS에 추가 질의를 보냈다. KBS가 보내온 답변을 모아보면, KBS 진실과미래위원회는 KBS 콘텐츠 특수목적회사와 KBS 미디어가 30억원이라는 많은 액수의 돈을 짧은 시간에 투자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당시 KBS 콘텐츠 특수목적회사와 KBS 미디어에 제출된 <인천상륙작전> 시나리오와 예상손익서는 KBS가 요구한 자료가 아니라 태원엔터테인먼트가 투자 제안 형식으로 제출한 자료라고 했다. KBS 콘텐츠 특수목적회사가 제1차 투자운용위원회에서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으로 참여해 안정적인 스크린 수 확보가 가능’한 이유로 투자하기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린 건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가 CJ엔터테인먼트의 배급 및 투자 참여 계획을 공유”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또 KBS 콘텐츠 특수목적회사는 회사가 아닌 콘텐츠 투자 목적으로 조성된 펀드이므로,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KBS본부의 KBS2TV 제작투자부가 제1차 투자운용위원회 영화투자안을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언론노조 KBS본부는 <씨네21> 보도가 나간 뒤 ‘전홍구 감사실은 뭐하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 KBS는 왜 상업영화에 이례적으로 30억원을 투자한 것인가, 과연 투자의 의사결정 과정은 적법했나”라며 “전홍구 감사실은 <인천상륙작전>이 누구를 위한 영화였는지 투자 과정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10월 23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실_한국벤처투자 국감
한국벤처투자(이하 한벤투)가 운용하는 모태펀드가 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를 실행한 정황이 있었는데도 지난해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 국감에서 이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노원구병)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영화 <판도라>(2016)의 모태펀드 투자 배제 과정에서 깊숙이 관여한 사실을 언급하며 국회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던 주형철 한벤투 대표를 불러세웠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벤투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영향을 끼쳤나?”(김성환) “그런 의혹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주형철) “그게 의혹인가?”(김성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조사한 결과에 대해 처분 조치가 있다. 적극 협조해 조치하도록 하겠다.”(주형철) “한벤투가 <변호인> 같은 영화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한 건 사실 아닌가?”(김성환) “올해 초 대표로 선임돼 특정 영화나 창투사에 투자 선정이 배제된 과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는데 특정한 배제 패턴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권고안을 따르겠다.”(주형철) “다시는 불합리한 지원 배제가 없도록 내부 안전 장치를 만들어라.”(김성환) “권고안을 따르는 동시에 제도를 개선하겠다. 출자심의위원회에 들어가는 구성원을 전원 교체했고, 누가 심사에 참여하는지 사전에 알지 못하게 심사위원 선정 프로그램을 설정했다.”(주형철) 주형철 대표의 답변과 달리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조사한 ‘모태펀드 영화계정 운용을 통한 국가기관의 부당한 개입 의혹 사건’ 조사 결과는 이미 나왔고, 권고안 또한 한벤투에 전달됐으며, 한벤투가 모태펀드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실행해 특정 영화와 창투사를 배제하거나 특혜를 준 사실이 진상 조사 결과 보고서에 적시돼 있다. 한벤투는 김성환 의원의 요구대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권고안을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 <판도라>가 모태펀드 블랙리스트에 올라 모태펀드 투자를 받지 못한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돼 새로운 이슈는 아니지만, 산자위에서 박근혜 정권의 한벤투가 실행한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에 대해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