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주성철 편집장] 김용과 신성일 두 번째 그리고 스탠 리 추모
2018-11-16
글 : 주성철

지난주에 김용 작가와 신성일 배우에 대한 추모글을 썼다. 하지만 뒤이어 세상을 떠난 스탠 리까지 겹치면서, 괜히 여운이 남는 데다 떠오르는 사람들도 있어 몇자 더 적으려 한다. 먼저 김용과 스탠 리는 함께 동서양의 판타지를 대표하는 이른바 ‘원천 콘텐츠’의 황제라 할 것이다. 김용 하면 자연스레 주성치가 떠오른다. 그가 연출을 맡은 <쿵푸 허슬>(2004)은 김용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합마공, 일양지, 양과, 소용녀, 신조협려 등 김용 소설에 등장하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 하나당 1만위안씩 총 6만위안의 판권 사용료를 지불했다. 실제로도 가까운 사이라는 김용에 대한 애정은 깊은 것이어서, 이미 그는 김용 원작의 영화화인 <녹정기>(1992)에서 주인공 위소보를 연기한 적 있고, <무장원 소걸아>(1992)에서는 강룡십팔장, <식신>(1996)에는 암연소혼반(암연소혼장의 패러디)이라는 김용 원작의 무공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쿵푸 허슬>은 과거 수많은 TV시리즈나 영화에서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던, 김용이 창조한 각종 무공들을 매끄럽고 훌륭하게 재현해냈다. 소설 <사조영웅전>의 서독 구양봉이 구사하던 합마공(두꺼비처럼 내공을 모았다가 일시에 터트리는 기술)은 화운사신(한국에서는 ‘야수’로 표기)이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렇게 홍콩영화계 특수효과의 발전은 김용 작품의 기술들을 스크린에 재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신성일 하면 떠오르는 의외의 인물은 바로 박찬욱 감독이다. 그가 처음으로 썼던 장편 시나리오가 바로 <청동계단>이라는 제목의 노조 파괴 전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안기부 출신의 남자는 노조가 결성될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그 속에 들어가 노조의 싹을 잘라버린다. 회사가 그를 고용해 노조를 말살하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이 그를 찾으려 혈안이 된 가운데 그의 손과 발, 귀 등이 한 토막씩 소포로 경찰서에 도착한다. <청동계단>이란 ‘지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라는 의미로 그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다가 가져온 제목인데, 바로 이 작품을 자신의 데뷔작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신성일과 이경영을 아버지와 아들 역할로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른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던 1980년대 후반 이후 박광수와 장선우, 그 뒤를 이은 박찬욱과 봉준호 세대가 과거 신성일 등 황금세대의 배우들과 단절되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과연 그 데뷔작이 완성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뒤늦은 가정일 뿐이지만.

마지막으로 스탠 리와 함께 떠오르는 감독은, 역시나 의외인 알랭 레네 감독이다. 스탠 리의 배우 데뷔작은 자신의 첫 번째 마블 카메오 출연작인, 해변의 핫도그 장수로 출연했던 <엑스맨>(2000)이 아니라, 놀랍게도 알랭 레네의 영화였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알랭 레네가 장 루슈, 자크 드와이옹 감독과 함께 만든 68혁명에 관한 영화 <01년>(L’an 01, 1972)이 바로 그의 데뷔작이다. 알랭 레네가 코믹스광이었던 까닭에 그 만남이 성사됐는데 이후 본격적인 콜라보레이션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더불어 페데리코 펠리니도 스탠 리의 열렬한 팬이었다. 직접 전화를 걸어 뉴욕에 있는 스탠 리의 사무실로 찾아갔을 정도고, 스탠 리 또한 나중에 로마를 찾아 그를 만났다고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에 프랑수아 트뤼포가 출연한 것보다 더한 ‘미지와의 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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