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작 <할로윈>의 주연배우들이 40년 만에 그대로 복귀한 <할로윈>. 1986년작 <여곡성>을 32년 만에 리메이크한 <여곡성>. 제목마저 동일하게 지으며 ‘고전의 맥을 잇는다’는 정체성을 띤 동서양의 두 공포영화가 함께 극장에 걸렸다. <할로윈>은 북미에서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여곡성> 역시 진부한 스토리로 혹평을 피하지 못했으니, 원작의 아성을 따라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각 나라의 고전 공포영화를 토대로 한 만큼, 두 영화는 동서양의 공포 코드를 관찰하기에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동양과 서양의 공포영화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장르의 혼합, 공식을 깨는 신선한 공포영화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지만 ‘상대적인 기준’으로 동서양의 공포영화를 비교해봤다.
종교적 배경 차이
‘종교’는 공포영화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소재다. 악마, 사후세계 등 공포를 유발하는 요소가 많이 담겨있기 때문. 이런 영화는 당연하게도 각 문화권의 중심이 되는 종교가 주가 된다. 대체적으로 서양에서는 천주교, 기독교를 바탕으로 악마, 악령 등이 등장했다.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는 고전 공포영화하면 빠질 수 없는 <엑소시스트>가 있겠다. 충격적인 비주얼과 ‘구마 의식’이라는 신선한 스토리로 신드롬을 일으킨 <엑소시스트>는 수많은 유사 영화들을 배출했다. 또한 <오멘>,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등 이후 등장하는 여러 공포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동양권에서는 불교, 무속 신앙 등의 요소가 빈번히 등장했다. <셔터>, <미러> 등으로 공포영화 강대국으로 부상했던 태국에서는 불교의 카핀 의식(살아있는 사람이 관에 들어가 소원을 비는 의식)을 소재로 한 <카핀>이 2008년 제작되기도 했다. 또한 종교가 중심 아니더라도 귀신을 쫓기 위해 굿을 하는 무당, 기도를 올리는 스님 등의 이미지는 동양 공포영화의 단골 장면이었다. 특정 종교를 바탕으로 하진 않았지만 십자가, 부적 등 여러 종교적 소재를 끌어온 국내 영화 <불신지옥>도 있다. 동양에서도 익숙한 기독교, 천주교는 영화로도 종종 등장했지만 반대로 서양에서는 동양 발단의 종교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고전 귀신에 대한 사랑
서양의 공포영화에 비해 동양의 공포영화는 고전 캐릭터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특히 흰 소복과 긴 머리를 자랑하는 처녀 귀신의 이미지는 동양 영화 속 ‘귀신’의 상징처럼 사용됐다. J 호러 대표작인 <링>, <주온> 등의 영화에서도 이런 형상의 귀신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 <알 포인트>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대표적인 동양 귀신 ‘강시’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도 꾸준히 나왔다. 호러보다는 코미디에 가깝지만 1980년대, <강시선생> 시리즈가 비디오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2013년에는 웃음기를 빼고 판타지와 그로테스크를 더한 <강시: 리거모티스>가 제작되기도 했다.
반면 서양에서는 고전 캐릭터보다는 현대 요소의 호러 캐릭터를 새롭게 창출한 작품들이 많다. <프랑켄슈타인>(1931), <드라큘라>(1931) 등 고전 공포 캐릭터를 앞세운 고딕소설(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유행한 중세 배경의 공포소설) 원작의 영화들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이런 캐릭터들은 공포보다는 주로 액션 블록버스터 속 캐릭터로 활용됐다. 또한 동양에서는 아예 시간 배경을 근대 이전으로 둔 사극 공포영화들도 꾸준히 등장했다.
