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김보통 작가의 <키즈 리턴> 아직 상영 중
2018-11-13
글 : 김보통 (웹툰 작가)

감독 기타노 다케시 / 출연 안도 마사노부, 가네코 겐 / 제작연도 1996년

시작에 관한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피를 흘리며 링 바닥에 쓰러진 안성기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계속 해볼랍니다!”라고 외치는 이장호의 <바람불어 좋은날>(1980)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연인을 뒤로하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려 길을 떠나는 주성치의 <서유기 선리기연>(1995)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이다. 목적 없이 부유하는 해파리 같은 고등학생 마사루와 신지. 수업은 흥미가 없어 학교에서는 노상 장난만 치고,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프라모델’이라고 답하는 둘. 주위의 시선은 당연히 따갑기만 하고 어른들은 기대를 버린 지 오래. 언제나처럼 시시껄렁한 짓을 일삼던 어느 날, 권투 선수에게 두들겨 맞은 마사루는 그 선수가 다니는 체육관에 등록을 해버린다. 복수를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따라 구경 온 신지와 장난삼아 한 스파링에서 케이오를 당한 마사루. 그는 권투를 그만두고 야쿠자 똘마니가 돼버리고, 늘 마사루의 똘마니로 살아왔던 신지는 프로 선수를 목표로 권투를 시작하게 된다.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자, 그제야 서로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종종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서 “저는 작가가 되기에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라는 질문을 받는다. 물어보는 사람의 나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10대가 많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면, 같은 목표를 가진 또래의 친구에 비해 시작이 늦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정석적인 과정(관련 대학과 전공)을 밟지 못할 것 같아 늦은 것만 같다고 답한다. “이런 제게 작가님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라는 것이 공통된 끝맺음이다. 언제나 비슷한 질문이다 보니 대답 역시 늘 비슷하다. “저는 지금 운좋게 작가가 되어 이렇게 독자분들을 만나고 있지만, 작가가 되기 전까지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은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내게 다가온 기회들을 가능성 계산치 않고 부여잡으며 살다보니 예전엔 회사원이었고, 이후엔 만화가가 되었으며, 지금은 수필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작가란 지금 입고 있는 옷일 뿐입니다. 내일이라도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것을 잡을 겁니다. 작가로서 쌓아온 명성이나 경력같은 것에 미련은 없습니다. 영원히 작가로 살아가겠다는 신념도 없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작가 생활을 오래하지 못하겠지만, 그렇기에 작가로서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저는 다시 또 아무나가 되어, 무언가를 하며 살겠지요. 그게 무엇이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체로 질문을 한 사람은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내게 기대한 것은 이런 되지도 않는 헛소리가 아닌 구체적인 지침일 테니까. 나도 안다. 부실하게라도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 쪽이 더 만족스러울 테지만 매번 그러지 못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키즈 리턴>의 결말은 처참하다. 둘 다 자신의 길이라 믿었던 곳에서 무참히 패배한다. 영락없는 낙오자 꼴을 한 채 마주친 둘. 신지는 묻는다. “우리 끝난 거 같죠?” 마사루가 답한다.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영화를 만들기 전,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얼굴이 함몰되어 후유증으로 안면마비를 얻었다. 개그맨이자 배우인 그에겐 치명적이라, 병실에 앉아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바라보며 스스로도 ‘인생 70%쯤은 망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회복 후 처음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끝에서 시작을 말하는 영화 <키즈 리턴>이다. 삶이 영화라면 우리는 아직 한창 상영 중이다. 상영이 끝나고 객석을 떠나야 할 때 아쉬움이 남지 않으려면, 우선은 관람에 집중하자. 결말 걱정은 나중에나 할 일이다.

김보통 웹툰 작가. <아만자> <DP 개의 날> 등 만화를 그리고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등 산문집을 썼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