괴기한 모습의 괴수들
서양의 공포영화에서 슬래셔 무비와 함께 고전 캐릭터들의 빈자리를 차지한 것이 SF와 호러를 결합한 영화들이다. 미국이 세계 영화 시장의 패권을 쥐고, 타국에서는 불가능한 막대한 예산이 할리우드에서는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특수분장을 넘어 특수 제작에 가까운 괴수들이 등장하는 SF 호러 영화들이 제작됐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1979)과 존 카펜터 감독의 <더 씽>(1982)이 있다. 동양의 공포 캐릭터 역시 괴기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인간’을 완전히 벗아난 모습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동양에서는 사람을 모습을 했지만 소름 끼치는 표정 등으로 공포를 유발하는 캐릭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15년, <SBS>에서 2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서양의 공포 차이 분석’에서는 “서양인은 귀신보다는 기괴한 형체를 더 무서워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꼬마 귀신의 경우 동양인은 75%, 서양인은 45%가 무섭다고 답했다”라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호러인가 액션인가
지금부터는 ‘소재’가 아닌 내용 측면에서의 동서양의 공포영화 차이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서양 공포영화에는 ‘액션’이 빈번히 등장한다는 것. 동양의 공포영화 속 인물들은 주로 귀신을 피하기 바쁘다. 반면 많은 서양의 공포영화 속 인물들은 후반부에 들어서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에 맞선다. 이는 앞서 말한 슬래셔 무비, 괴수 영화들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 영화들에는 귀신이 아닌 물리적인 형체가 있는 존재들이 등장하기 때문.
동양의 귀신 격 존재인 악령과도 액션을 펼치기도 한다. 2017년 광대 공포증을 소재로 역대 공포영화 흥행 성적을 갈아치운 <그것>에서는 악령 ‘그것’이 등장하지만, 아이들과 육탄전을 벌이기도 한다. <할로윈>(2018)에서는 주인공 로리(제이미 리 커티스)가 살인마 마이클(닉 캐슬)에게 대적하기 위한 사격 훈련 장면도 등장했다. 또한 서양의 공포영화들은 동양에 비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액션을 결합해 인물들의 ‘극복 과정’을 담았다. 물론 유명 시리즈 영화라면, 괴물 혹은 살인마가 죽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안)비밀.
반전과 함께 사연이 두둥!
이번 특징은 동양 공포영화보다 한국 공포영화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바로 귀신에 얽힌 ‘한 맺힌 사연’과 ‘반전’의 결합이다. 서양의 공포영화에서도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익사당한 제이슨. 그러나 서양의 공포영화에서 이러한 사연은 배경 설명 정도로 등장한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에서는 귀신 혹은 범인의 사연을 후반부 반전과 함께 풀어낸 공포영화들이 빈번히 등장했다. 한국 공포영화 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까지는 ‘반전과 사연’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윤재연 감독의 <여고괴담 3 - 여우 계단> 등의 영화는 감춰진 사연으로 관객들의 놀라움을 샀다. 그러나 같은 레퍼토리는 지루함을 부르는 법. 2010년대로 넘어가며 앞선 공포영화들의 클리셰로 무장한 영화들은 “예상 가능한 결말, 신파”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로 일본의 <착신아리 2>가 기존 영화에서 본 듯한 귀신, 사연과 멜로까지 섞은 과한 설정 등으로 혹평을 받기도 했다.
2018년에는 사연 없이 오로지 ‘공포 유발’에만 집중한 국내 영화 <곤지암>이 개봉해 260만 명의 관객을 동원,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 일까
온갖 공포 캐릭터들이 총집합한 <캐빈 인 더 우즈>에서도 주인공 데이나(크리스트 코놀리)는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악령을 깨우는 주문을 왼다. 요리보고 조리봐도 너무 위험해 보이는 동굴을 탐사하다 괴물들을 마주하는 영화 <디센트>도 마찬가지다. 동양의 학교 배경 공포영화에서도 철없는 십대들이 등장, 귀신을 깨우기도 하지만 십대를 주인공으로 한 공포영화가 많이 등장하는 서양 공포영화에서 빈번히 볼 수 있는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